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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15 FEATURE

사회과학의 명문,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 2015-01-26

런던 정치경제대학교는 세계적으로 국가 원수급 인사를 수십 명 배출한 영국 최고의 명문 사회과학 대학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서서히 일고 있는 지금, 런던 정치경제대학교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LSE




LSE의 상징인 올드(메인) 빌딩

영국의 수도 런던에 위치한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LSE)는 1895년에 개교한 명문교다. 영국의 양대 명문 학교 옥스퍼드·케임브리지와 비교하 면 아주 짧은 역사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비교적 단기간인 개교 120년 만에 영국 상위 명문 대학 5곳을 일컫는 G5(옥스퍼드, 케임 브리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 LSE)에 이름을 올렸다.
LSE는 명문 대학 중에선 특이하게도 경제학과 정치학을 필두로 한 사회과학 분야 단과대다. 세계적 대학 평가 기관 QS의 세계 대학 순위에서 2014년 기준 경제학 3위, 정치학 3위를 차지했고, 영국 내 대학 평가 중 가장 신뢰도가 높다는 <가디언> 조사에선 2014년 기준 경제학 2위, 정치학 2위였다. 한마디로 그간 한국에 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영미권 등 해외에선 사회과학 분 야의 명문 중 명문이다.
사실 LSE의 이 같은 저력은 개교 때부터 강조한 실용적 학풍에 서 나온다. 19세기 중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와 사회학자 시드 니 웨브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진보적 지식인 그룹 페이비언협회 (Fabian Society)에선 가난으로 얼룩진 인간의 평등 문제를 교육 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과학 전문학교 설립 논의가 시작됐고, 이 들의 주도로 결국 1895년 런던의 현 위치에서 LSE의 첫 강의가 열렸다. 영국의 정치와 경제 분야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탄생한 LSE 는 현재까지 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국제적이고 진취적인 대학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링컨스 인 필드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LSE 학생들




세상의 거의 모든 사회과학 도서가 모여있는 LSE 사회과학 도서관. 470만 권 이상의 책이 이곳에 있다.




LSE를 설립한 페이비언협회의 핵심 멤버 조지 버나드 쇼




현재 LSE를 이끄는 학장 크레이그캘훈 교수




현재 가장 주목받는 LSE 출신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LSE의 국제성은 특히 학생과 교수진 구성에서 드러난다. 전교생 8800여 명(2014년 기준 학부생 3860명, 대학원생 4950명) 중 3분의 2가 외국인 유학생이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비유럽권 학생(1700여 명에 달하는 교수진도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한편 이들의 국제성 과 역동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공개 강의다. LSE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수시로 공개하는 강연 프로그램은 세계 적 금융인과 사업가, 정치인, 학자가 줄을 이어 강단에 선다. <21세기 자본>으로 현재 록 스타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LSE 출신 경제학자 토 마 피케티, 억만장자 금융인 조지 소로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재닛 옐런,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등이 특강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공개 강연은 학기 중 많을 때는 매일 3~4회씩 열 리며 학생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개방한다고. 이는 시민사회 연구의 터전인 LSE의 명성을 떠받치는 중심축 중 하나다.
LSE는 지금도 자유로운 연구를 통해 개교 초기의 실용적 학풍을 지 켜나가고 있다. 우선 학부와 대학원 학생들이 다른 학과의 학위 과정 과 교과목을 어렵지 않게 수강할 수 있는 것이 특이하다. 심지어 박사 과정 학생 중 지도교수 2명의 소속 학과가 각각 다른 경우도 많다. 이 러한 자유로움 때문인지 LSE는 그간 좌에서 우까지 매우 다양한 스 펙트럼의 학자를 양성해왔다. 전체주의와 좌익의 경제정책을 비판하 고 시장의 순기능을 강조한 신‘ 자유주의’의 창시자 프리드리히 하이에 크(Friedrich August von Hayek)가 LSE의 교수였고, 새로운 자본 주의의 길을 제시한 <제3의 길>의 저자로 실용주의 중도 좌파인 앤서 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LSE에서 학장을 역임했다. 그럼 이번엔 LSE 출신의 주요 인사를 찬찬히 살펴보자.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LSE의 석사 과정을 수학했고, 그 외에도 2010 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크리스토퍼 피서라이즈 교수, 국제경제학의 고전으로 통하는 경제 이론 ‘먼델-플레밍의 법칙’의 로버트 먼델 교 수, 이론 경제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가치와 자본>의 존 힉스 경, ‘20 세기의 지성’으로 통하는 버트런드 러셀을 비롯해 16명의 노벨상 수상 자를 배출했다(특히 1990년대 이후에만 무려 8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그중 12명이 경제학상을 수상한 걸 보면 LSE가 세계적으로 경제학 분야에서 얼마나 두각을 나타내는지 더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정도. 한편 정치 영역에서도 LSE 출신의 활동은 눈부시다. 전 세계 전·현직 정치 지도자 중 30여 명이 LSE에서 수학한 것. 가깝게 는 2000년대에 들어 일본의 아소 다로와 이탈리아의 로마노 프로디 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슷한 시기에 총리로 임명되었으며, 현 미 국 오바마 정권에서도 미국 외 대학 출신자 중 LSE 출신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LSE 출신 세계 주요 지도자

