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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6 FEATURE

미술관 속 구하우스

  • 2016-06-21

아시아와 유럽, 미국 할 것 없이 다양한 국적과 각기 다른 취향을 지닌 아트 컬렉터들을 만나다 보면 수백 점부터 수천 점의 작품까지, 앤티크부터 현대미술까지, 한 나라 작가에게 집중하는 컬렉터부터 특별한 경계를 두지 않는 컬렉터까지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7월 1일 개관을 앞둔 프라이빗 미술관 ‘구하우스’의 구정순 대표도 컬렉터로서 꿈꾸는 확고한 그림이 있다. 관람객이 구하우스를 통해 집의 의미, 그리고 미술을 다르게 보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1층 통로에는 구정순 대표가 수집한 디자이너들의 블랙 체어를 디스플레이했고 천장에는 다카시 구리바야시의 ‘펭귄’을 설치해 위트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구하우스 외관. 벽돌을 이용해 픽셀레이션 효과를 냈다.




실제로 가까운 지인이 투숙할 수 있도록 욕실까지 구비한 장프루베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화이트 캐비닛




리빙룸에는 요헨 팡크라트의 회화 작품 ‘The Idea, 2-Pieces’ 앞으로 톰 딕슨의 ‘Pylon Chair’가 놓여 있다.




라이브러리를 장식한 자비에 베이앙의 ‘Mobile(Le Corbusier)’

디자인포커스 구정순 대표의 아트 컬렉션을 만나러 양평으로 가는 길, 오후의 불볕더위를 미리 예고라도 하는 듯 아침부터 강렬한 햇살이 차창을 뚫고 들어왔다. 차양과 선글라스로도 피할 수 없는 열기가 차 안을 가득 메웠지만 머릿속에는 구하우스의 아트 컬렉션을 빨리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구정순 대표가 이끄는 디자인포커스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기업을 시각적 이미지로 상징화한 CI/BI 디자인 회사. 1983년 ㈜금성이 창립 25주년을 맞아 진행한 CI 작업으로 CI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당시 국내 디자인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디자인포커스는 30년 넘게 수백 개 기업의 아이덴티티 전략과 네이밍, 디자인 시스템을 개발하며 삼양사, 카스, 굿모닝증권, CGV, 한국일보, KBS, 국민은행, SK텔레콤 옥수수 등의 CI를 국민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심어놓았다. 국내에서는 최고의 디자인 구루로 명성을 얻은 그녀의 아트 & 디자인 컬렉션이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양평, 그 안에서 예술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서종면 문호리는 이영애를 비롯한 셀레브러티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더욱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진 동네다. 구하우스(KOO HOUSE)도 바로 거기에 위치해 있다. 북한강과 중미산이 어우러진 절경을 병풍으로 두른 구하우스의 컨셉은 ‘Living with Art’. 하우스라는 이름처럼 예술과 생활공간이 공존하는 미술관이란 뜻을 담았다. “이상하게 한국인은 의식주 중에서 주에 가장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아요. 밖에서는 멋진 옷 입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사람들도 주거 환경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는 투자를 하지 않아요. 집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자꾸 밖으로 나돌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집은 더 엉망이 되고, 그러면 또 집에 들어가기가 싫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구하우스를 통해 집 안에서 어떻게 즐거운 문화적 자극을 받고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대중과 구하우스를 공유하고, 방문한 관람객이 집으로 돌아가 ‘우리 집도 그렇게 꾸며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구정순 대표의 바람. 미술관 이름처럼 기본적으로 내부 공간의 컨셉도 ‘집’이다.
이를 위해 구정순 대표가 장고 끝에 선정한 건축가는 2014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커미셔너와 큐레이터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다. 조민석 건축가에게 가장 강력하게 주문한 건 미술관을 ‘집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초반 설계 도면에서는 미술관 외관에 너무 직선이 많아 약간 위압적인 느낌이었어요. 집은 사람의 긴장을 풀고 뭔가 내려놓게 하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미술관’ 같았죠. 상의한 끝에 미술관 외관 양쪽 끝부분을 둥글게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조민석 건축가는 공간과 복도, 건축물과 마당, 사선과 곡선의 배치, 예각과 둔각의 코너 공간 등을 통해 이용자의 다양한 공간 경험을 유도하며 미술관 전체를 ‘하나이면서 여럿’인, 즉 ‘집이면서 미술관’인 공간으로 구현해냈다.
미술관은 총 2층으로 1층 전체와 2층 일부에는 전시실이, 2층 한편에는 수장고가 자리 잡았다. 집의 구조를 바탕으로 한 만큼 각각의 전시실 명칭도 남다르다. 1층에는 플레이룸·컬렉션룸·프런트룸·장프루베룸·라이브러리·리빙룸이, 2층에는 통로를 따라 다락·포트레이트룸·패밀리룸·베드룸이 자리한다. 현재 미술관에 전시한 작품은 120점 정도. 구정순 대표가 지난 30년간 수집한 400여 점 중 일부다. 나머지 작품은 수장고에 보관 중이지만, 우리가 그날의 기분에 따라 거실과 침실의 작품을 바꾸듯 구정순 대표도 상황에 따라 수시로 작품을 교체할 예정이라고.




