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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5 ARTIST&PEOPLE

이토록 찌릿찌릿한 모듈 한 쌍

  • 2015-03-05

조각가 김병호와 건축가 김호민은 사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만난 사이다. 모듈화된 요소의 조화를 기하학적 조형으로 선보여온 김병호가 김호민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김병호가 손을 내민 이유는 단순했다. 김호민의 건축물에서 자신의 작품을 읽어내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인 ‘단위화한 모듈화’를 발견한 것. 대체 모듈이 뭐길래. 그들은 얼마 안 가 부산에서 건축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했고, 모듈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묻는 자리까지 마련했다. 이 대담은 앞으로 한목소리를 내고 싶은 동료를 찾아 몹시 기쁘다는 김병호 작가의 주도로 시작됐다.

김호민 건축가의 키오스크 ‘위장’앞에서 김병호 작가와 김호민 건축가(왼쪽)

김병호 x 김호민

TWO OF US

김병호
홍익대학교 판화학과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테크놀로지 아트를 공부했다. 갤러리쿤스트독(2006년), 터치아트갤러리(2010년), 소마미술관(2010년), 아라리오갤러리 천안(2013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아라리오갤러리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호민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런던 에이에이 스쿨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영국건축사협회에 등록된 영국 왕립 건축사로 에이에이 스쿨, 코넬 대학교, 서울대학교, 경기대학교, 건국대학교 등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현재 건축사무소 폴리머를 운영하고 있다.


모듈: 건축, 전자제품, 가구, 책, 잡지의 레이아웃 등 공간을 구획할 때 기준이 되는 기본 치수.

김병호 요 며칠 못 봤네요. 요새 많이 바쁘죠?
김호민 파주에서 영화사 사옥을 하나 설계하고 있어요. 또 특이하게 축사도 하나 디자인하고 있고요.
김병호 축사요? 소 집?
김호민 네. 소가 사는 집이죠.
김병호 그런 것도 건축가가 해요?
김호민 보통은 그렇지 않죠. 그런데 이번엔 건축주가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건축가를 여럿 찾아다녔더라고요. 그러다 저와 연결됐고요. 요샌 건축가들이 다양한 걸 만들어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과속방지턱도 만들던걸요.
김병호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뭔가요?
김호민 미래에 대한 고민이죠.(웃음) 앞으로 10년 뒤 어떤 건축을 해야 하나 하는.
김병호 고민하는 얼굴은 아니던데?
김호민 늘 하는 고민이라서요. 제 선배들을 보면 대개 두 방향으로 나뉘더라고요. 건축가 혹은 사업가요. 전 당연히 건축가나 예술가가 되고 싶고요. 사업은 부수적으로 하면서요. 근데 그게 생각만큼 쉽진 않네요.
김병호 구체적으로 힘든 게 뭔데요?
김호민 ‘생존’ 문제죠. 건축가는 미술가와 달리 혼자 일하기 힘들잖아요. 사무실을 꾸리고 사람들 월급을 주려면 일이 계속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일이 들어와도 늘 고민하죠. 이게 밥 먹고 사는 데만 도움되는 일은 아닌지, 건축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일인지. 그러는 김병호 작가는 어떤 고민을 하세요?
김병호 저도 앞으로 어떤 미술가로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요. 작가로서 지금 미술계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사실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걸 어떤 방향으로 낼지 고민하고 있어요.
김호민 고민하는 얼굴은 아니던데요?(웃음)
김병호 그간 미술 작가와 함께한 프로젝트가 몇 건 있죠?
김호민 설치 작업을 하는 정소영 작가와 함께 갤러리에서 두 번 전시했어요. 그다음이 지금 김병호 작가와 함께하는 부산소년원 캐노피 프로젝트(부산소년원 운동장 계단에 햇빛과 비를 막아주는 아트 캐노피를 만드는 작업)고요.
김병호 평소 미술 전시는 자주 보러 가는 편인가요? 미술가와 함께 작업하려면 그들의 작품을 잘 알아야 하잖아요. 물론 제 개인전은 봤겠죠?
김호민 봤어요. 천안까지 내려가 보고 왔잖아요(2013년 10월에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열린 개인전). 당시 그 전시는 호불호가 확실했던 걸로 기억해요. 좋은 것도 있었지만, 잘 모르겠다 싶은 것도 많았죠.
김병호 좋은 건 뭐였는데요?
김호민 그 뾰족뾰족한 것 있잖아요(‘His Lucid Dream’, 2013년). 그 작품에서 아랫부분을 콘크리트 박스로 만들어 금속과 콘크리트 재료끼리 충돌하게 한 건 신선했어요. 지금까지 해온 ‘모듈화’ 개념이 덜 분명해 보였어요.
김병호 정말 찬찬히 보고 왔네요.(웃음) 한데 사실 그 전시는 제가 김호민 건축가를 처음 만나려 한 이유와도 연결되는 ‘모듈’이라는 개념을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적용한 전시였어요.
김호민 물론 그런 작품도 있었죠. 그게 가장 와 닿은 게 ‘가든(Garden)’(2013년)과 ‘291개의 눈물 조각(Two Hundred Ninety One Drop of Tear)’(2013년)이었고요. 특히 전 ‘291개의 눈물 조각’이 인상적이었어요. 부분 혹은 모듈들이 모여 전체가 되는데, 보는 사람마다 연상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게 흥미로웠죠. 근데 전 그 작품이 눈물 조각보단 갑옷 입은 장수처럼 보이던걸요.
김병호 맞아요. 단순히 하나의 커다란 모듈이 아니라, 개별적 모듈이 모여 전혀 다른 추상적 형태로 나타난 작품이니까요. 제가 가장 신경 쓴 것도 그 부분이고요. 금속을 모아 작품을 완성했는데, 결국 금속의 성질이 드러나기보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오라가 생기는 것.
김호민 제가 추구하는 건축도 하나의 전체를 만들며 부분 혹은 모듈의 속성까지 지키려 한다는 점에서 김병호 작가의 작업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아요. 흥미로운 건 그렇게 모인 전체가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거죠. 건축에선 그걸 집합성이라고 해요. 건축은 사람이 사는 공간을 다루다 보니 오히려 더 고민하죠. 아, 그런데 조금 다른 얘기지만, 건축 쪽 사람들은 미술과 달리 모양새를 평하는 걸 굉장히 터부시해요. ‘뷰티’에 대한 얘길 절대 안 하죠. 건축가들은 그 얘기 하는 걸 하급으로 보거든요.
김병호 아니, 왜요?




