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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5 FEATURE

리버럴 아츠의 명문, 윌리엄스 칼리지

  • 2015-04-24

쓰는 법, 논쟁하는 법,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법까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 교양을 가장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미국의 한 명문 학교에 대한 이야기.

© Williams College
5만 권 이상의 희귀 장서를 열람할 수 있는 채핀 도서관




푸른 녹음과 어우러진 캠퍼스.
오른편으로 행정 업무를 보는 홉킨스 홀이 보인다.

윌리엄스 칼리지(Williams College)는 미국에서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에 관한 한 독보적 위치에 있는 학교다. 이 학교는 미국의 가장 권위있는 종합 평가 저널 에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년 연속 미국 내 리버럴 아츠 대학 1위를 차지했고, 경제지 <포브스>가 매년 미국 내 종합대학과 리버럴 아츠 대학을 통틀어 실시하는 평가에서도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컬럼비아 등의 명문대를 모두 제치고 최근 5년간 세 번(2010년, 2011년, 2014년)이나 1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잠깐, 대체 리버럴 아츠 대학이란 건 뭘까?
‘리버럴 아츠 대학’은 미국에만 있는 독특한 대학 형태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어학 등 교양과목에 중점을 둔 학부 중심 4년제 대학이다(미국에선 유니버시티, 칼리지, 인스티튜트, 아카데미 등의 용어를 혼용해 모두 ‘대학’이라 부른다). 한마디로 대학원 없이 학부생에게 ‘기초 학문’을 집중해 가르친다고 보면 된다. 우리말로 풀면 인‘ 문교양대학’쯤 될까? 학생이 훗날 무슨 일을 하든 교양과목이 가장 중요한 교육적 근간을 형성한다고 보며 교육한다. 종합대학보다 기초 학문에 치중해 학생을 평생 공부하는 ‘학습자’로 길러낸다. 정원도 대개 3000명 미만으로 교수와 소수 정예로 마주보며 공부한다. 종합대학처럼 번잡하지 않고, 교내에 거주하는 교수와 밤늦게까지 토론하는 학생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리버럴 아츠 대학 중 최고로 치는 윌리엄스 칼리지도 전교생 2000여명의 작은 규모다. 학교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서쪽 끝 버크셔힐의 작은 시골 마을에 콕 박혀 있다. 그런데 역사는 200년(1793년 설립)이 훌쩍 넘는다.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동부에선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은 하버드로 알려졌지만, 윌리엄스 칼리지는 리버럴 아츠 대학 중 하버드만큼 최고 명문으로 들어가기도 그만큼 어렵다. 실제로 많은 윌리엄스 칼리지 합격생이 아이비리그 대학에도 동시에 합격한다. 제임스 가필드 전 미국 대통령과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그랜빌 스탠리 홀, 전 뉴욕 주지사이자 리먼 브러더스의 일족인 허버트리먼, 고촉통(吳作棟) 전 싱가포르 총리, 아메리카 온라인의 공동 설립자 스티븐 케이스, MoMA 관장 글렌 로리 등 동문도 빵빵하다.




학교의 자랑인 튜토리얼 수업

이 학교의 최고 자랑은 ‘튜토리얼(Tutorial)’이라 불리는 소수 정예 수업이다. 학생 2명에 교수 1명이 붙는 이 수업은 교수 앞에서 매주 다른 주제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동료의 글쓰기를 심사해야 한다. 이런 강도 높은 수업에서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머릿속 지식을 총동원해야 한다. 한 주에 한 학생이 5~7페이지가량의 연구 논문을 쓰면 다른 한 학생이 그걸 비평하고, 그다음 주엔 역할을 바꿔 진행한다. 이런 식의 수업이 매 학기 60개씩 개설된다. 물론 주제도 폭넓다. ‘태양물리학’에서 ‘감정과 자아’, ‘말로와 셰익스피어’, ‘동물의 의사 전달’에 이르기까지. 1993년부터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유럽의 중세와 이슬람 문화 수업을 해온 레일라 루(Leyla Rouh) 교수는 학생의 수업 장악력과 집중력에 대해 묻는 질문에 “누구도 학생들에게 강의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해줄 필요가 없다”고 짧게 답한다. 그 말을 풀이하면 이렇다. 윌리엄스 칼리지의 많은 학생이 학교 수업에 전적으로 참여하며, 깊이 있는 탐구를 즐긴다는 것. 윌리엄스 칼리지의 학생 절반은 졸업하기 전 튜토리얼을 한다. 그리고 그중 80%는 튜토리얼을 최고 수업으로 꼽는다.




윌리엄스 칼리지는 학생들의 귀천을 타파하는 의미로 졸업식에서 학사모와 가운을 착용하게 한 미국 최초의 대학이다.

