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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7 ISSUE

예술가의 영화 같은 삶

  • 2017-04-06

예술가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삶이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보다 흥미로운 예술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3편.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Egon Schiele: Death and the Maiden)>(2016년)
여인과 하룻밤을 보낸 에곤 실레는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집 벽에 글귀를 휘갈긴다. “예술은 신성하다.” 에곤 실레는 예술이 세상 무엇보다 우선한다고 굳게 믿었다. 당시 유럽을 잿더미로 만든 제1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은 말할 것도 없다. 전쟁보다, 정치보다, 도덕보다, 가족보다, 부인보다, 연인보다, 심지어 자기 자신보다도 예술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 에곤 실레에겐 4명의 뮤즈가 있었다. 여동생인 게르티 실레, 태평양 출신의 흑인 소녀 모아, 대표작 ‘죽음과 소녀’의 모델인 발리, 아내 에디트다. 그중에서 에곤 실레와 운명의 짝이 될 수 있었던 여인은 발리다. 발리는 처음엔 돈을 받고 에곤 실레의 누드모델이 되어줬다. 나중엔 에곤 실레의 예술 세계를 지지해줬고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에곤 실레는 발리를 모델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그중 하나가 이 영화의 원제인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다. 하지만 에곤 실레는 결국 발리를 잔인하게 버린다.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선 재정적 후원자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예술적 동반자 관계인 발리를 버리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에디트와 결혼했다. 그는 발리를 버려서라도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에곤 실레가 예술계의 탈레반이 된 이유를 굴곡진 인생사에서 찾는다. 철도역의 역장이던 아버지는 매독에 걸렸다. 매독 병균이 뇌까지 침범한 탓에 광기를 주체하지 못했다. 에곤 실레는 아버지의 학대와 폭력 속에서 자랐다. 무심하고 무책임한 어머니는 에곤 실레를 아버지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에곤 실레는 여동생 게르티에게 집착했다. 평생 이어진 여성에 대한 집착의 시작이다. 그는 게르티를 모델로 습작하고, 배우였던 흑인 소녀 모아를 만나 예술적 성장을 경험했다. 에곤 실레 특유의 굴절된 인물상은 결국 그의 굴절된 인생사를 투영한 것이다. 자화상을 그려도, 여인을 그려도 에곤 실레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일그러지고 왜곡되고 굴절돼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그 자신과 여인들의 모습이 그랬기 때문이다. 에곤 실레는 자신의 인생은 진흙탕이지만 자신의 예술은 연꽃 같기를 원했다. 그래서 예술지상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에곤 실레는 구원을 갈구했다. 여인에게 집착했지만, 예술만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믿었다.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그림에 매달렸다. 에곤 실레는 28세의 나이에 요절했지만, 무려 300여 점의 유화와 2000여 점의 데생을 남겼다. 그렇게 에곤 실레는 신성한 예술가가 됐다.

함께 볼만한 영화
<클림트>(2006년)
클림트는 에곤 실레의 친구이자 후원자이자 라이벌이었다. 클림트와 에곤 실레는 서로 작품을 교환했다. 그때마다 클림트는 “너는 왜 나와 작품을 교환하지? 네 작품이 훨씬 나은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영화 <클림트>에선 존 말코비치가 클림트를 연기했다.












<괴테(Young Goethe in Love)>(2010년)
애인이 있는 여인을 사랑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주인공의 슬픔과 절망을 묘사한 소설이 있다. 바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출세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괴테>는 이 소설을 쓰기 직전 젊은 괴테의 모습을 그린 영화다. 아버지의 강요로 법학도가 된 괴테는 결국 법관 시험에 낙방하고, 독일 시골 마을 법원의 서기로 쫓겨간다. 그곳에서도 괴테는 여전히 낙천적이고 쾌활하다. 괴테의 진짜 관심은 법이 아니라 문학에 있기 때문이다. 정신을 잃도록 술을 퍼마시고, 일하느라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도 곧장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 말을 타러 나가는 그는 천방지축인 낭만파 젊은이다. 어느 날 괴테는 댄스파티에서 로테라는 이름의 여인을 만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샤롯테의 모티브가 된 인물. 괴테는 그녀와 불 같은 사랑에 빠지지만 이루어지지는 못한다. 로테의 아버지가 딸을 정략결혼시켜버린 탓이다. 결혼 상대는 다름 아닌 괴테의 상사 케스트너. 슬픔에 빠진 괴테는 권총 자살을 결심하지만, 정작 권총 자살을 하는 건 괴테의 절친 예루잘렘이다. 예루잘렘은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지만 버림받았다. 괴테는 로테와의 사랑을 단숨에 소설로 써 내려간다. 25세의 나이에 괴테를 일약 독일 문단의 샛별로 만들어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21세기엔 신파적 사랑 소설 정도로 읽히지만 18세기 후반 유럽 사회에선 급진적이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된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금기였던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지배적 사회 윤리에 저항하기 위한 순애보적 자살을 충동질했기 때문이다. 모방 자살 현상을 뜻하는 ‘베르테르 효과’도 그때 처음 사회문제가 됐다.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Cezanne and I)>(2015년)
소설가의 주변 사람들은 언제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으로 형상화될지 모르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소설가는 현실 속 주변 사람과 사건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자신의 픽션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거의 모든 소설가는 창작을 위해 자기 자식도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이기적인 존재다. 에밀 졸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에밀 졸라는 40년 지기인 친구 폴 세잔을 소재로 소설 <작품>을 썼다. 이 작품을 읽은 폴 세잔은 에밀 졸라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둘은 죽을 때까지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았다.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에밀 졸라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에밀 졸라가 바라본 폴 세잔의 삶,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우정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다. 에밀 졸라가 일찍부터 세간의 인정을 받은 것에 반해 폴 세잔은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다. 당대에 인기 있는 화가는 세잔이 아니라 마네 혹은 모네였다. 에밀 졸라는 그런 폴 세잔을 친구로서 지지해주지만 동시에 예술가로서 질투의 감정도 숨기지 못했다. 일찍부터 문단 권력이 된 에밀 졸라는 평생 폴 세잔의 분방한 예술가적 삶을 동경했다. 아끼지만 미워하는 세잔에 대한 에밀 졸라의 이중적 시선이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두 사람은 <작품> 탓에 끝내 결별했지만, 영화의 결말은 좀 다르다.

감상 포인트
에밀 졸라가 속한 파리 문단 권력과 폴 세잔이 창작의 영감을 얻는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수려한 풍광이 시각적으로 대비된다. 두 예술가가 서로의 무엇을 동경했으며, 또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신기주(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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