대담 중인 두 사람. 이들 앞으로 수학적 계산에 의해 모듈화된 오브제를 쌓아올린 김병호 작가의 신작 ‘스토리즈’가 보인다.

김호민 많은 건축가가 가난한 삶에 대한 동경 같은 걸 품고 있어요. 사치스러움에 대한 반감이죠. 건축에선 심미적인 걸 ‘장식’이라 여겨요. 장식을 불필요한 요소로 보는 거죠. 하지만 전 장식도 분명 어느 순간엔 고유의 기능을 한다고 봐요. 건축도 상업성이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실험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김병호 작가와 이런 감성적 얘기를 하는 게 참 좋고 편해요. 건축가하고는 감성을 얘기하기 어렵거든요. 늘 편리성과 합리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김병호 지난해에 문을 연 동대문 호텔(JW 메리어트 호텔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외부 디자인을 김호민 건축가가 담당했잖아요. 호텔이 들어선 뒤 그 동네가 많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론 어땠어요?
김호민 건축가로서 많이 고민한 프로젝트예요. 그런 위치에 건축을 할 땐 건축가도 내심 공공에 열려 있는 프로젝트가 되길 바라거든요. 과거와 현재, 24시간 영업하는 쇼핑센터와 전통 시장이 만나는 곳에 있으니까요. 반대로 건축주는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하죠. 한데 그 프로젝트는 어차피 공공의 성격이 드러나기 어려운 호텔 건물이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표피적이긴 했어요. 하지만 신경은 많이 썼어요.
김병호 전 그 호텔을 보러 동대문에 세 번이나 갔어요. 호텔 건물을 어떻게 모듈화했을지 궁금했거든요. 언젠가 그걸 보고 집에 와서 이런 생각도 했어요. 미술가인 저와 건축가인 김호민 씨의 모듈에 대한 접근 방식이 조금은 다를 수 있겠다고요. 김호민 건축가에게 모듈이란 대체 뭔가요?
김호민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 사이의 관계입니다. 호텔에선 위아래 객실 2개를 하나의 ㄱ자 모듈로 해서 그들 사이의 미묘한 변화로 전체를 구성하려 했어요. 종로와 청계천, 흥인지문을 면한 호텔이 모두 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낳았죠. 건축은 원래 전부 모듈 베이스예요. 예부터 지금까지 그렇지 않은 적이 없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끌어내 사용하느냐’에선 미술과 다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병호 김호민 건축가가 설계한 DDP 앞의 키오스크 작품도 소개해 주세요. 그것도 모듈화 작업이잖아요.
김호민 키오스크(‘위장’, 2013~2014년)는 DDP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보조 건축물이에요. 사람들이 그걸 통해 DDP 내부로 들어오게 하는 게 목표죠. 특히 그 작품은 소재가 독특해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가 써서 유명해진 티타늄 패널을 240장이나 사용했죠. 그런 뒤 그걸 각각 다른 색으로 발색해 주변 나무들의 색이 사시사철 변할 때마다 그 모습과 어울리게 했어요.
김병호 실제로 보니 크기는 작더라고요.
김호민 9m2(2.7평)의 정말 작은 건물이에요.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건축을 온전히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분으로 전체를 구성하는 모듈화 개념을 적용한 것도 그렇지만, 정삼각형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피라미드처럼 뭔가 근원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 마음에 들어요. 가만 보면 지구라트(성탑)와도 비슷하고요. 전 컨템퍼러리하면서 원시적 느낌이 나는 건축에도 관심이 많아요.
김병호 키오스크 작업을 하며 앞으로 하고 싶은 걸 깨달은 것 같네요.
김호민 앞으로 하는 작업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최대한 같은 요소를 반복하되, 그것의 합은 그 이상이 되는 모듈화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정삼각형을 기본 모듈로 키오스크 디자인을 시작했는데, 반복의 합인 결과물이 예상보다 훨씬 흥미로워서 스스로도 놀랐어요. ‘1+1’이 ‘2가 아닌 어떤 것’이 된 셈이죠. 사실 전 지금도 그 가치가 뭔지 잘 설명할 수 없어요. 워낙 아트 오브제같이 작은 스케일까지 내려간 작품이니까요.