한편 윌리엄스 칼리지는 작은 사립대이기에 학생과 교수의 비율이 고작 7 대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최근 4년간 세계 각지에서 이름난 교수를 40여 명이나 충원했다. 특히 스타 교수는 수백만 달러를 주고라도 데려온다. 그 덕분에 10여 개에 불과하던 소수 정예 강좌 수가 최근 6배나 늘었다. 교육을 위해서라면 절대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씀씀이는 든든한 재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재정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말해보자. 윌리엄스 칼리지는 1년 학비(수업료, 기숙사비 포함)가 5만5000달러(약 6000만 원)로 싸지 않은 편이다. 대신 학자금 지원 시스템은 미국 내 최고 수준이다. 이들은 미국의 학부 중심 대학 중 가장 많은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장장 20억 달러(약 2조 1840억 원)나 된다. 2013년 국내 4년제 사립대의 전체 누적 기금이 약 8조 2000억 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기금이 많다는 건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상했겠지만 재학생 절반은 학교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 학교는 매년 5000만 달러(약 546억 원) 이상을 학생들에게 쓴다. 그리고 그 막대한 자금을 뒷받침해주는 재원은 ‘기부금’이다. 한 학년이 500여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대학에 1조 원이 넘는 기부금이 쌓여 있다. 더 흥미로운 건 그 기부금을 대부분 학교 동문들이 낸다는 거다. 윌리엄스 칼리지의 2만7000여 명 동문 중 62%가 매년 기부한다. 이런 기부가 가능한 건 자신도 선배 동문의 기부덕에 아무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윌리엄스 칼리지에선 이런 따스한 마음이 세대 전체를 관통한다.




© Williams College
학교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인 톰슨 교회당

윌리엄스 칼리지엔 다양한 수업만큼이나 다양한 학생이 모인다. 2000명 규모의 학교에 무려 30여 개 나라의 학생이 함께 공부한다. 불가리아에서 온 학생과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베트남이나 캐나다에서 온 학생과 라틴어 수업을 듣고, 남아프리카에서 온 학생과 종교학을 배우는 식이다. 게다가 학풍도 자유로워 날씨가 좋으면 교수가 학생들을 이끌고 푸른 잔디에 앉아 수업하기도 한다. 학교가 시골에 있어 학생들이 앉을 공간만 마련하면 그곳이 곧 강의실이 된다.
윌리엄스 칼리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습득해 슬기롭게 일을 해결해나가는 다빈치 같은 르네상스 맨(renaissance man)을 ‘바람직한 학생상’으로 본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그런 뻔한 인물을 학생상으로 본다니 조금 촌스럽긴 하지만, 이들이 교양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하려는 올바른 가치관과 자발적 탐구 의지는 분명 동시대를 이끌어가는 인문학 토양의 근간이 되었다. 미국에도 분명 ‘아이비리그’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최근 대학을 서열화하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도 늘고 있다. 어떤 학생에겐 최고의 학교가 다른 학생에겐 영 아닌 곳이 될 수 있어서다. 대학은 이름값이 아니라, 얼마나 잘 배우고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곳인지 따져야 하는 학문의 전당이다. 윌리엄스 칼리지는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당장 해야 할게 무엇인지 습득하게 하고 근본적 능력을 다져주는, 지금 이 시대 젊은이에게 가장 필요한 학교다.