존 F. 케네디(1917~1963년) / 전 미국 대통령
코체릴 라만 나라야난(1921~2005년) / 전 인도 대통령
알폰소 로페스 푸마레호(1886~1959년) / 전 콜롬비아 대통령
존 아타 밀스(1944~2012년) / 전 가나 대통령
마르그레테 2세(1940년~) / 현 덴마크 여왕
아소 다로(1940년~) / 현 일본 부총리(전 총리)
로마노 프로디(1939년~) /전 이탈리아 총리
클레먼트 애틀리(1883~1967년) / 전 영국 총리
타닌 끄라이위찌엔(1927~1977년) / 전 태국 총리
모셰 샤레트(1894~1965년) / 전 이스라엘 총리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1952년~) / 전 그리스 총리




LSE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런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LSE 출신 상당수는 졸업 후 곧장 런던의 글로벌 금융 기업에 취업하곤 한다.




LSE 학생들이 학기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 중 하나인 워터 스톤즈 서점. LSE 학생들은 런던 내 대학생 중에서도 ‘책벌레’로 통한다.

대학 생활의 꽃인 캠퍼스도 특이하다. 영국의 대학 풍경으로 흔히 떠 올리는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처럼 도시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거대 학원 도시식이 아닌, 전 세계의 주요 금융회사가 집결된 런던 시 중심 중의 중심인 특별행정구역 더‘ 시티(The City)’ 부근에 위치해 있다. 걸 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과 내셔널 갤러리, 대영박물관 등이 자리해 강의실 맞은편이나 건너편에 서 세계적 수준의 문화를 누리는 일이 가능하다. 단, 이렇듯 시내 중 심가에 있는 탓에 학교 확장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학부생과 대학원 생을 합치면 2만 명이 훌쩍 넘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LSE 학생 대부분은 소수 정예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한편 LSE를 설립한 페이비언협회의 학자들은 일찍이 도서관을 사‘ 회 과학의 실험실’이라고 일컬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현 재 LSE의 도서관은 470만 권이 넘는 도서를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 의 사회과학 전문 도서관으로 통한다. 일개 단과대의 도서관이라 하 기엔 너무 큰 규모라 ‘영국 사회정치과학 도서관(The British Library of Political and Economic Science)’이라고도 불린다. 학기 초엔 LSE의 학생뿐 아니라 런던 내 다른 지역 대학생들이 도서관 이용권 을 만들려고 입구에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멀리 옥 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도 이 도서관을 찾아온다. 그만큼 LSE 도서 관은 사회과학 방면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서관이다. 2014년 기준 LSE에 다니는 한국인 학생은 총 126명(학부 50명, 대학 원 76명)이다. 이들은 대개 삼성이나 LG 같은 국내 대기업의 사무실 이 몰려 있는 런던의 뉴몰든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1990년대 이후 점점 그 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국내에선 그간 LSE에서 정식 으로 박사 과정까지 밟은 100여 명만이 학계나 금융계를 중심으로 소 규모 모임을 이어왔다. 대표적 LSE 동문은 박진희 현 씨티은행장, 정 은수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자산운용 대표, 황영기 전 KB금융지 주 회장,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이일형 한국대외경제 정책연구원장, 임종훈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민원비서관, 남 주홍 전 국가정보원 1차장, 김성주 성주그룹 대표 등이 있다. 이들은 2013년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을 중심으로 첫 LSE 총동문회를 열었다.
LSE의 교훈은 모‘ 든 사물의 근원을 찾는다’다. 학교의 상징인 비버는 화려하지 않아도 묵묵히 진리 탐구를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의 성실함 과 부지런함을 뜻한다. LSE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김용기 삼성경 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지난 2013년 열린 LSE 총동문회에서 LSE 를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가 아카데미적 학교라면 LSE는 현실적인 그리고 실용적인 대학”이라며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밝혔다. 2008년 미국 리먼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와 수익성만 믿고 버티다 몰락한 세계적 기업들의 면면에서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허상이 대 두되는 지금, LSE는 ‘What’보다는 ‘Why’를 묻는 근본에 기반을 둔 학풍으로 그간 세계의 지도자들을 배출해냈다. 경제, 정치, 국제관 계, 인류학 등에서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평가받는 LSE는 영국을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사회과학 분야의 명문으로 우뚝섰다.




개교 연도: 1895년
학제 기간: 학부 3년, 대학원 1년
설치 학과: 경제학, 경제역사학, 회계학, 정치학, 국제관계학, 법학 등 총 24개 학과
입학 과정: 입학엔 보통 영국 공인 시험인 GCE A-level과 GCSE 성적(혹은 IB 성적, IELTS나 토플) 같은 영어 능력 검정 시험과 자기소개서가 필요하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학과 평균 경쟁률은 18 대 1이며 경제학, 법학, 회계학 등 인기 학과는 평균 20 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마찬가지로 정원 미달 학과에 불합격생이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클리어링(clearing) 제도가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등록금: 2014년 학사 과정 기준으로 유학생 1만6300파운드(약 2700만 원), 영국 국적자는 약 9000파운드(약 1500만 원)다.




