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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6 FASHION

Innovation brings Legends

  • 2016-08-22

펜디가 올해 창립 90주년을 맞았다. 90이라는 숫자에 혹 놀랄 사람도 있을 텐데 매 시즌, 매년 창의적인 작품과 활동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 탓에 전통이라는 단어와는 쉽게 연관시키지 못해서일 것이다. 로마의 유산인 트레비 분수에서 열린 2016~2017년 가을·겨울 오트 푸뢰르 컬렉션을 보노라면 역사는 ‘혁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트레비 분수에서 열린 2016~2017년 가을·겨울 오트 푸뢰르 컬렉션 쇼


컬렉션의 모티브가 된 일러스트레이션


<펜디 로마-꿈의 장인들> 전시회 중 라이브러리 공간


Legends and Fairytales of Trevi Fountains

7월의 로마는 정수리가 타는 듯이 더웠다. 바늘처럼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은 어딜 가나 바글거렸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로마는 유럽의 문화와 철학이 태동한 곳이어서 도시의 역사와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유럽 전반에 대해 알아가기가 훨씬 쉬워지는 시금석 같은 도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로마의 허세 가득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사실’에 가깝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밀라노의 시크함이나 북적임과는 다른 전통있는 가문의 진중함과 클래식함이 깃들어 있고, 그러면서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엿보이는 곳 역시 로마다. 로마에서 나고 자란 펜디는 이런 도시의 성격을 체험하고 반영하는 브랜드다. 오랜 역사를 지녔으나 첨단의 주류에서 비껴나지 않으며, 최신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브랜드의 로고에 자랑스레 ‘ROMA’를 붙인 자신감은 여기서 기인할 것이다. 올해 창립 90주년을 맞은 펜디. 많은 사람은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매년 다른 브랜드는 생각지도 못하는 기발한 제품과 디자인 마이애미에의 참가 등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탓에 젊은 브랜드로 여겼을 수도 있다. 1925년 에두아르도 펜디와 아델 펜디가 로마에서 가죽 가방 가게 겸 모피 공방을 오픈한 이래 ‘혁신’은 브랜드의 놓칠 수 없는 철학이었다. 1965년 천재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영입하여 모피와 가죽 액세서리, 의류에서 정상의 위치를 빼앗기지 않은 것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덕분이다.




창립 9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펜디는 로마의 대표적 유산인 트레비 분수에서 패션쇼를 열기로 결정했다. 펜디는 지난 2013년 ‘FENDI for Fountains’라는 사업을 통해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수를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진행해왔다. 그 첫 결과물은 바로 트레비 분수. 대대적 복원을 마치고 작년 말 모습을 드러낸 트레비 분수는 그 어느 때보다 정갈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았다. 펜디가 의미 있는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무대로 트레비 분수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다. 패션쇼의 주제는 ‘전설과 동화’. 진귀한 모피와 아름다운 옷을 입은 동화 속 왕자와 공주가 살아 숨 쉬는 마법의 세계에서 영감을 얻었다. 트레비 분수 위를 투명한 유리로 덮어 모델은 마치 영롱한 물 위를 걷는 듯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트레비 분수 주위는 형형색색의 모피와 깃털이 날아다니는 환상의 세계로 변했고 레이스, 오간자, 밍크, 세이블, 링스, 어민과 페르시안램 같은 희귀한 소재와 어울려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선보인 의상은 모두 숙련된 장인들이 200~600시간의 수작업을 통해 완성한 것으로 가늘고 긴 형태의 드레스와 코트, 이와 대비되는 짧고 귀여운 스타일의 의상도 소개했다.



펜디의 새로운 본사인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에서 열리고 있는 <펜디 로마-꿈의 장인들> 전시회 전경


패션쇼 후 디너가 열린 보르게세 공원



몽환적이며 동화적인 분위기의 의상은 모순되게도 첨단의 모피 염색과 채색 기법, 재단 방식으로 완성했다. 여기에 파리의 오트 쿠튀르 공방르 사주와 르 마리에서 만든 깃털 버그와 나비 등을 정교하게 수놓았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가 디자인한 반달 모양의 도마뱀 가죽 포셰트와 니트 느낌의 앵클부츠는 세련되고 여성적인 분위기에 방점을 찍었다. 패션쇼가 끝난 후 프레스와 VIP는 경이로운 로마의 풍경이 펼쳐진 보르게세 공원의 핀치오 테라스에서 열린 디너에 초대되었다. 손님들은 칼 라거펠트가 1965년부터 해온 스케치를 감상하며 화랑을 걸어 디너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만찬 뒤에는 디스코 음악의 상징이자 살아 있는 전설인 조르조 모로데르의 특별 공연이 이어져 브랜드의 창립 90주년을 축하했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의 딸 델피나 델레트레츠 펜디


린지 윅슨과 로티 모스


중국 영화배우 공리




몽환적인 드레스를 입은 켄들 제너



Break the Rules

로마에 가기 전 펜디 코리아는 에디터에게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물었다. 에디터는 서슴없이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를 말했다. 2009년 중국의 만리장성 패션쇼를 비롯해 서울에서 열린 패션쇼 등 굵직한 행사에서 그녀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기엔 여러모로 상황이 받쳐주지 않았다. 그간 지켜본 그녀는 여타 패션 피플처럼 화려하기보다는 단정하고 내면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녀야말로 펜디가의 적자라는 점도 그 이유로 작용했다. 많은 브랜드가 패밀리 비즈니스로 시작해도 거대 기업의 우산 아래 들어가는 현 상황에서 ‘패밀리의 일원’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패밀리이기에 체득하고 경험한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에디터는 생각했다.