© Williams College




INTERVIEW
미국과 홍콩, 한국에서 활약하는 3명의 윌리엄스 칼리지 동문을 만났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보낸 이들은 하나같이 ‘생동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LA 카운티 미술관 관장,
마이클 고반(Michael Govan)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많은 명문 중 어떻게 윌리엄스 칼리지를 택했나? 대학 진학을 앞둔 어린 나이에 미래를 대비해 어떤 커리어를 쌓아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서 자연스레 특정 학문을 깊이 파기보다는 넓게, 나 자신이 나에게 무엇을 속삭이는지 제대로 귀담아들을 수 있는 학교를 골랐다. 윌리엄스 칼리지를 택한 이들은 대개 예나 지금이나 이런 생각으로 학교에 들어오는 것 같다.
지금은 LA 카운티 미술관(LACMA) 관장으로 있지만, 25세의 젊은 나이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부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을 주도했다. 어려서부터 미술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게 꿈이었나? 난 원래 개념미술가를 꿈꾸는 예술가 지망생이었다. 솔직히 미술관 경영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단, 예술가로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창 시절 교내 윌리엄스 칼리지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당시 그곳 관장으로 있던 토머스 크렌스(Thomas Krens) 전 구겐하임 관장의 눈에 띄었다. 윌리엄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샌디에이고의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그분이 같이 일해보자며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자연스레 미술가의 길을 접고 이 일을 택하게 됐다.
얼떨결에 작가 지망생에서 미술 행정가가 됐다. 맞다. 당시 난 6개월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 하다 보니 벌써 30년이 흘렀다.(웃음)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배운 커리큘럼 중 지금도 도움 되는 게 있나?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교양과목을 두루 또 깊이 있게 배운 거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선 윌리엄스 칼리지처럼 교양과목을 골고루 배울 필요가 있다. 미술관 관장으로 하루라도 살아본 이라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거다.
지금도 기억하는 학창 시절의 추억이 있나? 윌리엄스 칼리지는 학교 규모는 작아도 교내에 꽤 볼만한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었다. 특히 윌리엄스 칼리지 미술관은 작품을 1만2000여점이나 소장한 지역 명물이기도 했다. 시간 날 때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놀며 전시를 본게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또 학교 주변엔 당시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미술 관련 공간도 많았다. 그런 곳을 다 둘러본 것도 좋은 추억이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그렇게 미술관을 들락날락한 덕분에 훗날 매사추세츠 미술관을 설립하는 일에도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루지 못한 예술가의 꿈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예술가는 창의적인 사람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정교한 부류다. 물론 나는 관람객에게 그들을 ‘창의적인 방향’으로 보여주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술관 관장이야말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은 관장으로 일하며 창의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만족하며 산다.
‘윌리엄스 칼리지 출신’이란 말은 어떤 의미인가? 세상의 거의 모든 것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을 뜻한다. 특히 예술 쪽으론 일가견이 있다. 현재 미국의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 관장 중 6명이 윌리엄스 칼리지 출신이다. 한 해 졸업생 수를 따진다면 굉장한 수치다.
그간 LACMA에선 한국 작가의 전시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다른 아시아 출신 작가의 전시와 비교해도 확실히 눈에 띌 정도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국 출신 아티스트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활기차다. 하지만 미국에서 인지도는 중국이나 일본의 작가에 비해 낮은 편이다. 난 오래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 LA를 통로 삼아 한국의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미술을 알리는 것을 꿈꿔왔다.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있나? 서도호와 양혜규, 이수경을 좋아한다. LACMA에서 전시를 한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엔 김수자의 작품도 확보했다. 앞으로도 한국 작가의 작품을 계속 늘릴 계획이다.
최근 한국의 현대자동차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LACMA가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았는데, 마침 현대자동차와 뜻깊은 협약을 맺게 되어 정말 기쁘다. 앞서 말한 대로 미국에서 한국 예술을 알리는 리더가 되고 싶었는데, 현대자동차와의 협약으로 이 목표가 더 빨리 실현될 것 같다. 앞으로 LACMA는 삼국시대부터 최근까지 이어온 한국 전통 서예 전시(2018년)를 시작으로, 한국 현대미술 전시(2022년), 미국에서 처음 여는 20세기 한국 근대예술 작품의 대규모 전시(2024년)도 예정하고 있다.




 