INTERVIEW
교수와 사업가, LSE에 수학하며 더 나은 자신을 발견했다는 2인을 만났다.




강원택 교수 사진 김보라

강원택(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수료 후 다시 LSE(대학원)에 유학한 이유는? 정치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약 2년간 직장(현대경제연구원)에 다녔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당시 영국이란 나라의 사회적·문화적 특수성, 그리고 정치학 공부에 대한 열망이 유학의 길로 이어졌다. 사실 LSE는 1950~1960년대 한국 정치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학교다.
LSE의 독특한 커리큘럼으로 뭐가 있나? 일례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는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지만, LSE는 사회과학 중심으로 방법론적 부분을 중시한다. 지금도 LSE에 입학하면 반드시 첫 학기엔 방법론(methodology) 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방법론도 계량적 방법론(연구 대상에 대하여 경험적, 객관적인 인 식을 주장하는 것)만 주장하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한다. 어떤 일이 일어난 원인 을 찾는 것에 집중하고, 그 과정이 상당히 세련되고 열려 있다.
LSE의 성격을 설명해줄 수 있는 좋은 예가 있나? 학교의 지리적 특성을 들 수 있다. LSE를 중심으로 한쪽으로는 ‘더 시티’의 금융가가 나오고, 또 한쪽으론 의회 와 정부 종합 청사가 있다. 물론 그 사이사이엔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자리 잡았다. 다시 말해 LSE는 어떤 지고한 진리 탐구보다 현실적 성격이 강한 학교라 할 수 있다.
학창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 지금도 그렇지만 LSE는 옛 건물을 계속 사서 학교 건물을 늘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많다. 예로 옛 건물을 살 때 그 안의 다른 가게를 전부 사진 못해, 학교 안에 펍이나 식당이 그 대로 남아 영업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도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면 바로 아래층이 펍이라 대낮부터 학생들이 거기서 맥주를 마시곤 했다. LSE의 명성에도 국내에선 동문회가 늦게 결성됐다. 미국식 거대 캠퍼스면 쉽게 대단위의 결속이 있을 텐데, LSE는 (학교가 작아) 그게 잘 안 되니 그간 개별적 모임만 꾸려 왔다. 최근에 동문회가 결성된 건, 아무래도 학부 친구들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닐까 싶다.
LSE를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건 무엇인가? 사 회과학 분야의 고민이라는게 기본적으로 현실 문제를 어떻게 분석하고, 그걸 어떻게 해결 하느냐다. LSE의 학풍도 마찬가지다. 이론이 나 철학도 중요하지만, 대부분 현실 문제에 대 한 고민이다. 주어진 현실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급진적이고 과격한 건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걸 배웠다.
내년도 한국정치학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거기서 맡은 일은 무엇인가? 2016년엔 정치적 이슈가 많다. 20대 총선과 미국 대선도 그중 하나다. 오래전 LSE에서 배운 대로 그간 정치 의 학문적 성과들이 실제 우리나라 정치가에 게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할 생각이다. ‘현실적’ 그리고 ‘실천적’으로 임하겠다.




최철규 대표 사진 김영학

최철규(휴먼솔루션그룹 대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신문사에서 경제부 기자로 수년간 일했다. 다시 LSE(대학원)에 간 건 무슨 이유에서인가? 학부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사 에서 6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이후 CEO 전문 교육기관 GI M의 창업 멤버로도 2년 가까이 있었다. 그러다 학업에 대한 갈증이 싹텄다.
왜 LSE였나? 글로벌 학생들이 모인 세계 수준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LSE는 진정한 코즈모폴리턴 대학이다. 재학생의 70% 가량이 외국인이다. 유럽 에서도 많이 온다. 프랑스, 핀란드, 노르웨이, 독일, 일본, 미국 등. LSE에 다니면 자신이 금세 글로벌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LSE에 관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LSE에선 출석을 따로 부르지 않는다. 그만큼 자율적이다. 기본적으로 네가 네 공부를 할 거란 신뢰가 있다. 특히 박사 과정은 코스가 정해져 있지 않다. 전부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자율성에 기반해 학생 자신이 관심 있는 걸 깊이 파고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LSE 의 수업 방식이다. 결코 학생을 ‘복제품’으로 만들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교수가 있나? 오래전 LSE의 학장이던 앤서니 기든스다. 그가 쓴 <제3의 길>을 열심히 읽은 기억도 있다. 나는 학생운동 마지막 세대다. 자본주 의의 우파와 사회주의 좌파 외의 제3의 길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앤서니 기든 스의 메시지는 참신했다. 물론 LSE를 택한 이유 중 하나도 그가 LSE에 있다는 것이었다.
현재 기업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LSE 출신 중엔 전통적으로 모범생 스타일이 별로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즉각 행동한다. LSE에 있으면 자신이 곧 브랜드다. LSE에서 쌓은 글로벌 감각과 실천적 혜안 덕분에 국내에서 꽤 괜찮은 기업 솔루션 회사를 운영하게 됐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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