2층 베드룸의 전경. 빨간 침대와 그 옆의 사이드 테이블은 쥘 르뢰와 장 프루베의 작품




다락에는 레슬리 드차베즈가 필리핀 전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비판한 작품 ‘The Specter’가 놓여 있다.




2층 천장에 설치한 조아나 바스콘셀루스의 ‘The Weird of Oz’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마르크 베르티에의 블루 테이블과 체어. 1967년 작품이다. 그 뒤로 보이는 그린 컬러 메탈 작품은 스위스 작가 고트프리트 호네거의 ‘Pliage Z. 189’다.

구정순 대표의 아트 컬렉션 리스트는 기업 미술관 못지않을 만큼 미술사적으로도 화려한 면면을 자랑한다. 어윈 올라프, 막스 에른스트, 톰 웨슬먼, 서도호, 니키 드 상팔, 도널드 저드, 제이크 채프먼, 다니엘 뷔랑, 조아나 바스콘셀루스, 토비아스 레베르거, 제프 쿤스, 소피 칼, 캐서린 와그너 등 21세기 현대미술가의 총집합소인 이곳은 가히 현대미술의 아지트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 디자인업계를 수십 년간 이끌어온 리더답게 디자인 퍼니처 컬렉션 수준도 높다. 장 프루베, 론 아라드, 톰 하스, 아르네 야콥센, 필립 스탁, 조지 나카시마, 프랭크 게리, 톰 딕슨, 한스 베그너, 카림 라시드 등의 다양한 디자인 퍼니처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조화롭게 배치한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아트 컬렉팅을 위해 자문을 받는 곳도, 조언을 구하는 곳도 없다고. 컬렉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작품을 봤을 때 강렬하게 꽂히는 작품이 있어요. 그런 작품이 나타나면 큰 고민 없이 제 감을 믿고 구입하는 편입니다.“
미술관 관람은 1층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플레이룸’부터 시작한다. 아이들과 함께 온 관람객을 위해 만져보고 앉아볼 수 있는 디자인 소품을 배치한 배려가 돋보인다. 러시아 작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조각 ‘Russian Doll’, 자유로운 색감이 인상적인 스타스키 브리네스의 ‘I Suppose They are after Me’는 어른과 아이의 시선을 모두 사로잡는다.
플레이룸과 마주 보고 있는 ‘컬렉션룸’에는 퐁피두 미술관이 기금 마련을 위해 왕광이, 쿠사마 야요이, 베르나르 브네, 요시다 기미코, 귄터 우에커 등 18명의 작가와 함께한 커미션 작업 ‘미러 컬렉션’이 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맞은편 벽면의 대규모 진열장에는 세계의 향수와 무라노 등에서 공수한 유리공예 작품, 아기자기한 디자인 미니어처 피스 수백 점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렇게 예쁜 것이 많은데, 지인들이 보면 혹시 달라고 조르진 않나요?”라고 물으니 “아니요. 서로 자기 집에 있는 것을 가져다주겠다고 해요. 집에 있을 땐 빛이 안 나는데, 여기에 가져다놓으면 더 돋보일 것 같다고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구하우스가 집의 구조를 취한 건 ‘라이브러리’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거대한 책장과 테이블, 의자가 놓인 이곳에선 자비에 베이앙의 ‘Mobile(Le Corbusier)’이 공간에 균형감을 불어넣고 있다. 세계적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모습을 조각한 이 작품은 공중에 매달린 모빌과 서로 교감하는 형태를 취했다. 조지 나카시마의 ‘Conoid Bench’도 라이브러리라는 장소적 특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오브제다.
각각의 룸을 둘러보다 자연스럽게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됐다. 구하우스에는 평면 작품보다 조각이나 설치, 디자인 오브제 같은 입체 작품이 많다는 것. “사람들이 단색화, 단색화 하는데 저는 그리 매력을 못 느껴요. 발상이 재미난 작품에 끌리는 편이라 그런가 봐요.” 그래서인지 평면 작품 중에서도 회화보다는 과감한 컬러와 디자인이 섞인 사진이나 판화 작품을 좋아한다.




