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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6 ISSUE

사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 2016-05-30

뒤늦게 화가로 데뷔해 독자적인 길을 걸은 앙리 루소.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7월 17일까지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를 개최합니다. 그의 삶과 회화 기법을 이해하고 새롭게 루소의 작품을 감상해보길 권합니다.

앙리 루소(1844~1910년)
루소의 일생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많지 않다. 프랑스 서부 도시 라발(Laval)에서 양철공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정식으로 예술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오랫동안 파리 세관에서 근무한 그는 독학으로 미술을 배워 40세에 루브르 미술관에서 그림을 모사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았다. 42세에 처음으로 앙데팡당 전시에 출품했으며 49세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파리의 전위예술가와 폭넓은 교우 관계를 맺었으며, 독일의 화상이자 미술평론가 빌헬름 우데는 루소 개인전을 열고 최초의 전기를 출간하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사후에야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약 200점의 작품이 전해진다.

 




필생의 대작
‘전쟁’



War, Oil on canvas, 114ⅹ195cm, 1894, Musee d'rsay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앙리 루소의 작품 중 가로 길이가 2m에 달하는 전쟁 그림이 있습니다. 표현 양식으로 보면 루소의 작품이 분명하지만, 우리가 흔히 봐온 이국적이거나 환상적인 그림이 아니라 좀 생소하죠. 루소는 또렷한 윤곽선과 선명한 색상을 주로 사용하고, 동화책의 삽화처럼 소박하고 천진난만한 필치를 보여주는 화가로 유명합니다. 이런 화풍을 선보이던 작가가 어쩌다 전쟁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골랐을까요? 루소의 삶을 한번 살펴보죠. 그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두아니에’, 즉 세관원이라는 별명입니다. 루소가 거의 50세가 될 때까지 파리의 세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서 언젠가 위대한 화가가 되겠다는 야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화가들과 어울려 전시회에 참가하고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하자, 루소는 드디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하죠. 그때의 심경이 어땠을지 상상해보세요.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엄청난 작품을 선보일 때가 된 겁니다. 자신의 경력에 한 획을 그을 대작을 내놓기 위해 그가 선택한 주제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작품 속으로
하늘을 달리는 검은 말과 흰옷을 입은 소녀 아래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으며, 이리저리 가지를 뻗은 채 말라 죽은 나무들 사이론 까마귀가 날고 , 새파란 하늘에는 핏빛 구름이 떠 있습니다. 하나하나 시각적으로 강렬한 여러 이미지가 뒤엉켜 화폭을 채우고 있네요. 복잡한 요소를 한 화면 안에 어떻게 배치하느냐는 곧 화가의 역량을 말하는데, 루소는 매우 대담한 화면 구성을 시도했습니다. 미술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언뜻 우첼로의 ?산로마노 전투?를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루소가 살던 시대에서 거의 5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먼 옛날 작품이지만, 복잡한 장면 속에서도 각 사물을 또렷하게 묘사하고 평면적으로 겹쳐 그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물을 묘사하는 방식만 놓고 보면 루소의 그림은 그가 살던 19세기의 작품보다 오히려 먼 과거의 그림과 더 닮았습니다. 그만큼 당대의 화풍과 극심한 차이를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소가 먼 옛날의 작품처럼 훌륭한 비례나 조화로운 화면 구성을 꾀한 건 아닙니다. 각 부분의 시점이 마구 섞여 발생하는 왜곡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사물을 묘사할 때 기법의 미숙함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더 이상 그림을 잘 그리느니 못 그리느니 따위의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화가의 의지가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입니다.

