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MARCH. 2017 SPECIAL

레지던시의 파워

  • 2017-03-01

아시아 신진 작가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데에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중국, 싱가포르, 한국에서 신진 작가 양성에 기여하고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이를 통해 성장한 신진 작가의 행보를 조명했다.

레지던시(residency)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거주’라는 뜻이 있다. ‘거주’는 곧 생활을 의미한다. 생활은 넓은 영역의 공동체를 만들고, 문화의 정서적 교감을 이룬다. 함께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프로그램(Artist in Residency Program, 이하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일종의 예술 문화적 공동체다. 지금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것에서 나아가 지역사회와의 연계 활동, 미술계 인사와의 활발한 교류 활동 등을 통해 현대미술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1 일본 아오모리 지역에 자리한 아오모리 현대미술센터 외관 ⓒ Aomori Contemporary Art Centre
2 4명의 입주 작가에게 3개월간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아오모리 현대미술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 ⓒ Aomori Contemporary Art Centre


지역 문화의 꽃을 피우는 예술 공간: ACAC(Japan)
일본 아오모리 지역에 자리한 ‘아오모리 현대미술센터(Aomori Contemporary Art Centre, ACAC)’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2001년 설립됐다. 2년마다 후보를 심사해 국내외를 망라한 4명의 입주 작가를 최종 선정하는데, 그 명단에 오른 작가들은 3개월간 그룹전, 워크숍, 아티스트 토크, 지역 학교 방문 등의 지역 연계 프로그램에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일본의 촉망받는 작가 리스트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는 후쿠오카 출신의 설치미술 작가 나카니시 노부히로(Nobuhiro Nakanishi)는 ACAC와 인연이 깊다. 그는 2005년 ACAC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대표작인 ‘Layer Drawing’ 시리즈 작업을 시작했다. ‘Layer Drawing’은 1m2 사이즈의 투명 필름지에 풍경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일렬로 나열한 후 관람하는 시선의 차이에 따른 풍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ACAC는 일본의 유망한 신진작가를 단독으로 초대해 1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그는 2011년 4월부터 7월까지 ACAC 프로그램에 초대받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 외에 나카니시 노부히로는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도쿄 모리 미술관(Mori Art Museum)과 와카야마 현립 근미대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Wakayama)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전 초대 작가 중 한 명으로 소개됐는데, 중첩된 사진들이 생성하는 독특한 레이어를 통해 멈춘 시간 속 풍경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풍경을 표현한 새로운 드로잉 기법으로 호평을 받았다.











전시 설명을 하고 있는 중국계 인도네시아 출신 작가 로자나 리 ⓒ INSTINC


아티스트를 위한 아티스트의 공간: INSTINC(Singapore)
싱가포르에 위치한 ‘인스팅크(INSTINC)’는 2009년 싱가포르 출신 회화 작가 시윤여(Shih Yun Yeo)가 설립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미국 유학 후 싱가포르로 돌아온 시윤여는 열정과 창의력을 지닌 젊은 예술가의 수에 비해 그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싱가포르 출신 신진 작가를 양성할 수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작가적 관점으로 만든 점이 다른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확연히 차별화된다. 중국계 인도네시아 출신 작가 로자나 리(Rozana Lee)가 대표적 사례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뉴질랜드로 이주해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예술과 우리의 삶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네시아 사회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고, 그 경험을 통해 제 마음속에 새긴 잔상들을 다양한 색채로 캔버스에 투영했어요. 그때를 기점으로 저는 드로잉, 회화 등의 작품을 통해 현대 문화 속에 감춰진 혼란을 탐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인스팅크의 영향력을 인정했다. 지금도 예술적 영감을 받는 도시로 싱가포르를 꼽는 그녀는 레지던시 기간에 개인전 〈Singapore Sensation〉을 열었고, 2016년 몰리 모페스 캐너데이 어워드(Molly Morpeth Canaday Award), 파킨 드로잉 프라이즈 어워드(Parkin Drawing Prize Award) 등에 파이널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C.O.L. 아트 레지던시에서 작품 활동의 전환기를 마련한 이호진 작가


도시와 예술가들의 집약적인 경험 공간: C.O.L. Art Residency(China)
2010년 개인 컬렉터 신창균이 베이징에 설립한 C.O.L. 아트 레지던시(C.O.L. Art Residency)는 여느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달리 한국 작가 2명을 선정, 3개월 동안 무상 입주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평소 예술 후원에 관심이 많던 그는 한국 신진 작가들의 중국 미술계 진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위해 C.O.L. 아트 레지던시를 만들었다. 베이징 798 예술구와 15분 거리에 위치해 한국 작가들이 중국 미술계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한다.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 문화부에서 주관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국내외에서 다양한 레지던시 경력을 쌓은 이호진 작가도 C.O.L. 아트 레지던시 출신이다. 국립고양창작스튜디오 제2기, 파리 예술 공동체(Cite) 등 전 세계를 오가며 많은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인연을 맺었다. 그중에서도 2010년에 참여한 C.O.L. 아트 레지던시는 이호진 작가의 작품 활동에 전환기가 되었다. 중국 미술계와의 교류가 자아 성찰을 주제로 한 기존 작업에서 더 나아가 현대인의 고민과 일상을 관찰할 수 있는 도시의 풍경을 집중 탐구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 이호진 작가는 이후 다양한 실존의 모습이 담긴 서정적인 도시 풍경화를 재현하며, 서울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독일 갤러리 퍼페추얼(Galerie Perpetual), 베이징 선서우 아트 갤러리(Shen-shou Art Gallery) 등 국내외 유수의 예술기관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금호창작스튜디오 2015 입주 작가 전시 전경 ⓒ 금호미술관


함께 연구하는 문화 창작 공간: 금호창작스튜디오(Korea)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금호창작스튜디오는 2005년 국내 신진 작가들에게 창작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마련해주고자 설립했다. 활동 기간은 1년 단위이며 레지던시 경력이 미미하거나 미술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 선정 대상이다. 스튜디오 무상 제공뿐 아니라 전시 개최 기회가 주어지고, 미술계 인사들과 함께하는 비평 워크숍, 창작 스튜디오 소재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지역 연계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2005년 금호 영 아티스트로 선정된 송명진 작가는 금호창작스튜디오 1기 입주 작가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고, 다수의 예술계 인사를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며 금호창작스튜디오의 장점에 대해 말했다. 송명진 작가는 스튜디오에서 자연과의 교감을 극대화해 회화의 평면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시작, 대표작인 ‘손가락 인간’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송명진 작가는 이후 갤러리인, 아라리오갤러리, 베이징의 아트사이드 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서울시립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금호창작스튜디오 10주년 기념전>에도 참여한 송명진 작가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의 젊은 작가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아시아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공통된 장점은 젊은 작가들이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유롭게 예술적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는 데 있다. 더불어 다른 문화권의 작가들, 지역사회와의 교류를 통해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진정한 미술의 의의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기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단순한 미술계의 등용문이 아니라 미술계의 탄탄한 토대를 만드는 예술적 밑거름이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장윤정(한림대학교 연구교수, 아트 컨설턴트)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