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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6 FASHION

이탈리아를 사랑한 샤넬

  • 2016-05-24

패션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수많은 컬렉션 중 ‘공방 컬렉션’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그 정교한 솜씨와 장인정신은 물론이거니와 컬렉션에 유유히 흐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 때문이다.



샤넬이 지난해 12월 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14번째 공방 컬렉션을 발표한다고 했을 때 놀라움과 의아함이 동시에 일어났다. 샤넬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친하다고 할 수 없는 경쟁 관계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각국의 자부심이 높아서 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말이다.
‘2015~2016 파리 인 로마 공방 컬렉션(Paris in Rome 2015/2016 Me′tiers d’Art Collection)’이 열린 곳은 로마의 치네치타 스튜디오. 치네치타 스튜디오는 1937년 할리우드 영화에 도전장을 내밀고자 설립한 곳이다. 이곳에서 <벤허>, <클레오파트라> 같은 대작을 비롯해 총 3000여 편의 영화를 촬영했고 그중 47편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이탈리아 영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특히 공방 컬렉션 쇼가 열린 테아트로 No.5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즐겨 사용한 곳이다. 본격적인 컬렉션 쇼에 앞서 참석자들은 로마 안티카 영화 세트장에서 칵테일파티를 즐긴 뒤 치네치타의 가장 중요한 스튜디오로 손꼽히는 피시나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제럴딘 채플린이 출연한 칼 라거펠트의 최신 단편영화 <원스 앤 포에버(Once and Forever)>를 감상했다. 드디어 로마 속 파리를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현한 테아트로 No.5로 이동했다. 파리의 생기 넘치는 옛 거리를 옮겨놓은 무대장치는 쇼를 보기도 전에 참석자들의 호기심을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이탈리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수록 무엇이 샤넬을 로마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1920년 여름, 가브리엘 샤넬은 연인 보이 카펠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뒤 친구 미시아와 미시아의 남편 조제-마리아 세르와 함께 이탈리아를 찾았다. 친구가 권한 일종의 위로 여행이었던 이탈리아 여행은 샤넬의 인생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몇 주 동안 로마의 박물관, 베니스의 비잔틴 문화를 접하며 그녀의 시야는 한층 넓어졌다. 가브리엘 샤넬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과 건축, 고대미술 등에도 눈을 떴는데, 캉봉 가에 위치한 그녀의 아파트에서 발견한 각종 장식품과 가구는 이탈리아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 여행 이후 가브리엘 샤넬은 종종 이탈리아를 찾아 피렌체, 세스트리에레, 카프리 등에서 휴가를 보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나라 이탈리아가 정말 좋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도 이탈리아를 느끼고 싶어요.”
- 1937년 8월 이탈리아 신문 <라 스탐파>에 실린 가브리엘 샤넬 인터뷰 중에서


“이번 쇼는 ‘파리-로마’가 아니라 ‘파리 인 로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에는 항상 특별한 연관성이 존재해왔다. 이번 쇼의 세팅은 로맨틱하고 조금은 정돈되지 않은 듯한 완벽한 파리 그 자체다.” - 칼 라거펠트


마틸다 루츠

비르지니 비아르

알레산드라 마스트로나르디


 



“칼 라거펠트는 파리를 로마로 옮겨와 시적이며 영화적인 파리를 재현했으며, 우리 모두 이 특별한 영화의 일부가 되었다.” - 아나 무글라리스


마가레트 마데

엘사 마르티넬리

마틸드 지올리


세르 부부와 함께한 여행에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기초를 닦은 전설적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를 만난 것도 가브리엘 샤넬에게는 행운이었다.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매력을 느껴 견고한 우정을 쌓은 두 사람. 루키노 비스콘티는 가브리엘 샤넬이 프랑스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에게 소개해주어 영화사 7th Art에 들어가게 된다. 루키노 비스콘티는 샤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그녀의 일생을 담은 영화를 만들려 했으나 제작자를 찾지 못해 성사되지는 못한다. 가브리엘 샤넬의 예리한 안목을 높이 평가한 루키노 비스콘티는 세계대전 등으로 만나지 못할 때도 자신의 수제자인 프랑코 체피렐리(올리비아 허시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 감독)를 보내곤 했다.
루키노 비스콘티를 통해 만난 영화인 중에는 여배우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로미 슈나이더는 특별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영화 <일 라보로>에 출연하는 로미 슈나이더에게 직접 의상을 만들어 입히며 그녀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도 가브리엘 샤넬에게 영화 의상 제작을 의뢰하곤 했으며 지나 롤로브리지다, 잔 모로 등도 샤넬의 의상을 애용한 여배우다. 우연히 들른 곳이지만 가브리엘 샤넬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다가간 덕분에 이후 샤넬의 많은 컬렉션에서 이탈리아는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이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자 스모키한 눈매의 모델이 파리 지하철 5호선 로마 역에서 투톤 뮬과 펄 샌들을 신고 차례로 등장했다. 로마의 늦가을을 연상시키는 색조에 샤넬의 상징적 컬러를 더했는데 브라운과 황토색, 카푸치노 컬러와 베이지, 크림, 네이비 블루가 조화를 이루었다. 소재도 트위드와 캐시미어, 레이스, 실크 크레이프, 시폰, 조젯 등을 통해 전형적인 파리의 멋과 이탈리아의 화려한 감성을 녹여냈다.
공방 컬렉션답게 섬세한 장식이 돋보이는 의상을 줄줄이 선보였다. 튈 장식을 가미한 레이스 네글리제, 벨벳 플리츠 시스 드레스 같은 우아한 이브닝드레스부터 갈롱펠리퀼 트리밍 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샤넬 슈트, 그리고 무릎길이의 트위드 드레스와 미디스커트에는 작은 케이프를 걸쳐 따뜻함을 더했다. 코트 안감에 로마의 고급 대리석을 연상시키는 모티브의 색을 넣기도 하고 나비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인 파르팔레 자수 장식을 더한 의상도 눈에 띄었다. 파리지엔처럼 무심한 멋과 이탈리아 수공예의 정교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의상의 향연이 펼쳐진 것.
흔히 샤넬의 정신을 말할 때 섬세함과 함께 시대를 거스르는 모던함을 꼽기도 한다. 가브리엘 샤넬이 다양한 문화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면 절대 얻을 수 없는 요소였을 것이다. 로마 속 파리야말로 그런 샤넬의 열린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쇼가 아닐까 싶다. 쇼가 끝나자 상점과 레스토랑이 일제히 불을 밝히고 파티가 시작되었다. 파티는 DJ 파올로 디 놀라와 파창가 보이스의 공연으로 이어졌으며 파리와 로마의 축제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에디터 | 이윤정 (yoonjunglee@noblesse.com)
사진 제공 |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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