구하우스 옥상에 놓인 토머스 헤더윅의 스펀 체어




2층 통로에 놓인 최정화 작가의 작품 ‘The Present of Century Series’




포트레이트룸에서는 에르빈 올라프의 설치 작품 ‘The Keyhole’을 관람할 수 있다.




베드룸에 장식한 앨릭스 카츠의 ‘Wedding Dress’ 8 2층 통로에 놓인 최정화 작가의 작품 ‘The Present of Century Series’

프랑스 건축가 장 프루베에 대한 오마주로 꾸민 ‘장프루베룸’은 게스트룸으로도 사용 가능한 공간이다. 장 프루베가 직접 디자인한 책장과 램프, 의자, 침대까지 직접 앉아보고 누워볼 수 있는 오브제로 가득한 이 룸에 실제 묵게 될 게스트를 위해 구정순 대표는 욕실도 함께 꾸몄다. 벌거벗은 남자가 새장 속에 갇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펑이잉(Feng Yiying)의 브론즈 조각 ‘Jiu Peng’과 화장실 변기의 배치가 웃음을 자아낸다.
2층으로 오르면 최정화 작가의 실버, 블루, 레드 컬러의 ‘The Present of Century Series’가 관람객을 맞는다. 복도를 지나 도착한 ‘다락’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필리핀 작가 레슬리 드 차베즈의 ‘The Specter’. 이 작품은 필리핀의 전 대통령이자 독재자로 군림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콘크리트 두상을 삽 위에 올린 후 오래된 침대에 설치한 것으로 침대 맞은편 벽에 쓰인 이름은 그의 재임 기간에 고문당하거나, 납치되거나, 실종되어 희생된 사람들이다.
맞은편 ‘포트레이트룸’으로 가면 또 하나의 걸작이 관람객을 반긴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사진작가 에르빈 올라프의 사진과 비디오 설치 작품 ‘The Keyhole’. 2012년 공근혜갤러리에서 선보인 이 작품은 보이지 않는 문 저편의 것을 늘 궁금해하는 인간의 관음증을 다룬 6m가 넘는 설치물로, 관람객이 양쪽 끝에 달린 문손잡이의 열쇠 구멍으로 내부에서 상영되는 영상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꾸몄다. “이 작품 설치를 위해 작가가 현지에서 목수 2명을 보내줬어요. 제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이런 작가, 정말 만나기 쉽지 않아요.” 앨릭스 카츠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인 페인팅,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 쥘 르뢰와 장 프루베가 함께 제작한 ‘Bed and Side Table’ 등이 아늑한 침실 분위기를 자아내는 ‘베드룸’은 창 너머 양평의 고즈넉한 풍광까지 더해 그야말로 그림같이 평화로운 전원 풍경을 만들어낸다.
구정순 대표는 머릿속에서 구하우스를 구상하며 스위스 바젤 외곽 뮌헨슈타인에 자리한 샤울라거 미술관을 떠올렸다고 했다. 전시장과 수장고를 하나의 건물로 설계한 샤울라거 미술관은 구정순 대표를 비롯한 많은 아트 컬렉터와 미술 관계자가 ‘미술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곳’이라고 평가하는 미술관이다. 미술관의 전형적 형태, 바깥과 단절된 화이트 큐브와 달리 거실, 침실, 다락, 복도, 서재 등에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 없이 예술을 감상하는 구하우스. 양수리의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이곳에서 디자인 가구와 컨템퍼러리 아트의 유쾌한 믹스 매치가 끊임없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구하우스(KOO HOUSE)
위치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무내미길 49-12
운영 시간 화~금요일 10:30~17:30, 토·일요일·공휴일 10:30~18:30, 월요일 휴관
문의 031-774-7460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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