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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6 FEATURE

체험 교육의 명문, 콘스트파크 디자인 공예 예술 대학

  • 2016-06-21

스웨덴어로 ‘예술 상자’를 뜻하는 콘스트파크는 상상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직접 만들어보며 체험할 것을 강조한다. 심도 있는 실습과 끊임없는 연구를 토대로 스칸디나비안 스타일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해온 스웨덴의 디자인 공예 예술 대학, 콘스트파크를 소개한다.

콘스트파크 학생들이 강의실 밖에서 프레젠테이션 수업을 하고 있다.




스튜던트 워크플레이스




콘스트파크 메인 건물 전경

북유럽 최고의 예술 대학으로
오늘날 스웨덴은 세계의 디자인을 선도하는 나라로 언급되지만, 알고 보면 유럽에서도 산업혁명을 비교적 늦게 겪은 편이다. 1800년대 후반만 해도 문화·경제 분야는 유럽 내 하위 수준이었고, 국가적 정체성 또한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1900년대 초·중반 스웨덴의 지식인들이 ‘스웨덴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고유의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복지국가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생활양식, 디자인과 예술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수준과 풍요로운 자원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뒷받침됐다. 이 과정에서 북유럽 예술 명문 콘스트파크 디자인 공예 예술 대학(Konstfack University College of Arts, Crafts and Design)은 스웨덴기술디자인협회, 노르딕 건축 & 디자인 전문 매거진 <포름(Form)>과 협업하며 스웨덴 디자인 발전에 기여해온 학교다.
콘스트파크는 1844년, 당대 예술가이자 민속학자 닐스 몬손 만델그렌(Nils Ma°nsson Mandelgren)이 미술가와 공예가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비공식 교육기관인 일요학교 ‘Hantverkare(Sunday Drawing School for Artisans)’에서 출발했다. 이듬해에 스웨덴 수공예협회 ‘스벤스크 포름(Svensk Form)’과 협력해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고, 약 170년 동안 예술·공예·디자인 분야에서 실험적 교과과정과 독특한 교육 방식을 발전시키며 현재 스웨덴에서 가장 큰 미술 전문 대학이자 가장 오래된 디자인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스웨덴의 대학은 뚜렷한 서열이나 등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전공이나 교과 시스템별로 강세를 보이는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콘스트파크는 순수예술과 수공예 기술, 독창적인 디자인 분야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각 과목별로 심도 있는 실기 수업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실습 시설이나 클래스 규모는 공예와 디자인에 강한 북유럽 대학은 물론 여타 유럽권 예술 대학에서도 롤모델로 꼽는 수준이다. 이 대학이 추구하는 교육 철학은 ‘무엇이든 상상한 것은 직접 만들어볼 것, 그리고 오래 생각할 것’. 잘 팔릴 만한 물건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면서 한편으론 세상을 뒤집어 보는 창의적인 디자인을 지향한다. 눈에 보이는 수치나 성과 대신 학생의 자율성과 논리, 작품의 스토리텔링과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 결과, 올해 세계 대학 랭킹(QS World University Ranking)에서 ‘아트 & 디자인’ 분야 전체 51개 학교 가운데 스웨덴 내 1위, 북유럽 내 2위에 올랐다.
콘스트파크가 현대적 디자인 교육기관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004년. 스톡홀름 텔레폰플란(Telefonplan) 지역의 스웨덴 IT 기업 에릭손(Ericsson)의 공장 건물을 인수하고 대규모 실습 시설을 갖춘 이후다. 작업실에는 스크린 & 텍스타일 프린팅 시설과 사진 & TV 스튜디오, 도자기와 유리 열 가공 시설과 목재나 금속 등 다양한 소재의 가공소 등이 있다. 그동안 세상에 없던 디자인이라도 세상에 있는 소재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구현하는 곳이다. 3D 컴퓨터 같은 최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대신 이처럼 고전적 방법을 고수하는 이유는 직접 형태를 만들어봐야 작품의 무게나 표면의 질감, 사용감 등 다양한 느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은 새로운 재능이나 취향을 발견해나갈 수 있다. 이처럼 수업은 보통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학교 밖 야외에서 찾은 나무, 꽃, 풀 등을 이용해 조형 작품을 만드는 ‘Welcome Trip’이나 싫어하는 재료를 만지고 관찰하면서 배우는 ‘Hate Workshop’은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창의성을 키운다. 재료를 찾고 작업 방식을 탐구하는 시간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 이것이 이 학교의 커리큘럼과 강의 방식이다.




