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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5 CITY NOW

독일 미술계의 유득유실

  • 2015-03-05

트란스메디알레는 독일 최고의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이다. 올해도 폭넓은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한편 독일 신문과 방송에선 또 다른 볼거리가 넘쳐났다. 바로 독일 현대미술 거상인 헬게 아헨바흐의 몰락. 이 두 소식은 미술계의 어떤 관성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영상과 레이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로젝트팀 아톰&로빈 폭스,트란스메디알레에 소개돼 큰 호응을 얻었다.
/ ⓒ AtomTM & Robin Fox




트란스메디알레의 아트 디렉터 크리스토퍼 간징 / ⓒ Camille Blake




아톰&로빈 폭스의 레이저 공연(폴란드 언사운드 페스티벌) / AtomTM & Robin Fox




대만 작가 테칭 쉬에의 퍼포먼스 영상 ‘시간과 행동’

미래로 가는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1일까지 독일 최고의 디지털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인 트란스메디알레(Transmediale)가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에서 열렸다. 이 페스티벌은 독일에서 열리는 가장 규모가 큰 미디어 아트 행사로 올해 벌써 27회를 맞았다. 사실 지금이야 독일을 대표하는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이지만, 애초에 이 페스티벌은 지금과 같은 규모로 열리던 행사는 아니었다. 198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Video Film Fest’라는 부대 행사로 처음 시작해 매년 꾸준히 규모를 늘리다 1998년 지금과 같은 이름으로 변경, 2001년에 이르러 세계 문화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좀 더 광범위한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물론 트란스메디알레도 우리가 그간 접해온 현대미술 행사이긴 하다. 다만 여느 미술 행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행사장은 패션에 민감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 듯 보이는 학자나 전문 인터넷 유저, 미디어와 디지털 아티스트로 가득 찬다. 관람객 중에도 너드(nerd)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이들이 꽤 눈에 띈다. 한마디로 미디어 아트의 멜팅 포트(melting pot)인 셈이다.
올해도 트란스메디알레는 일주일 이내의 짧은 기간 동안 전시, 심포지엄, 세미나, 작가와의 대화, 어워드 시상식, 퍼포먼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집약적으로 진행했다. 보통 전시가 행사의 중심이 되는 우리의 시스템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본전시에선 모두 11팀이 얼굴 인식 기능 앱과 생체 인식 시스템 등 이미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된 매체를 이용한 작품을 주 전시장 곳곳에 설치했다. 전시는 늘 그렇듯 공모전 형식으로 진행했으며, 올해는 객원 큐레이터로 그리스 출신인 다프네 드라고나(Daphne Dragona)와 독일인 로베르트 자크로브스키(Robert Sakrowski)가 전시를 기획했다.
올해 트란스메디알레의 주요 참여자 중엔 프랑스 매체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Bernard Stiegler)와 뉴욕 대학교 미디어학과 교수 매켄지 워크(McKenzie Wark), 스웨덴의 미디어 아티스트 요나스 룬드(Jonas Lund), 영국의 미디어 작가 샘 미치(Sam Meech) 등 세계적 석학과 작가가 대거 눈에 띄었다. 또 이번 페스티벌엔 <투명 사회>로 유명한 베를린 예술대학교의 한병철 교수도 참여했다. 그는 페스티벌이 열리기 전 독일 유력지 <쥐트도이체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스캐닝되는 현실보다, 이에 따른 폭력의 규모와 그 현상에 내재된 투명성이 문제”라고 말해 많은 이의 지지를 받았다. 한편 올해 트란스메디알레에도 한국 작가는 참여하지 않았다. 아예 공모를 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선정되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디지털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에서 단 한 명의 작가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건 미스터리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초자연>전에 참가한 김윤철 작가 외엔 그간 트란스메디알레에 각인된 한국 작가가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트란스메디알레는 미디어 아트에 특별한 관심이 없더라도 콘퍼런스 주제나 발제자만으로 상당한 궁금증을 일으키는 행사다. 매년 디지털 미디어가 야기한, 혹은 매개한 동시대의 문화적·사회적 이슈를 담론화하고 앞으로의 예술적 실천을 모색하는 장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 독일 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이 행사는 현재까지 매회 2만여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고 있으며, 그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내년엔 한국 관람객도 이 페스티벌에서 전하는 다양한 이슈와 트렌드에 눈과 귀를 열어보길 바란다.

독일 현대미술 거상의 몰락
헬게 아헨바흐(Helge Achenbach)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 거상이자 컨설턴트다. 그간 그가 거래한 작가 리스트엔 게르하르트 리히터, 제프 쿤스, 토마스 스트루트,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댄 플래빈, 다니엘 뷔랑, 솔 르윗, 프랭크 스텔라, 제임스 터렐 등 아트 컬렉터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수두룩하다. 지난 수십 년간 독일에서 이루어진 정부나 기관, 개인 등의 대형 미술 거래 중 그와 연관되지 않은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
그런 그가 최근 몇 건의 미술 거래에서 작품을 속여 판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아헨바흐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반년 가까이 구속된 상태이며, 심지어 지난 1월엔 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독일 현지에서 현재 헬게 아헨바흐의 크고 작은 사기 혐의 중 가장 문제를 삼는 것은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사업가 중 한 명인 2012년 작고한 할인점 체인 알디 노르트(Aldi Nord)의 상속자 베르트홀트 알브레히트(Berthold Albrecht)에 관한 거래다. 헬게 아헨바흐는 생전 독일에서 손꼽히는 컬렉터였던 베르트홀트 알브레히트에게 수년간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피카소 등의 작품 그리고 빈티지 페라리, 벤틀리, 부가티 등 총 22점에 달하는 물품을 약 4800만 유로(약 582억 원)에 팔고, 임의로 가격을 올리거나 환율을 조작해 약 2250만 유로(약 273억 원)의 불법 차익을 남겼다. 그뿐 아니라 헬게 아헨바흐는 독일의 유명 제약 회사 CEO 크리스티안 베링거(Christian Boehringer)에게 기존 작품가보다 가격을 높게 책정해 판 혐의까지 받고 있다고. 현재 독일 미술계는 오랫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헬게 아헨바흐의 사기 건으로 발칵 뒤집힌 상태다. 심지어 헬게 아헨바흐와 베르트홀트 알브레히트가 오랜 친구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지며 많은 미술계 인사가 혀를 내두르고 있다. 독일 미술계의 빠른 쾌유를 빈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Jung Me Chai(독립 큐레이터, 디스쿠어스 베를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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