독특한 화풍으로 묘사한 전쟁
5년 전 오르세 미술관 소장품 중 일부를 예술의전당에 전시했을 때 이 작품도 한국을 찾았습니다. 당시 작품 앞에서 전쟁의 공포나 죽음의 엄숙함에 숙연해진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화면의 하단부를 시체로 가득 채웠는데도 루소 특유의 인물 묘사를 보며 웃음 짓는 관람객이 적지 않았죠. 그들에겐 묵직한 주제보다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화풍이 먼저 다가온 겁니다. 사실 루소가 살던 당시는 봉기와 혁명, 전쟁과 죽음의 기운이 팽배한 시대였기 때문에 그 역시 전쟁의 광기와 참혹함을 어느 정도 체험했을 겁니다. 이 작품은 루소라는 화가가 들려주는 전쟁 이야기입니다. 즉 전쟁에 대한 화가의 주관적인 해석이죠. 같은 사건이라도 누가 전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참 다르게 재구성되곤 합니다. 루소의 전쟁 이야기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보다 상징에 몰두한 서사입니다.
글. 신혜성(미술평론가)




연인, 아폴리네르와 로랑생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The Muse Inspiring the Poet, Oil on canvas, 146.2×96.9cm, 1909, Kunstmuseum Basel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사랑은 가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프랑스인의 애송시 ‘미라보 다리’(1912년)의 일부입니다. 20세기 초 파리 예술계를 이끈 시인이자 미술평론가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이별의 허망함을 이 시에 담았죠. 그가 한때 사랑한 여인은 바로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입니다. 1907년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소개로 로랑생을 만났고, 두 사람은 5년 동안 연인 관계였습니다. 루소가 세상을 뜨기 한 해전인 1909년에 완성한 작품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는 이들을 모델로 그린 초상화입니다. 이 그림에 로랑생은 뮤즈로 등장합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긴 드레스를 입은 로랑생은 왼손으로 시인을 독려하면서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검은색 슈트 차림인 아폴리네르는 시인답게 깃털 펜과 종이 두루마리를 들고 있군요. 완성작을 본 로랑생은 뚱뚱하게 그렸다며 투덜댔다지만 이 그림에는 ‘위대한 시인에겐 거대한 뮤즈가 필요하다’는 화가의 속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당대에 이해받지 못한 예술가와 선구적 심미안을 지닌 비평가 사이에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아폴리네르는 궁핍한 루소를 돕고자 초상화를 주문했고, 이 그림을 300프랑에 구입했습니다.

작품 속으로
루소는 소위 ‘풍경 초상화’의 개척자입니다. 그 뜻 그대로 자연풍경을 배경으로 인물을 그리는 양식이죠. 그는 특히 숲을 배경으로 그린 초상화를 많이 남겼는데, 그래서인지 “루소의 그림 한 점에 50여 개의 녹색이 들어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녹색을 사용했습니다. 이 그림도 뤽상부르 공원의 초록 숲을 배경으로 정면을 향해 서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여러 번의 붓질로 표현했습니다. 원근법적 공간감이나 정확한 데생 능력을 찾긴 힘들지만 매우 치밀한 세부 묘사를 볼 수 있죠. 그의 장인적 꼼꼼함은 꽃잎이나 풀잎, 나뭇잎 하나하나, 그리고 어딘가 어설픈 필체지만 잔뜩 멋을 낸 오른쪽 하단의 붉은 서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폴리네르의 회고에 따르면 루소는 모델로 선 그의 눈, 코, 입, 이마, 손 등 신체 사이즈를 모조 리자로 쟀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밀하게 그리려 했음에도 실제와 그다지 닮지 않은 초상이 완성되었다는 게 무척 아이러니합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2점 존재한다는 겁니다. 평소 식물원에서 다양한 나무와 풀을 스케치한 루소는 화면 속 두 인물 앞에 붉은색과 하얀색 패랭이꽃을 그려 넣었습니다.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에서 소장한 또 하나의 그림에는 패랭이꽃 대신 비단꽃향무를 그렸습니다. 시인의 꽃이 패랭이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된 화가는 새로 또 한 점의 그림을 그렸죠. 그러니까 지금 보는 작품은 루소가 두 번째로 그린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입니다. 작품 창작에 정확성을 기한 화가의 빈틈없는 성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