텍스타일 프린트 작업장의 모습




메탈 워크숍의 모습

단순하지만 이상적인
콘스트파크는 현재 그래픽 디자인 & 일러스트, 인테리어 & 가구 디자인, 세라믹 & 유리공예, 순수 미술, 금속 디자인 등 총 7개 과목의 3년제 학사 과정과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공예, 순수 미술, 아트 교육 등 5개 과정으로 이루어진 2년제 석사 과정을 갖추고 있다. 모두 8월 말에서 9월 초 학기가 시작된다. 전체 학생 수는 약 1000명, 그중 국제 학생 비율은 평균 30%로 높게 유지하며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통해 긍정적 효과를 끌어낸다. 학사는 스웨덴어 공인 시험인 TISUS 점수, 석사는 TOEFL 혹은 IELTS 결과를 심사하며 학교 공식 홈페이지(www.konstfack.se)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받는다. 이후 합격자에 한해 대면 면접을 거쳐 작업 방향과 학교의 지향점이 일치하는 학생을 선별한다. 학비는 한국의 예술 대학, 대학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 2009년까지 국가에서 내·외국인 정규 과정 학생 모두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했으나 ‘비유럽권 등록금 차별 법안’이 통과되면서 2011년 가을 학기부터 유럽권이 아닌 외국인에겐 등록금을 받고 별도의 장학금 혜택을 부여한다. 교수들은 대부분 IKEA와 H&M, 이딸라 등 북유럽을 대표하는 브랜드에서 현직 디자이너, 화가, 공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필드에서 활동하는 교수들이 산업계와 학교를 연결하는 덕분에 많은 학생이 소니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등 유수의 디자인 기업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콘스트파크는 스웨덴의 문화 예술계 발전과 함께하며 세계적 아티스트를 대거 배출했다. 1950~1960년대에 활동한 디자이너로 이 대학의 첫 번째 여자 졸업생인 그레타 망누손 그로스만(Greta Magnusson Grossman)은 졸업 때 받은 장학금으로 스튜디오를 열어 그곳에서 대표작인 그라스호페르(Grasshopper) 조명을 탄생시켰다. 스웨덴계의 핀란드 동화 작가이자 무민 캐릭터의 창시자 토베 얀손(Tove Jansson)과 도자기 브랜드 구스타프스베리의 대표 디자이너 스티그 린드베리(Stig Lindberg)도 이곳에서 수학했다.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성을 강조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해온 이들은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디자이너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도 동문의 활약은 활발하다. 2010년 독일 매거진 <건축과 주거>가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한 프런트(Front) 디자인 그룹의 멤버 3명은 이 대학의 산업 디자인 석사 과정에서 만났다. 그 밖에 스웰 소파(Swell Sofa)와 토닉 암체어(Tonic Armchairs) 등을 디자인한 노만코펜하겐의 디자이너 요나스 바겔(Jonas Wagell), 노르딕 디자인 브랜드 로스트란드(Rorstrand)를 대표하는 작가 몬 아미에(Mon Amie)와 아크네 아트 디렉터 출신의 산업디자이너 에리크 올로브손(Erik Olovsson) 등 콘스트파크가 배출한 다수의 스타 아티스트가 현재 북유럽 디자인 및 예술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콘스트파크는 ‘모든 과정이 결과고 모든 결과 또한 과정’이라고 여길 만큼 과정을 중요시한다. 객관적 점수나 기준이 없는 이곳 학생들에게 교수의 평가 기준이나 취향, 동료와의 경쟁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문제점은 작업 과정과 자신의 한계에서 찾고 스스로 극복한다. 학생에게 작품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과 예술의 핵심에 관해 고민할 여유를 주는 느긋함은 우리 교육에서는 찾기 힘든 부분이다. 이들이 학교 안에서 듣고 만들며 배운 이론은 졸업 후 현실 세계에서 독창적인 예술 언어와 디자인 브랜드로 완성되고 있다. 여전히 세상의 많은 학교가 사회적 잣대와 통념에 집중하는 지금, 콘스트파크만의 단순하지만 이상적인 교육 방식은 예술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INTERVIEW
스웨덴과 한국을 주 무대로 활약하는 3명의 콘스트파크 동문을 만났다. 이들은 콘스트파크에서 자신만의 예술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비로소 터득했다고 답했다.