<펜디 로마-꿈의 장인들> 전시 중 백 버그를 설치한 공간


펜디의 새로운 본사에서 열린 <펜디 로마-꿈의 장인들> 전시


패션쇼가 열리는 7월 7일 오전에 겨우 인터뷰 약속을 잡은 에디터는 펜디의 새로운 본사인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 1층을 서성거리며 기다렸다. 각국에서 온 기자들 사이에 그녀를 만나기 위한 경쟁이 워낙 치열해 얼마간의 시간이라도 주어지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녀를 만났다. 연이은 인터뷰로 지칠 법도 한데 미색 블라우스를 우아하게 차려입은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의 얼굴은 평온했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창립자인 에두아르도와 아델 펜디의 다섯 딸 중 한 명인 안나의 딸이다. 알다시피 이 다섯 자매는 오늘의 펜디를 있게한 일등공신이다.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비즈니스로 펜디를 세계적 브랜드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안나의 딸답게 1992년 브랜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그녀는 바게트 백과 피카부 백 등을 창조하며 펜디 백을 패션계의 필수품으로 등극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바게트 백은 2000년 패션 그룹 인터내셔널 어워드에서 액세서리 부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브랜드의 철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break the rules’라고 말하겠습니다. 제 어머니는 여성들이 일하기 어려운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맹렬히 일한 용감한 여성이었습니다. 창립자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5명의 딸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브랜드를 지켰죠. 1965년에는 브랜드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칼을 영입했고, 이는 모피 부문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모피는 그동안 우아하지만 지루한 소재였고 무겁고 디자인이 단조로운 옷이었죠. 칼과 어머니의 자매들은 모피를 가볍고 언제든 입을 수 있으며 재미있는 소재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펜디는 모피를 최초로 염색한 브랜드이기도 할 정도로 모피의 디자인과 제작에 혁신을 불어넣었습니다. 품질을 추구하는 오랜 방식에 기술을 덧입혀 오늘의 펜디 모피가 태어난 것이죠.” 조용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녀는 유독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어조가 올라가고 미소를 띠었다.


섬세한 수작업으로 마무리한 컬렉션의 의상과 슈즈


패밀리라고 해도 누구나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1992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브랜드에 합류한 그녀는 가죽과 액세서리 디자인을 담당한다. 여성이 옆구리에 마치 바게트처럼 끼고 다닐 수 있게 만든 바게트 백과 현대의 클래식이라 불리는 피카부도 그녀의 작품이다. “바게트도 기존의 백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여성 개개인의 아이덴티티가 반영된 백 말이죠. 피카부는 클래식해 보이지만 내부의 라이닝을 여러 가지로 변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발상의 전환을 가미한 것이죠. 백을 만들 때는 ‘호기심’과 ‘도전’이 중요한 요소인 것 같네요.”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인터뷰 내내 낮고 차분한 톤으로 그러나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여느 CEO의 거창하고 건조한 인터뷰와 달리 가족만이 전달할 수 있는 브랜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묻어났다. “펜디의 역사는 ‘변화를 추구하는 시간’ 입니다. 늘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일을 해왔어요.” 90년 전 로마에 펜디 하우스를 설립한 후 모피, 의류, 가죽 액세서리, 시계, 향수, 가구까지 영역을 넓혀온 브랜드의 가치는 ‘끊임없는 도전’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창립 90주년을 맞아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90주년 기념 피카부’를 선보이는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이 백은 오직 60점만 생산하며 로마의 팔라초 펜디 부티크에서만 판매한다. 더불어 90년의 긴 여정을 소개하는 도 출간해 시간의 의미를 더할 것이다.




트레비 분수 앞에 선 칼 라거펠트와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



<펜디 로마-꿈의 장인들> 전시회
10월 29일까지 펜디 본사인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에서 개최하는 이 전시는 모피 제작 기술과 창조정신을 선보인다. 펜디의 모피 기술을 집약한 모피 태블릿을 감상할 수 있고, 300개 이상의 백 버그가 가득한 모피 정글도 경험할 수 있으며,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펜디의 모피와 퍼를 둘러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펜디 모피의 창조정신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에디터 | 이윤정 (yoonjunglee@noblesse.com)
사진 제공 | 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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