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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9

민중 미술과 대중 예술

‘단색화’ 가고 ‘민중 미술’ 온다. 어딘가 부담스러운 이름이지만 서울의 갤러리와 미술관은 이 흐름으로 벌써 뜨겁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 콘텐츠 집단도 사람들로 붐빈다. 이들의 특기는 ‘대중 예술’이다.

민정기, 벽계구곡도,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0×336cm, 1992




황재형, 아버지의 자리, 캔버스에 유채, 22×162cm, 2013

단색화에 이어 찾아온 손님
2015년은 단색화의 해였다. 단색화는 국내는 물론 해외 미술 시장에까지 진출해 많은 이에게 ‘비움의 미학’을 선물했다. 2016년엔 ‘포스트 단색화’로 민중 미술이 꼽힌다. 그간 1980년대에 태동한 국내 미술의 중요한 갈래임에도 가뭄에 콩 나듯 열린 전시와 달리, 이번엔 연초부터 가나인사아트센터와 학고재,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주요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잇달아 관련 전시를 잡았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가나인사아트센터다. 이들은 지난 1월 28일부터 1980년대 한국 민중 미술 대표 작가 8명의 주요 작품을 모은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Ⅱ-리얼리즘의 복권>전을 2월 28일까지 열었다. 1980~1990년대에 국내에서 활동하며 우직하게 당대의 풍경을 포착한 권순철과 신학철, 민정기, 임옥상, 고영훈, 황재형, 이종구, 오치균의 작품 100여 점을 소개한다. 특히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가 이 전시의 기획을 맡아 더욱 눈길을 끌었는데, 그는 전시 오픈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단색화가 토착화된 모더니즘이라면, 민중 미술은 토착화된 리얼리즘”이라며 지난해에 국내 미술계의 화두로 떠오른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올해 민중 미술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학고재에서도 민중 미술 1세대 작가인 주재환의 전시를 3월 4일부터 4월 6일까지 연다. 주재환 작가는 폐자재를 이용해 자본주의를 유쾌하게 비트는 작품으로 유명한데, 이번 전시에선 과거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학고재의 김한들 큐레이터는 “민중 미술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운 젊은 미술 애호가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주제 자체는 진중해도 외향적으론 꽤 위트 있는 작업을 해온 주재환 작가를 올해 첫 민중 미술 전시 작가로 초대했다”고 전했다. 학고재는 이 전시 외에 올 9월에도 현재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작품을 전시 중인 신학철 작가를 불러 단독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역시 민중 미술 붐에 합류한다. 서소문 본관 2층에 상설전시실을 열어 4월부터 200여 점의 민중 미술 작품을 전시한다.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의 작품 기증 컬렉션으로 국내 민중 미술 대표작 200여 점을 상설 전시할 예정이다. 참고로 서울옥션은 지난해 말 민중 미술의 열기를 한발 앞서 ‘경매시장’으로 끌어와 주목받았다. ‘Art for Life’라는 이름으로 열린 당시 경매엔 총 20여 점의 민중 미술 작품이 출품됐고, 그중 15점이나 낙찰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 미술사에서 1980년대는 민중 미술 운동이 일어나고 사회에 대한 미술의 비판적 발언이 높았던 때다. 민중 미술은 당시 미술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는 미술인들의 자각으로 태동했다. 그래서 더욱이 민중 미술은 단색화와 더불어 우리가 허투루 넘겨선 안 되는 한국 미술의 중요한 한 축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비롯해 영화와 음반 시장에서 여전히 복고 열풍이 이어지고 있는 올해, 미술계에서도 많은 이가 1980~1990년대를 풍미한 민중 미술에 관심을 보였으면 한다.

 




고영훈, The Human History, 천에 아크릴물감, 120×167cm, 1990




임상빈 작가와 함께한 디스위켄드룸의 < Talk Chess >




우리에게 친근한 놀이를 색다르게 표현한 이은선 작가의 <점숨면>

서울의 아주 대중적인 예술 집단 두 곳
대중화 바람이 뜸하던 예술계가 몇몇 예술 콘텐츠 제작 집단의 참여로 활기를 띠고 있다. 대중과의 깊이 있는 ‘친목 도모’를 위해 기획한 이들의 예술 콘텐츠가 요 몇 년간 각광받고 있는 것. 갤러리 전시로만 익숙하던 미술가가 대중 체험형 작품을 내놓는가 하면, 몇몇 미술가는 무용가와 만나 기존에 없던 융·복합 작품을 선보이며 더 넓은 층의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지금 가장 눈에 띄는 집단은 서울 청담동의 ‘디스위켄드룸(This Weekend Room)’이다.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예술가들과 함께 문화 예술 콘텐츠와 유통 방식의 새로운 방향을 제안하는 게 목표인 이들은 그간 각종 매체를 활용해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문화 예술 콘텐츠를 개발해왔다. 일례로 지난여름 성수동의 한 공간에서 열린 < Talk Chess >는 이들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콘텐츠. 체스 마니아로 통하는 임상빈 작가가 이란과 미얀마 등 현지에서 느낀 체스 문화와 깊이를 자신이 직접 만든 책(교본)과 체스판 전시, 게임 등으로 풀어내 ‘놀이와 미술’의 결합이라는 경험을 선사했다. 이들은 올 초에도 지난해에 버금가는 콘텐츠로 관람객몰이를 했다. ‘관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온 이은선 작가를 초대해 땅따먹기와 종이접기, 풍선 불기 등 우리에게 친근한 놀이를 색다르게 선보여 기존 미술 애호가는 물론 아이들도 좀 더 가깝고 특별하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한 것. 디스위켄드룸의 김나형 디렉터는 “누구나 미술을 흥미롭고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나아가 부담 없이 작품을 감상하고 소장할 수 있게 유도하고자 한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들은 3월 중순에도 <2016 Artist Live Showcase>라는 이름으로 미술과 공예, 건축, 과학 분야에서 각각 고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박경근과 이광호, 이일정, 김영희 등의 작가 6인을 초대해 각자의 작업을 요리와 패션, 여행 등의 요소로 자유롭게 해석하게 한 뒤 제한된 소수의 관람객과 특별한 만남을 갖게 할 예정이다.
한편 ‘닷밀’은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융·복합 콘텐츠로 일반인에게 예술의 대중화를 알리는 예술 집단이다. 이들은 주로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모이는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규모가 큰 행사나 각종 미술과 공연 행사가 필요한 기업을 상대로 설치미술과 비디오아트, 현대무용 등 다양한 매체를 결합한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이들의 특징은 미술이나 미디어 아트 같은 일반 전시나 공연에 웅장한 체험형 홀로그램 효과를 더해 기존의 미술 애호가는 물론 첨단 기술에 관심이 많은 관람객까지 함께 포용한다는 것. 2012년 설립 이후 2년 동안 무려 500여 건의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전력은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기술의 우수함을 말해준다. 2월 24일부터 3월 6일까지 이들은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3명의 수도사가 이탈리아 수도원으로 향하는 과정을 담은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를 특유의 홀로그램 기술과 결합해 공개한다. 국내 공연 예술의 대중화를 염두에 둔 이러한 공연을 통해 이들이 더 넓은 무대에서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길 바란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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