큐엘 애셋 매니지먼트 컴퍼니 리미티드의 매니저, 김헌수
현재 하는 일은 무엇인가? 몇몇 파트너와 지난해부터 홍콩 주재 자산 관리 운영사 큐엘 애셋 매니지먼트 컴퍼니 리미티드(QL Asset Management Company Limited)를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엔 베어링자산운용에서 아시아 시장 펀드매니저, 2000년대엔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에서 환태평양 지역 조사 본부장을 오랫동안 역임했다.
금융 계통이면 예일이나 조지타운, 펜실베이니아 등 미국에도 명문이 많은데 굳이 윌리엄스 칼리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학창 시절엔 꼭 금융을 전공해야 이후의 커리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내가 해온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는 금융공학적 지식보다 유연한 사고, 역사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 등이 중요하다. 나도 신입 사원을 뽑을 때 어떤 구체적 전공 지식보다는 지적 호기심과 성공에 대한 의지, 팀플레이 등을 중요시한다.
윌리엄스 칼리지에선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랬다. 하지만 전공 수업보다 역사학이나 철학, 수학 등 교양과목이 전체 수업의 절반 이상이었다. 이는 최근 스탠퍼드나 옥스퍼드, 하버드 등 상위 종합대학에서 여러 학문 분야를 융합하는 ‘학제적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가 유행하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학교 생활은 어땠나? 1984년에 윌리엄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학교는 매우 작았다. 학생 대비 교수 비율은 지금과 비슷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학과목 강의 시간 외에도 교수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학생이 원하면 매주 교수와 면담이 가능했고 점심식사는 물론 늦은 저녁에 모여 함께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업도 수업이지만, 그 외의 시간에 배우고 얻은 것이 참 많은 것 같다.
기억나는 토론 주제가 있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동 대립이 심했을 때 유대인과 아랍계 학생을 주축으로 많은 토론이 이어졌다. 당시 한국 출신으로 강한 주장을 펼칠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참관만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한 기억이 있다.
윌리엄스 칼리지의 학풍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있나? 졸업 논문 주제를 정하지 못해 한창 고민하던 시기, 친구 하나가 평소 자주 하는 시사 토론을 주제로 공동 논문을 쓰자고 제안해 미국, 컬럼비아, 독일인 친구에 나까지 모두 4명이 열띤 토론을 벌인 일이다. 당시 우린 니카라과 혁명과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대외 강경책 등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고, 1500페이지 이상의 논문을 써서 교수와 학생들을 앞에 두고 발표했다. 그 논문은 그해 학과 최고 논문으로 선정됐고, 난 최우수 발표자상까지 탔다. 이런 건 일반 대학에선 쉽게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참고로 우리 집안은 아버지(김경원 전 주미 대사)와 나, 큰아들까지 3대가 모두 윌리엄스 칼리지 출신이다.
윌리엄스 칼리지 출신은 동문을 서로 친구처럼 잘 챙겨주는 걸로도 유명하다. 한국 내 동문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지난 20년간 홍콩과 서울을 바쁘게 왕래했기 때문에 선후배를 잘 챙기지 못한 게 아쉽다. 20~30명씩 모이는 가까운 동기들이 있긴 하지만 보다 많은 동문, 특히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도움을 주고 싶다.




 

웨버 샌드윅 코리아의 AE, 조재홍
현재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글로벌 PR 커뮤니케이션 기업 웨버 샌드윅에서 기획일을 하고 있다. 주로 외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한국에서의 위기 관리, 브랜드 이미지 제고 및 언론 관계 등에 관해 자문한다.
윌리엄스 칼리지에선 무엇을 공부했나? 수학과 통계학을 전공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수학을 너무 싫어했기 때문에 대학에서 수학 책을 잡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 고등수학 수업 몇 개를 듣다 보니, 정말 눈이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됐다. 수학이 이미 아는 걸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학문이라 걸 윌리엄스 칼리지에 들어가 알게 됐다.
윌리엄스 칼리지는 한국에서 유독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오히려 모르는 이가 더 많다. 어떻게 이 학교를 알게 되었나? 의 대학 랭킹 1위에 윌리엄스 칼리지가 수년간 이름을 올린 걸 보고 알았다. 학교에 입학한 후엔 솔직히 학부 중심 대학이 왜 좋은지, 교수들과 가깝게 지내는 게 왜 좋은지에 대해 크게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4년간 공부해보니 교수들이 자신의 연구 활동보다 강의에 비중을 두는 대학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윌리엄스 칼리지는 강의실에서 수업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학생과 교수가 수업 외의 전반적 학문에 대한 토론이나 잡담을 계속 이어간다. 학생은 자연스레 교수의 학문에 대한 포괄적 지식과 열정을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들 윌리엄스 칼리지를 택하는 것 같다.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배운 커리큘럼이 지금 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동문끼리 모이면 늘 분석적 대화를 하게 된다. 모두 다르게 생각하려 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동문 모임에서 자국에선 별로 인기 없는 케니 지나 브라이언 맥나이트가 유난히 한국에서 우상시되는 이유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동문이 각각 음악 스타일, 가사, 정서적 연관성, 타이밍, 한국 특유의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 등 다각도로 뮤지션을 분석하고 고대 그리스 철학까지 인용하며 토론했다. 재미있는 건, 그중 누구도 팝 음악을 전공한 이가 없었다는 거다. 한마디로 윌리엄스 칼리지에선 모든 커리큘럼이 주어진 내용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방법, 그리고 그걸 토대로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방법, 남의 주장을 이해하고 또 논리적으로 반박할수 있는 방법 등 ‘비판적 사고력(critical analysis)’과 연관이 있다. 그 덕분에 물론 지금 내가 하는 업무에도 지대한 도움을 준다.
‘윌리엄스 칼리지 출신’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나? 늘 윌리엄스 커뮤니티에 둘러싸이게 되는 걸 의미한다. 동문회에 가면 정말 아버지뻘 되는 선배들과 학교에서 친구들과 논쟁하던 것처럼 이야기하고, 가깝게 어울려 지낸다. 그들과 동시대에 학교에 다닌 건 아니지만, 그 산골짜기 시골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것만으로 특별한 ‘본드(bond)’가 생기는 것 같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강태욱(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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