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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7 FEATURES

내가 당신과 다시 섹스하게 된 이유

  • 2017-03-03

우리가 단절된 것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끊어진 섹스를 붙이는 방법. 세 커플에게 들었다.

서로의 욕망을 확인하라
‘그것’에 관해서라면 우린 꽤 일가견이 있었다. 연애할 때부터 밀폐된 공간만 있다면 허름한 여관이건 자취방이건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우리는 만나면 아침부터 나체로 노닐었다.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는 도중, 잠에서 깨어난 직후에도 눈만 마주치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10년 전 쯤, 그러니까 연애 초기엔 격렬한 섹스 덕분에 자취방에서 쫓겨날 뻔한 적도 있다. 5평 남짓한방에서 오전부터 물고 빨며 온갖 체위를 구사했는데 그게 좀 요란했던 모양이다. 처음엔 양쪽 옆집이, 나중엔 윗집과 아랫집이 난리를 피웠다. 그들은 벽을 차고 인터폰을 걸고 결국엔 문을 두들겼다. 뭐, 벌겋게 달아오른 날 보고 황망히 사라진 건 그들이었지만. 결혼과 임신도 우리 섹스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그녀가 만삭일 때도 우린 피트니스센터 가듯 정기적으로 서로를 찾았다. 변한 것이라곤 체위와 깊이 정도랄까. 그러곤 첫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거짓말처럼 섹스가 사라졌다. 엄밀히 말하면 아이 문제는 아니었다. 본질이 변했다. 그녀는 아이에게 집중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모든 과정이 그녀의 손끝에서 이뤄졌다. 거기에 분만실에서 목격한 그 엄청난 광경(?)이 자꾸 겹쳤다. 아이 엄마인 그녀에게 그 짓을 하라고? 그건 왠지 불경스럽다. 신성모독의 문제랄까. 출산 이후 아내는 내게 마리아나 비구니, 수녀 같은 존재가 됐다.
난 그녀에게 일종의 경외심 같은 것을 느꼈다. 아내의 속옷 속에 넣던 손을 그녀의 몸에서 나는 젖비린내를 맡고 놀라 뺀 적도 있다. 그 냄새는 아이의 그것과 같았다. 이처럼 경건하던 우리가 다시 미성년자 관람 불가 버전이 된 것은 2년 후다. 정확히 말하면 새벽녘 아내가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싸구려 에로 영화를 보며 자위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다. 거실 소파 위의 그녀는 聖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일상의 틈새에서 욕구로 온몸이 뒤틀린 30대 여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10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살짝 열린 입술에서 맴도는 신음과 골반에 걸친 속옷, 동그랗게 말린 발가락에 난 반 미친 사람처럼 흥분했다. 그날 밤 우린 약에 취한 사람처럼 뜬눈으로 지새웠다. 거실과 욕조, 싱크대와 침대, 베란다를 오가며 2년 동안 미뤄둔 숙제를 해치웠다. 밤새 아이가 몇 번이나 깨었는지, 그녀가 몇 번이나 그곳에 도달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날 이후 우리의 섹스는 다시 시작됐다. 거짓말처럼. 38세 남성

상대의 바닥을 인정하는 방법
굳이 이유를 대자면 ‘먹고사는 문제’ 아니었을까? 삶에 치이고 일상에 절어 서로가 우습고 딱해 보이는 거지. 광대나 거지랑 섹스를 할 수는 없잖아. 같이 살 수는 있어도. 우린 나이차가 꽤나 있어. 아홉 살 연상 남편과는 직장에서 만났지. 중견 기업 과장이던 남편은 토가 닳은 구두를 신고 구겨진 셔츠를 입고 있었어. 그래도 눈빛은 또렷했어. 뭐든 열심이었다고 할까. 우리의 신혼 생활은 마치 사내 연애와 같았어. 갓 승진해 한껏 고무된 과장과 신입 사원인 나. 그는 내게 상냥하고 근엄했으며 나는 그런 남편을 존경했어. 우리는 프로젝트 진행하듯 성실히 삶을 꾸리고 마땅히 섹스를 나눴지. 남편은 그것도 꼭 자기처럼 했어. 서툴지만 내 호흡을 살피며 마무리를 늦췄지. 매번 만족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난 내 위에 올라탄 그의 진지한 표정과 이마에 맺힌 땀이 좋았어. 우리가 변한 건 우습게도 ‘층간 소음’ 때문이야. 우리 아파트는 1990년대 초반에 지은 낡은 건물이거든. 붕괴를 염려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윗집이 몇 시에 빨래를 하는지, 옆집은 또 무엇 때문에 저리 싸우는지쯤은 알 수 있지. 몇 년 전 아래층으로 중년 부부가 이사를 왔는데 남편 쪽이 무슨 초인인지 귀가 쓸데없이 밝고 예민한 거야. ‘아이가 육상 선수냐’, ‘집에 코끼리를 기르냐’ 등등 온갖 컴플레인에 집안 식구들은 모두 까치발로 걸어야 할 지경이었지. 하루는 동생 내외와 조카가 왔는데 초저녁부터 인터폰이 울리고 난리가 났어. 아래층 남자는 술을 한잔했는지 얼굴이 벌게져선 육두문자를 날리는 거야. 그날은 참을 수 없더라고. 지지 않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욕은 차마 못했어) 대꾸하니까 남편이 뜯어말리는 거야. 아래층 남자 앞에서 굽실대는 꼴이라니, 차마 못 봐주겠더라고. 그 이후가 더 웃겨. “처제 애들 좀 조심시키지?”라고 하거나 화가 난 내게 “저런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몰라”라며 되레 나를 탓하는 거 있지. 그때부터 정나미가 떨어졌어. 내겐 그렇게 권위적인 사람이 저렇게 찌질하다니! 남편의 4치수 늘어난 뱃살이나 옅어진 머리숱은 참아도 찌질한 건 못 참겠더라고. 안에서 큰소리치는 사람이 밖에선 소심하다더니, 이러다 손찌검까지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고. 섹스? 밥 먹는 꼴도 보기 싫은데 그건 말할 것도 없지. 지금 생각이지만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자기 트렁크를 입고 돌아다니거나 몇 주 정도 제모 못한 몸을 보곤 허망한 눈빛을 짓던 걸 기억해. 우린 그렇게 꼬박 1년을 개별적으로 살았어. 그런 우리 관계가 회복된 건 ‘측은함’ 덕분이야.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던 새벽에 우연히 해장국집에 앉아 있는 남편을 봤어. 빈 홀에 혼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더라고. 유리 너머 보이는 모습이 딱하고 불쌍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 ‘저 사람 어깨가 저렇게 좁았나?’라는 생각이 스쳐 꽤 오랫동안 그 자리를 뜰 수 없었어. 그날 밤 우린 흐느끼듯 섹스를 했어. 무언가를 쏟기 위한 섹스가 아니라 몸을 덥히고 상처를 핥기 위한 치료였다고 할까. 나는 더 이상 그를 존경하지는 않아. 대신 가엽고 측은한 존재, 마땅히 내가 채워주어야 하는 사람이 됐지. 43세 여성

