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NOVEMBER. 2013 ARTIST&PEOPLE

ByoungHo, Kim 김 병호

  • 2013-11-11

김병호 작가는 인터뷰 중 ‘전문가’라는 단어를 최소 서른 번 이상 발음했다. 딱히 그 단어의 울림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자신의 작품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전문가 그룹과 그들이 지닌 전문성을 인터뷰 내내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구상과 설계 이후의 공정은 모두 ‘전문가’에게 맡겨요.” “자본주의사회에서만 가능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제조 시스템을 ‘전문가’들과 직접 경험하는 거죠.” “저는 ‘전문가’를 신뢰해요.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할 때 비로소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니까요.”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여덟 번째 개인전(12월 1일까지)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의 작업 방식이 궁금할 것이다. 서울 작업실에서 만난 김병호는 그의 작품에 걸맞은 튼튼한 팔뚝이 눈에 띄는 작가였다. 물론 그도 ‘전문가’ 이론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다.

서울 작업실에서 만난 김병호 작가.
아라리오갤러리 천안(12월 1일까지)에서 김병호 작가의 파워풀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김병호 작가의 작업실은 어수선함 그 자체다. 마치 NASA의 우주 건설 계획이라도 쓰여 있을 것 같은 어지러운 도면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가 하면, 가장자리가 댕강 잘려나간 알루미늄 덩어리와 천장 높이의 우악스러운 절단기, 가차 없이 절단된 파이프, 망치, 톱, 전선, 송곳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가 원래 작업실을 보기 좋게 꾸미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한구석에 있던 철근을 다른 한쪽으로 옮기며 그가 말했다. “게다가 작업도 조금 무식하게 하는 편이고요. 알루미늄을 재료로 쓸 때도 큰 덩어리를 구해와 그대로 깎아요. 겉만 번지르르하게 모양을 낸 것과는 느낌이 다르죠.”

김병호 작가는 2005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로 만든 조각에 소리를 입히는 작업을 해왔다. 보는 예술인 조각 미술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집어넣어,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표현해왔다. 그는 다양한 영상 매체가 존재하는 현대사회에서 조각의 새로운 방식,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해왔다. 가령 지금껏 그가 만든 수십 점의 작품에선 전부 ‘삑삑’이나 ‘삐비빅’ 같은 작은 소리가 간헐적으로 새어 나온다. 새로운 미디어를 기존의 조각 미술에 적용한 이런 작업은 ‘융합’이라는 현대사회의 중요한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제 작품에서 나는 소리가 전부 다르다고 느끼는 이는 아마 세상에 저 혼자뿐일 거예요. 주파수와 톤, 간격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아낸 이는 지금까지 없었죠. 그냥 얘도 ‘삑삑’이고, 쟤도 ‘삑삑’인 거예요.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분명 차이가 있어요. ‘삐이익’과 ‘삐비이익’ 같은 작은 차이죠.” 그가 조각 작품에 소리를 입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조각이란 매체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 더 크고 넓게 확장시키기 위해. 다시 말해 물리적 오브제인 조각 작품에 비물질적 레이어인 소리를 입혀 물리적 오브제가 더 확장되도록 하기 위해. 하지만 그가 이렇게 소리 나는 조각 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그를 소리만 추구하는 미술가로 오해해선 안 된다. 그 소리를 최소화해 작품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결코 음악적인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파장 내지는 주파수일 뿐이다. 그저 어떤 감정도 없는 소리 단위의 연속체일 뿐.

“저는 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했어요. 하지만 판화를 배우면서 늘 더 넓은 범위의 예술에 대한 갈증을 느꼈어요. 제가 추구한 건 판화가 아니라 미술 그 자체였으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영상공학을 배울 수 있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물론 손에 맞지 않는 작업을 해야 하는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그는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언어를 조금씩 넓혀나갈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그가 내놓은 작품들은 대부분 전문가와 협업해 완성한 것이다. 그가 아이디어를 드로잉하면 각각의 전문가가 그 도면에 따라 모듈 형식의 조각을 만들어 그에게 보내고 최종적으로 그가 작품을 완성하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이 철저히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있어 일반 공산품의 생산 방식과 다름없어 보인다.




1 Soft Crash, aluminum, piezo, arduino, 330×330×165(d)cm, 2011
2 Logical Intervention, german silver, 180×42×17(d)cm, 2011




3 Radial Eruption, anodizing on aluminum, piezo, arduino, 140×160×160cm, 2011
4 A Colloidal Body, aluminum, piezo, arduino, 277×277×90(d)cm, 2010

“몇몇 매체에선 엔지니어를 쓴다는 표현도 하더라고요. 근데 그건 적절치 않아요. 그들과 ‘협업’을 하는 거죠. 제 작품은 처음, 중간, 끝 부분이 전부 분리가 돼요. 물론 분리되지 않게 만들 수도 있어요. 애초에 분리가 목적은 아니니까요. 모두 함께 ‘모듈’을 만드는 게 포인트죠. 현대 산업사회에서 이뤄지는 기술적 제조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싶은 게 첫 번째 목적이에요. 자본주의사회에서만 가능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상품 제조 시스템을 이 시대의 시민으로서 직접 경험해보는 거죠. 결코 비평적 입장에서 이런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 아니에요. 예술 창작을 예술가 개인의 숭고한 창작 과정으로 신비화하지 않을 뿐이죠.”

그는 작품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수십 명의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전문가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 누가 ‘시켜서’ 만드는 것과는 분명 차원이 다른 문제다. “간혹 최종 완성품이 제가 그린 최초의 청사진과 다를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자체로 또 재미가 있죠. 그런 일은 전체 시스템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니까요. 작품의 최초 구상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만들려면 중간중간 머리를 싸매는 시뮬레이션 작업이 필요해요. 전시 준비라도 할 때면 정말 말도 못하게 바빠지죠.”

그는 작품이 완성되면 꼭 그것이 ‘제품’이라는 설정을 한다. 작품을 제품으로 여기기 때문에 에디션도 따로 존재한다(각 ‘제품’마다 3개의 에디션이 있다). 완벽한 실루엣, 깔끔한 마감, 세련된 사진 등을 패키지로 하는 그의 작업은 제품의 매혹적인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제품은 실생활에서 실용성을 지니지만 그의 작품은 그런 실용성이 없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런 사회구조와 체계를 작품에 반영하는 것을 미술의 주목적으로 삼는다. “저는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는 형태의 것을 만들고 싶어요. 형태가 기능에 대한 예상을 어렵게 하면 오히려 주제를 더욱 강조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기능의 제한에서 완벽히 벗어난, 전혀 새로운 걸 만들고 싶다는 거죠. 어차피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도 추상 조각이잖아요. 현대미술이란 범위 역시 한정된 게 아니고요.”

그가 만들어내는 조각은 분명 이전엔 보지 못한 것이다. 간혹 ‘가오리’나 ‘헬레이저 핀헤드’ 같은 드센 것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꼭 그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애매하고도 묘한 것이 그의 작품 속에 숨어 있다. 새로운 걸 한다는 건 보다 나은 이야기를 풀어나갈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은 늘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이영균(프리랜서) 사진 안지섭(인물)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