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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hoice FEBRUARY. 2017 LIFESTYLE

폼 나게 마시자

  • 2017-01-25

빠른 주기로 신제품을 출시하는 주류 시장에서 패키지 디자인은 트렌드에 상당히 민감하게 대응한다.
술의 세계를 디자인으로 바라봤다.


헤븐사케



술은 맛으로 입을 유혹하고, 디자인으로 눈을 유혹한다. 술을 담는 술병은 단순히 술만 담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도 함께 담으며 술에 대한 정보를 담은 라벨은 이력서 차원을 넘어 그 술을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보는 눈이 지겹지 않도록 새로운 변신을 시도한다. 최근 주류 보틀 디자인은 3가지 키워드로 귀결된다. 경계를 확장한 용기 디자인, 장인정신과 공예적 가치를 드러낸 디자인, 기능을 우선시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계를 확장한 용기 디자인
라벨이 없는 술병만 봐도 어떤 술인지 알아맞힐 수 있을 만큼 술을 담는 용기는 술에 대한 가장 큰 단서다. 이런 연유로 라벨에 쓰인 글자나 그림보다 즉각적으로 사용자와 소통하는 용기 디자인이 때론 더 중요하다. 최근에는 사케나 보드카를 샴페인 보틀에 담는 등 관념적 보틀 형태를 벗어난 디자인이 등장,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먼저 프랑스 북동부 랭스 지역에서 샤르도네 포도로 만든 보드카부터 이야기하겠다. 뵈브 카페(Veuve Capet)는 프랑스식으로 정교하게 만든 보드카다. 손으로 직접 딴 포도를 다섯 번에 걸쳐 증류한 최초의 샤르도네 보드카답게 시트러스하고 프루티한 맛이 특징. 와인밭에서 태어난 보드카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프랑스 디자이너 샘 바롱(Sam Baron)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샴페인 보틀이다. 투명 크리스털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보틀에 보드카를 담아 고급스러운 샴페인의 캐릭터를 입힌 것. 여기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노그램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문양을 새기고 오래된 지도를 프린트한 라벨을 안쪽으로 부착해 전면에서도 병을 투과해 비쳐 보이도록 했다. 여성스럽고 클래식한 이미지를 더한 보드카는 피크닉 테이블에도 올릴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졌다. 사업가이자 사케 전문가 칼 허시만(Carl Hirschmann)이 만든 프랑스의 헤븐사케(HeavenSake) 역시 샴페인 보틀 디자인을 차용해 관념을 깨뜨린다. 일본인 사케 제조자와 프랑스인 와인메이커가 협력해 만든 것으로 프랑스인의 취향을 반영했다. 칼 허시만은 “사케는 물로 만든 순수함의 결정체예요. 사케에 와인과 샴페인의 영속적 이미지를 더한다면 더욱 근사한 술이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라고 말한다. 슬릭한 디자인의 블랙 샴페인 보틀에 담은 사케는 백합, 아이리스, 라일락, 히아신스와 재스민을 블렌딩한 우아한 향과 프루티한 맛이 난다. 보틀에 새긴 절제된 화이트 레터링이 고급스러움을 강조한다. 보틀만 봐도 파티에 꼭 등장하는 샴페인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현대적이고 기품 있는 사케를 완성한 것이 틀림없다.



샤르도네 보드카, 뵈브 카페


크래프트 & 크래프트맨십
작은 규모의 와이너리나 양조장에서는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보틀 디자인에 공예적 요소를 활발하게 더한다. 투박한 마감을 돋보이게 하는 토기, 테라코타 등 자연적 소재를 병에 활용해 날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전하거나 수공예적 가치를 살린 라벨로 제조 공정의 세심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오렌지 와인이라 불리는 에르데(Erde) 와인이 있다. 오스트리아 와이너리 바인구트 마리아 & 제프 무스터(Weingut Maria & Sepp Muster)가 소비뇽 블랑과 샤르도네 품종을 혼합해 만든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으로 매끈한 유리병 대신 점토를 구워 만든 테라코타병을 사용한다. 여기에 추상화가 베포 플림(Beppo Pliem)의 대지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라벨로 사용해 병 자체가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시각적 효과 외에도 테라코타병은 와인의 숙성 과정을 돕는 기능이 있다. 한 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셈이다. 한편, 헝가리 루딘슈키(Rudinski)의 프루트 브랜디는 스웨덴 디자인 스튜디오 가르베리스 프로젝트(Garbergs Project)와 패키지를 제작했다. 헝가리의 전통 공예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브랜디와 크로셰(손뜨개)인데 루딘슈키 브랜디는 제조 공정의 장인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이 둘을 한 병에 엮었다. 6가지 다른 맛을 지닌 브랜디의 특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각각의 풍미에 상응하는 과일 무늬로 크로셰를 제작해 라벨로 사용한 것. 브랜디 한 병을 만드는 시간은 더 길어졌지만 장인정신은 더 깊어졌다.




루딘슈키 브랜디
 

1 에르데 와인      2 노암 맥주     3 라 페스카 살라다의 진, 라왈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모더니즘의 기수라 불리는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모던 스타일의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한 명제다. 패키지 디자인에서도 이 말은 통한다. 뮌헨 공과대학교에서 탄생한 노암(Noam)의 라거 맥주는 기능을 중시한 디자인을 보여준다. 대학 내에 위치한 현대적이고 우수한 설비를 갖춘 양조 실험실에서 학구적 연구를 통해 탄생한 맥주는 뮌헨의 다니엘 노아 스하이크(Daniel Noah Sheikh)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에일 맥주에 밀려난 라거 맥주를 되살리는 첫 시도로 스웨덴 스톡홀름의 아크네(Acne)가 보틀 디자인과 브랜딩을 진행했다. 노암 맥주는 맥주 본연의 맛으로 승부하는 네이키드 비어처럼 모든 것을 보여준다. 투명한 이탈리아산 보틀에 기둥 모양 엠보싱 처리를 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했고, 연구소에서 라벨을 붙여 분류하는 것처럼 간결한 내용으로 라벨 사이즈를 대폭 줄였다. 연구소에서 탄생한 맥주이니만큼 맛에 대한 과학적 자부심을 바탕으로 군더더기 없이 실용적인 디자인을 채택한 것이다. 숨김없이 내놓은 자신감만으로도 노암은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라 페스카 살라다(La Pesca Salada)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엘라발 지역의 바다를 닮은 작은 칵테일 바다. 진을 베이스로 만든 칵테일이 맛있기로 소문난 이곳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자체 제작한 진, 라왈(Rawal) 덕분이다. 라왈은 2017년 독일 디자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흥미로운 디자인을 보여준다. 클리어한 보틀과 화이트 스피릿 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틀 전면에 수영하는 남자의 일러스트를 넣고 병 자체를 투명한 물속 공간으로 만들었다. 바닷속에서 영감을 얻은 바 인테리어와도 일맥상통하는 재치 있는 디자인이 아닐 수 없다. 술이 줄어들면 동시에 수면이 낮아지며 시각적 재미를 만들어낸다. 술을 담는 용도지만 결국 그 술을 비워내는 술병의 근원적 기능에 착안한 위트 있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에디터 김윤영(snob@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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