가끔은 막장도 필요하다
우리의 연애는 길었다. 학부 커플이던 아내와 난 입대와 취업, 외도 등의 지난한 고비를 함께 넘겼다. 캠퍼스에서 9000만 원 전세로 옮기기까지 만 8년. 우리는 서로를 너무도 잘 알았다. 그녀가 익은 당근을 싫어한다는 사소한 취향부터 내가 만성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까지 속속들이. ‘난 당신의 모든 것을 알아’는 자부심이었다가 어느덧 권태가 됐다. 그것은 때때로 ‘네가 그렇지’라거나 ‘네 주제에?’라는 독으로 변했다. 섹스도 비슷했다. 우린 매월 25일 전후로 관계를 가졌다. 마치 공과금 납부하듯 그것을 처리했다. ‘그날’이면 난 저녁에 면도를 했고, 그녀는 평소 건조대에서 보지도 못한 란제리를 입고 개미가 꼬일 만큼 단내를 풍겼다. BGM은 마빈 게이나 쳇 베이커. 과정은 눈감고도 외울 수 있을 만큼 익숙하다. 마주 앉아 키스를 나누다 그녀를 눕히고 위에 오른다. 입술로 뺨과 목덜미를 더듬고 손바닥은 넓게 펴서 가슴과 엉덩이를 쓸어내린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평소 우리의 섹스는 격렬하진 않았다. 대신 수비드로 익힌 스테이크처럼 말캉하고 즙이 가득했다고 할까. 그런데 그날 그녀는 사막보다 건조하고 나무토막처럼 뻣뻣했다. 한창 그녀의 위에서 몸을 움직이다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눈으로 ‘지겹다’고 말하고 있었다. 결국 난 사정하지 못하고 그녀의 위에서 내려왔다. 그날 이후 우린 반년이 넘도록 공과금을 체납했다.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우리 관계는 미세한 실금으로 가득했다. 다시 섹스가 시작된 건 기념비적인 ‘부부 싸움’ 덕이다. 평소 우린 잔잔하게 다퉜다. 그녀의 최고 수위는 문을 세게 닫는 수준, 난 집을 나서는 정도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하찮은 이유로 시비가 붙었는데 격하게 이어졌다. 서로가 놀랄 만큼(자기 자신에게도) 언성을 높였고 ‘당신’은 ‘너’, ‘야’로 변하고 급기야 욕설까지 난무했다. 아내가 내 뺨을 때리며 몸싸움으로까지 번졌는데 밀고 당기다 아내의 블라우스가 뜯어졌다. 그때 그 감정은 분노였을까, 성욕이었을까? 나는 아내의 상의를 찢다시피 벗기곤 그녀를 덮쳤다. 간지러운 애무나 조심스러운 손가락의 움직임도 없이 그녀의 가슴과 허리, 엉덩이를 움켜쥐고 바로 삽입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면 지를수록, 손톱으로 할퀴고 발길질을 해대면 해댈수록 난 더 거칠게 그녀를 다뤘다. 그리고 그녀는 넘칠 듯 젖어 있었다. 그 날 우리는 역사상 가장 격렬하고 뜨거운 섹스를 했다. 내 목덜미는 그녀의 손톱 자국으로 핏줄이 터졌고, 아내의 몸은 곳곳이 벌겋게 붓고 내가 남긴 키스 마크로 얼룩져 있었다. 이후 우리의 섹스는 대담해졌다. 특별한 복장(?)을 준비하거나 도구를 써보기도 하고 서로를 다르게 부르며 여러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39세 남성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일러스트 장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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