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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6 ISSUE

Moving Gallery

  • 2016-08-31

화이트 큐브를 거부하고 세상 밖으로 나온, 바퀴 달린 갤러리의 신세계.

인도 뭄바이를 순회 중인 이동식 카트 뮤지엄, 다라비 디자인 미술관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예술을 추구하는 블랙 큐브 미술관




공공 예술을 위한 모바일 프로젝트, 미국 미네소타 주의 트래블링 뮤지엄은 아트 레지던시로도 운영 중이다.

화이트 큐브란 전통적 갤러리 구조를 일컫는 말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방을 새하얗게 칠한 공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작품 외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멸균 공간’. 최근 이러한 화이트 큐브에 대한 인식과 관념적 큐레이팅에 도전해 전시장 밖을 떠도는 새로운 형태의 갤러리가 등장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미술 생태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이동형 갤러리가 그것으로, 그 안에서 자유로운 감성이 가득한 유목 전시가 열린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빈민촌이 자리한 인도 뭄바이 다라비. 지난 2월, 이곳에 3m2 면적의 좁은 ‘다라비 디자인 미술관(Design Museum Dharavi)’이 들어섰다. 이 초소형 뮤지엄은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호르헤 마녜스 루비오(Jorge Manes Rubio)와 예술 평론가 아만다 피나티(Amanda Pinatih)가 기획했다. 조립과 분해가 쉬운 모듈 구조의 카트 뮤지엄으로 작은 차나 오토바이로 끌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다라비 디자인 미술관은 2개월에 한 번씩 시내 곳곳으로 자리를 옮기며 지역 예술가와 장인의 공예 작품을 전시한다. 찻잔과 소서, 점토를 구워 만든 테라코타 물병, 빗자루와 크리켓 라켓 등 실용적인 공예품부터 장인정신이 담긴 형형색색의 세라믹 오브제와 텍스타일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시의 목적은 예술과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한 이 지역을 전통과 공예, 창의력과 기술의 멜팅폿(melting pot)으로 만들기 위함으로 현재 이곳에선 지역 주민 간 새로운 상호작용과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바꿔보려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주 뉴런던의 ‘트래블링 뮤지엄(The Traveling Museum)’ 역시 공공 예술을 위한 모바일 프로젝트 공간으로 2014년 첫 운행을 시작했다. 강가에 낚시 도구 등을 보관하는 피시 하우스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은 구조물은 지역 내에서 이동하며 팝업 전시, 문화 이벤트, 워크숍을 펼친다. 작가를 입주시켜 작업실로 쓰게 하고 입주 기간이 끝나면 작가의 작업 결과물을 전시하는데, 전시가 없을 때 움직이는 아트 레지던시로 운영하는 점이 특징. 최근에는 스티븐 랭(Steven Lang)이 입주 작가로 초대받았다. 그는 미국의 문학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지낸 생활을 기록한 작품 <월든(Walden)>에서 모티브를 얻어 실버우드 공원 내 호숫가에 미술관 차를 정차해두고 그 안에서 한 달여간 지내며 쓴 글과 사진을 대중과 공유했다. 트래블링 뮤지엄은 2015년 아메리칸스 포 더 아츠(Americans for the Arts)가 선정한 ‘31개의 주목할 만한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에도 이름을 올리며 꾸준히 인기몰이 중이다.
장소의 경계가 없는 유목 전시는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예술이기도 하다. 작년 가을부터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를 순회 중인 이동형 컨테이너 미술관 ‘블랙 큐브(Black Cube)’. 지금까지 미술이 대중과 소통하던 방식인 화이트 큐브에 전면적으로 대항하는 이름처럼, 관람객을 기다리는 미술관이 아니라 먼저 대중을 찾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블랙 큐브의 총괄 큐레이터 코트니 레인 스텔(Cortney Lane Stell)은 한 인터뷰에서 “주유소, 식료품 가게, 공중화장실, 식물원 등 다양한 공공장소에서 펼칠 우리의 전시가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의 사회적 정의와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동하는 전시 공간은 아티스트에게 작품을 선보일 가장 효과적인 장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한다. 실제로 블랙 큐브 소속 아티스트 데지레 홀먼(Desiree Holman)은 커다란 암석이 가득한 레드 록 공원으로 컨테이너 미술관을 옮겼다. 뉴에이지의 신비주의를 표현한 그녀의 영상 작업물을 비정형의 기암괴석 위에 프로젝터로 투영하고, 붉은 흙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환상적인 전시를 완성했다.




기차의 각 차량을 아트 갤러리로 만든 일본의 겐비 신칸센




스코틀랜드 전역을 누비는 버스 미술관, 에든버러 시티 아트 센터의 트래블링 갤러리




영국의 리 브룸은 배달용 트럭을 개조한 이동식 쇼룸을 통해 새로운 조명 컬렉션을 선보인다.

브랜드에서도 이 같은 전시 형태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데, 배달용 트럭을 개조해 조명 컬렉션을 선보인 영국의 ‘리 브룸(Lee Broom)’이 대표적이다. 올해 4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기간엔 브레라, 토르토나, 산그레고리오 도켓과 벤투라 람브라테까지 온 시내를 누비며 디자인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트럭의 짐칸에 코린트식 기둥을 세우고 스투코 장식 벽지를 발라 이탈리아 궁전인 팔라초를 연상시키는 갤러리를 만들었다. 여기에 옵아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옵티컬 조명 컬렉션을 설치했다. 디자이너 리 브룸은 “옵티컬 조명 컬렉션을 어디에 전시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특정한 스폿이 아닌 밀라노 시내 곳곳에서 전시할 수 있는 이동하는 전시장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눈 깜짝하는 사이 지나가버리는 쇼룸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로드쇼라 이름 붙였다”라고 밝혔다.
공간은 협소하지만 기동성이 좋은 버스를 활용한 뮤지엄도 있다. 에든버러 시티 아트 센터의 ‘트래블링 갤러리(The Traveling Gallery)’는 주문 제작한 버스로 스코틀랜드 전역을 누빈다. 4월 말부터 세계에서 가장 빠른 현대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겐비 신칸센(Genbi Shinkansen)’도 철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에치고쓰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의 개최를 기념해 개통한 것으로 에치고유자와에서 니가타 역을 연결한다. 7팀의 아티스트가 열차 외관 장식을 비롯해 각 차량을 아트 갤러리로 만들었다.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 컨셉으로 차량 시트와 커튼, 카펫에는 빛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입혔다.
전시장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수단이자 새로운 아이디어의 물리적 거점이 되고 있는 움직이는 갤러리. 이 능동적인 바퀴 달린 갤러리는 전시 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며 동시대 예술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에디터 김윤영 (snob@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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