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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6 FEATURE

방대하게, 디테일하게

  • 2016-03-22

한 권의 책이 담을 수 있는 지식의 총량은 얼마만큼일까? 모든 것을 망라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특정 분야의 핵심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책이 있다.

 

가끔 제목부터 큰 소리를 내는 책을 만난다. 주로 교양서나 수험서다. 이런 책에 종종 따라붙는 당당하고 노골적인 수식어는 ‘한 권으로’라는 것. 한 권으로 마스터한다거나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다는 유혹적인 호언장담에 끌려 책을 집어 든 적도 많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감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연륜과 노력을 반영한 내실 있는 구성. 언젠가부터 책 한 권을 읽는 것으로 경험치를 한꺼번에 충족하겠다는 욕심이 사라진 대신, 책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언제든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책을 찾게 됐다.
얼마 전 출간 30주년 기념판으로 2016년 에디션을 내놓은 케빈 즈랠리의 <와인 바이블>이야말로 ‘바이블’이란 단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폭넓은 독자에게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책이다.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를 포함해 30주년 기념 에디션에 빼곡하게 추천의 말을 쓴 이들이 국내외 와인업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란 사실은 신뢰감을 더한다. 실제로 와인 초보자가 처음 와인 시음을 할 때도, 현장에서 근무하는 소믈리에가 전문적 정보를 찾아볼 때도 가장 먼저 펼치는 책이다. 방대한 와인의 세계를 놀랍도록 명료하고 간결하게 제시하기 때문. 이번 에디션은 저자의 강의를 만날 수 있는 동영상 링크와 QR 코드, 최신 빈티지 차트를 수록해 오랜 역사에 최신 트렌드를 더했다. 이 정도면 바이블의 흥미로운 변화다. 음악계에도 이처럼 엄청난 양의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책이 있다. 바로 정일서의 <365일 팝 음악사>다. 팝 음악 전문 PD인 저자가 20년간 방송을 하며 꼼꼼하게 모으고 기록해온 팝 음악 관련 자료를 날짜별로 정리한 이 책은 몇 년 몇 월 며칠에 음악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흥미로운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1938년 1월 16일 클래식의 전당 카네기홀이 처음으로 재즈 뮤지션 베니 굿맨에게 무대를 내준 순간, 1977년 10월 18일 영국에서 브릿 어워드가 처음 개막한 날이나 1988년 6월 11일 만델라를 위한 역사적 콘서트에 총출동한 스타들 등 손 가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넘겨도 음악사의 명장면이 펼쳐진다. 매일매일 다양하게 소개하는 뮤지션의 이야기를 접하는 재미가 쏠쏠해 두고두고 아껴가며 읽고 싶은 책이다. 제목에서 그 스케일을 짐작케 하는 <모든 것의 역사>는 통합심리학의 대가 켄 윌버의 신간이다. 저자는 의학과 생화학을 전공했지만 노자의 <도덕경>을 읽은 것을 계기로 동서양 사상에 심취해 마음과 세계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디로 진화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다. 전문 서적인 그의 다른 저서와 달리 이 책은 문답식 전개로 쉽게 풀어쓴 대담집이다. 인류 의식의 진화, 인간 의식의 발달, 포스트모던 사상 등을 아우르면서도 그 광범위한 내용을 유려하게 풀어냈다. 켄 윌버의 이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책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인간의 본질에 관한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된다.
방대하면서 디테일하기란 쉽지 않다. 한 개인이 이룩한 깊고 넓은 지식 세계를 바탕으로 탄생한 책은 그 분야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책 앞에서 경이로운 마음이 드는 건 이럴 때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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