20세기 초 파리 전위예술계와 루소
1908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작업실 ‘세탁선’에서 피카소가 루소를 위해 마련한 연회는 유명합니다. 골동품상에서 루소의 여인 초상화를 헐값에 구입한 피카소는 루소를 위한 모임을 꾸렸고 여기에 앙드레 살몽, 막스 자코브, 거트루드 스타인, 조르주 브라크, 기욤 아폴리네르, 마리 로랑생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루소는 감사의 뜻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아폴리네르는 루소를 찬양하는 즉흥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입체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비평가이자 ‘초현실주의’라는 말을 최초로 쓴 전위예술가 아폴리네르가 루소의 개성적인 그림을 주목한 건 당연합니다. 루소의 고향 라발에 있는 그의 묘비에도 아폴리네르의 시를 새겼습니다. 일찍이 루소 회화의 예술적 가치를 알아본 이들이 없었다면 그의 작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글. 김보라(미술평론가)




루소의 꿈
‘잠자는 집시’



The Sleeping Gypsy, Oil on canvas, 129.5×200.7cm, 1897, The Museum of Modern Art

앙리 루소는 ‘잠자는 집시’를 앙데팡당 전시에서 처음 선보였습니다. 주류보다는 재야의 미술가인 루소에게 어울리는 전시였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이 작품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프랑스에서 활동한 당대 최고의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가 루소의 작품에 주목했고, ‘잠자는 집시’도 유명한 기획자 앨프리드 바(Alfred H. Barr Jr.)에 의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됐습니다. 그렇다면 뒤늦게 인정받은 ‘잠자는 집시’에는 어떠한 매력이 있고, 이 작품을 통해 루소의 예술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작품 속으로
달이 뜬 고요한 밤. 멀리 낮은 산이 보이는 사막 한가운데에 한 시인이 누워 있습니다. 곤히 자고 있는 그의 옆에는 류트와 물병이 놓여 있습니다. 간소한 소지품만 들고 여행하다 쉬고 있는 시인 옆에 사자가 나타나 그를 주시합니다. 시인과 류트, 사막과 달 그리고 사자. 이 모든 모티브가 서로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모순적입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듯한 이 고요한 장면은 신비로운 꿈속 세계 같습니다. 시인과 류트는 우리를 향해 정면으로 누워 있고 사자는 측면으로 그렸으니, 이것은 실제 풍경이 아닙니다. 우리가 꿈에서 서로 상관없는 요소를 함께 만나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실제로도 이 부자연스러운 조합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끕니다. 현실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공간, 하지만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 환상적인 세계로 말입니다. 루소는 그런 공간을 선명한 색과 뚜렷한 윤곽선으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 소재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지만 오히려 이들이 만들어내는 모순적 조합을 통해 색다른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 이국적인 풍경에 대해 당시 새로운 미술을 찾고자 한 화가들은 큰 찬사를 보냈습니다. 앙리 루소는 원시적 소재, 원근법이나 세밀한 묘사 등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표현으로 젊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작가입니다.

원시적 꿈과 환상의 세계
당시 프랑스에서는 서구화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루소는 파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파리 만국박람회나 아프리카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세계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파리 식물원에서는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 자라는 여러 식물을 접하고 그것을 화폭에 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작품 속 사자는 파리 식물원 앞의 사자 조각상과 유사합니다. 여기서 루소가 생각한 원시적 꿈과 환상이 드러납니다. 몸은 파리에 있지만 그의 환상세계는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행복한 곳이며, 달빛 아래 누워 잠들 수 있고, 야수조차 공격하지 않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였을 겁니다. 우리도 이런 꿈을 꿀 때가 있지 않나요? ‘올여름엔 유럽에 가볼까, 아니면 동해 바다에 다녀올까?’ 하는 여행 계획부터 언젠가 아름다운 호숫가에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꿈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자신만의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 그것을 루소는 이렇게 환상적으로 표현했죠. 그 덕분에 우리도 그의 그림을 통해 고요한 밤 사막에 평화롭게 누워 있는 시인이 되어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글. 허나영(미술평론가)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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