 

현대미술가, 안톤 알바레스(Anton Alvarez)
지난 2월부터 전을 통해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당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생애 첫 한국 전시를 한 소감은 어떠한가?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이다. 비슷한 시기에 대만에서 좀 더 큰 규모의 전시를 열었는데, 아시아의 서로 다른 두 도시에서 내 작품을 동시에 소개한다는 건 놀랍고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오래전 콘스트파크를 졸업하고 들어간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이 최근 서울에서 내 작품을 봤다고 했다. 지금도 여러모로 흥분되고 기분이 좋다.

콘스트파크에서 배운 커리큘럼이나 경험이 지금 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큰 도움이 됐다. 사실 학창 시절엔 내가 학교에서 뭔가를 배우고 있다고 여기지 못했다. 단지 내 작업에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학교에 있었을 때 내가 인지한 것보다 훨씬 더 교수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작업에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았다.

콘스트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콘스트파크에서 가장 좋은 건 교실 건물 구조다. 건물이 단층의 열린 구조라 다른 학과 학생과의 교류가 활발하다. 아침에 수업하는 교실로 가기 전 그래픽디자인을 하는 친구를 만나는 일도 있고, 그들과 대화하다 급작스레 협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음 날 다른 길로 등교하면 그날은 세라믹과 유리공예를 하는 친구를 만나고, 그들과 또 다른 작업을 하게 되는 거다. 지금도 그런 인연으로 함께 파트너가 된 후배들이 꽤 있을 거다.

콘스트파크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졸업을 앞둔 무렵의 일이다. 6월의 어느 날 졸업 전시를 했고, 학교에서 졸업생 전체가 그해에 정년퇴직하는 교수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난 후 장학금 수여식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당시 모든 졸업생에게 장학금이 주어졌다. 그러니까 그건 오랫동안 학교에서 수고한 교수들에게 주는 특별 선물인 동시에 스웨덴 특유의 비계층적(nonhierarchical)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해 졸업생 모두 최선을 다했고, 교수들도 그런 학생들을 맡아 기뻤다는 걸 모두에게 장학금을 주는 방식으로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내가 훗날 다닌 왕립예술학교 같은 데선 아주 잘하는 단 한 명의 학생을 뽑는 데도 오랫동안 고심을 했다.

10여 년 전부터 한국에선 북유럽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북유럽의 명문 콘스트파크에 진학하려는 이도 해마다 늘고 있다. 북유럽 그리고 콘스트파크가 디자인과 예술 분야에서 우뚝 선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명 브랜드가 스웨덴 디자인을 성공적으로 알린 영향이 크다. 또 이름이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출신 디자이너들 덕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덴마크에선 HAY가 가구 브랜드로 유명하고, 스웨덴에선 TAF가 디자인과 건축 스튜디오로서 좋은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콘스트파크 출신이라서 뭔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현대미술가 겸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조교수, 박하나
한국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다시 콘스트파크에 들어가 학부와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오래전 한국에서 대학 재학 중 교환학생 자격으로 스웨덴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섬유 관련 수업을 우연히 들었는데 가슴에 깊이 남았고, 특유의 분위기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무작정 스웨덴에 갔고, 뭔가 이전과는 다른 창의적인 일을 할 생각에 콘스트파크에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콘스트파크는 자유로운 학풍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학교에 다닐 때 분위기는 어땠나? 콘스트파크는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학생의 책임하에 자유방임을 지향하는 학교다. 학생들끼리 경쟁할 일은 거의 없다. 학교가 각자의 다른 점과 다양성을 존중하기에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함께 학교에 다닌 많은 친구들도 졸업생의 인지도나 공모전 입상 성적 같은 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창 시절의 추억이 있나? 산학협동의 일환으로 스웨덴 기업 이케아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작품을 상업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열심히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스웨덴 친구들이 한 프로젝트에 그토록 열의를 다하는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케아에선 학생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단가’나 ‘원가 절감’ 같은 문제만 지적했다.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당시 나와 친구들은 처음으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꼈다.