김병호 건축가도 미술가처럼 드로잉으로만 존재하는 작업이 많을 것 같아요. 혹시 앞으로 꼭 현실화하고 싶은 설계도가 있나요?
김호민 네. 오막(OMAC)이란 작업이요. 아일랜드의 벨파스트라는 작은 도시에 만들려고 한 아트 센터 건물이에요. 현상설계(경쟁을 통해 설계안을 결정하기 위해 복수의 제안을 모집하는 것)로 5등 안에 들었는데, 사실 실현이 될진 모르겠어요.
김병호 그 설계도는 저도 봤어요. 모듈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이던데요?
김호민 그 프로젝트는 기본 모듈이 하나의 띠인 게 다를 뿐이에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수직적인 띠죠. 이들이 모여 하나의 건물이 돼요. 서로 맺는 관계, 즉 차이와 변화를 통해 건축으로 완성했어요. 제가 건축에서 모듈만큼 관심 있는 분야가 그런 수직성이에요. 수직적 힘에 대한 흐름 같은 것. 여하튼 힘에 관심이 많은데, 그렇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수직적 힘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본 첫 프로젝트가 바로 오막이죠. 근데 김병호 작가도 물론 현실화하고 싶은 드로잉이 있겠죠?
김병호 파이프로 된 아주 큰 새가 있어요. 실은 돈이 아주 많이 들어 시도도 못하고 있어요. 어서 클라이언트를 만나야죠.(웃음) 아, 그리고 전 성스러운 작품도 좋아해요. 함부로 다가가기 힘든 모양새의 작품이요. 전 상처가 많아서 그런 걸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호민 응원할게요.(웃음)
김병호 그건 그렇고 이따금 저 같은 미술가가 부러울 때도 있나요?
김호민 사실 전 김병호 작가를 만나기 전엔 미술가에 대해 잘 몰랐어요. 단, (건축가에 비해) 현실성이 부족한 이들이란 건 알고 있었죠. 순전히 작업의 의미로서요. 건축에선 현실성이 없으면 긴장감이 떨어진다 여기거든요. 하지만 김병호 작가는 미술을 잘 모르는 제가 봐도 현실과 예술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 같아요. 그 방면에선 미술계의 대표적 모범 사례가 아닌가 싶고요. 그러는 김병호 작가는 건축가가 부러울 때가 있나요?
김병호 건축가요? 뭐, 큰돈을 벌 수 있는 것 아닐까요?(웃음) 아니, 실은 건축가가 삶에서 없어선 안 되는 걸 만든다는 게 가장 부러워요. 집이 없으면 사람이 못 살잖아요. 저도 한때는 의식주 중 하나인 패션을 하는 사람이 돼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옷도 사람에게 꼭 필요한 거잖아요. 사실 미술은 거래되는 결과물만 놓고 볼 땐 필요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거든요. 의식주와는 근본적 출발점이 다른 거죠.
김호민 김병호 작가가 패션이라니, 상상이 안 돼요.(웃음)
김병호 미술가와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로 뭐가 있어요?
김호민 주제는 딱히 생각나지 않지만, 전시는 해보고 싶어요. 갤러리 안에서 건축 전시만 하는 건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 싫고요. 미술가와 제대로 된 전시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같이 주제를 잡아 화이트 큐브 공간을 디자인하는 거죠.
김병호 올해 계획 좀 알려주세요. 같이 뭔가 할 수 있으면 또 해보게.
김호민 우선 지금 한창 진행 중인 부산소년원의 캐노피 작업을 잘 마무리해야죠. 사실 캐노피가 비와 바람만 막는 것으로 본다면 우리가 굳이 이렇게까지 매번 미팅하고 현장 답사하고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런데 우린 곧잘 그 또한 예술의 일종이고, 아트워크여야 한다는 얘길 하잖아요. 말하자면 전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계속해보고 싶어요. 그게 뭔지 확실히 설명할 순 없지만, 건축과 아트의 중간 지점에 있는 프로젝트요. 그런 게 바로 요새 유행하는 융합 아닐까요?




김병호, 가든, Aluminum, steel, powder coating, 280(h)×750×250cm, 2013




김병호, 291개의 눈물 조각, Aluminum, 230(h)×100×40cm, 2013




ⓒ 신경섭
김호민, JW 메리어트 호텔 동대문 스퀘어 서울(외관), 2011~2014




ⓒ 신경섭
김호민, 키오스크 위장, 2013~2014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이영학(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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