한국 대학에서 스칸디나비아어학을 전공했다.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다. 외국어에 워낙 관심이 많았고, 그중 희소성 있는 언어를 공부하고 싶었을 뿐이다. 다행히 콘스트파크 학사 과정에서 스웨덴어를 사용해 그 덕을 봤다.

현재 교직에 몸담고 있지만 몇 차례 ‘섬유 예술’ 관련 개인전을 열었다. 섬유 예술이란 분야에서 예술 세계를 펼치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부터 ‘섬유’라는 재료가 좋았다. 재료로서 섬유는 무궁무진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난 사실 콘스트파크에 입학하기 전부터 ‘섬유’를 공부하기로 결정했고, 콘스트파크 입학을 앞두고 스웨덴의 기초 예술 학교(prep school)에서 1년 동안 섬유를 전공하기도 했다. 이후 콘스트파크에선 더 찬찬히 밀도 있게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했다.




 

주얼리 스튜디오 ‘J0O0LRY’ 대표, 조현정
한국에선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어떻게 콘스트파크와 연이 닿았나? 한국에서 공방에 다니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클라라 에릭손(Klara Eriksson)이란 작가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가 콘스트파크 출신이란 걸 알게 됐다. 얼마 후 스톡홀름에 왔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계속 눌러살고 있다.

한국의 예술대학과 콘스트파크를 비교하면 어떤가? 콘스트파크에선 학생을 모두 예술가로 대한다. 어떤 주제로 무엇을 말하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기법적 문제는 알아서 해결할 문제로 여긴다. 학교에 다닌 2년간 몇 차례 워크숍이 있었는데, 개인적 터부를 깨고 어떤 주제든 겁먹지 않고 작업할 수 있게 학교에서 단초를 제공해준 듯하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수평적인 것도 한국 대학과 콘스트파크의 다른 점이다.

콘스트파크의 수업 방식이 궁금하다. 그들은 주로 무엇에 중점을 두나? 어떤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확고히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작업 프로세스를 찾게 하는 것 등을 커리큘럼에 중요하게 반영한 느낌이다. 한 학기에 한두 번은 사회적 주제로 밀도 있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그게 끝나면 다시 기나긴 자유 작업 수업이 이어진다. 한마디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것’, 이것이 콘스트파크가 지향하는 수업이다.

스톡홀름에서 주얼리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로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있나? 스웨덴에서 지내는 게 생활이나 작업 리듬 면에서 더 잘 맞는다. 이곳은 모든 것이 한국보다 느릿느릿 여유롭다. 어떤 압박과 자극을 받으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에 살면서 좋은 건, 스웨덴 작가들이 그리는 독특한 색감이나 이 나라 특유의 매력적인 시각적 요소와 늘 함께할 수 있다는 거다.

향후 주얼리 디자이너로서의 계획은? 매년 컬렉션을 발표하고 종종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하며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콘스트파크 출신’이란 무엇을 의미하나? 특정 학교 출신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단, 스웨덴에서 콘스트파크는 예술가와 디자이너 집단의 주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아직 낯선 학교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임해경 (hklim@noblesse.com)
사진 제공 콘스트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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