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지갑

LIFESTYLE

2016-11-02

미래의 지갑

좀 더 간편하고 안전한 지불 수단을 개발하는 건 전 세계 모든 금융사의 관심사다. 결제가 편해야 더 많은 소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더 많은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이후의 세상에는 뭐가 있을까?

현재 핀테크 서비스의 중심은 스마트폰이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스마트폰이 중심인 것은 지갑처럼 24/7(24시간, 7일) 사용자와 함께 있는 속성 때문이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에 결제 수단을 집어넣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물론 24/7의 속성을 지닌 것이 지갑이나 스마트폰만은 아니다. 반지도 있다. 그래서 반지에 결제 기능을 집어넣어보겠다는 회사가 있다. 2015년 10월경 처음으로 소개한 ‘KERV’란 이름의 반지는 결제 기능이 들어 있다. 일반 반지보다 조금 크고 두꺼워 보이는 것은 안쪽에 통신을 위한 NFC 모듈과 배터리, 필요한 데이터를 저장해두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질은 세라믹이며 안쪽의 장치를 보호하기 위한 방수 기능을 갖췄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꽤 큰 인기를 얻었지만 아직까지 선주문만 받고 있는 상태다. 사실 이런 형태의 결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돈(이라기보다는 금융 정보)을 보관하고 있는 주체는 물론이고 결제하려는 사람이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인증 담당 회사가 협조를 해야 한다. 이 제품은 아직 인증 부분이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VISA가 개발에 동참한 NFC Ring. 이 반지에는 결제 기능이 들어있다. 안쪽에 통신을 위한 NFC 모듈과 배터리, 필요한 데이터를 저장해두는 공간이 숨어 있다.

이들이 잠시 주춤한 틈을 타서 NFC Ring이란 제품이 등장했다. KERV처럼 NFC를 이용해 결제하는 제품인데, 놀랍게도 최대 신용카드 회사 VISA와 함께 만들었다. VISA의 주된 수익 모델은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고, 수수료는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늘어나니 이 결제 수단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또한 NFC Ring의 입장에서는 금융사의 지원과 함께라면 인증 관련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이미 NFC를 이용해 (NFC 카드를 이용하는) 도어록을 해제하거나 와이파이 비밀번호, 포털 사이트의 패스워드 해제 등도 이 반지를 이용해 가능하다. 실제로 이 반지의 프로토타입은 리우 올림픽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이미 어느 정도 실전 테스트도 거친 셈이다.

1 통합 카드 시스템 Coin.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되는데 최대 8개의 카드 정보를 기록할 수 있다. 2 Scrip은 구리 재질로 만든 납작한 형태의 캡슐이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작은 조각들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결제 정보를 표시한다. 지출을 물리적 촉감으로 표현해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반지 형태의 결제 수단은 단점도 있다. 스마트폰 대체 화폐를 사용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앱이나 결제 창을 띄워 건네주면 그걸 신용카드를 긁는 곳에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 결제가 된다. 만약 반지라면 손가락을 거기에 대거나, 반지를 빼서 건네줘야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 수도 있다. 결제를 위한 인프라는 모두 갖추었지만, 사용자의 인식이 문제인 셈이다. 어쩌면 이런 문제를 생각한 것이 스마트 신용카드일지도 모른다. 이미 하나의 카드에 여러 가지 정보를 집어넣고 필요에 따라 그 정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카드가 있다. 이제 막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이 카드의 시초는 2013년, Coin이라는 제품이었다. 통합 카드 시스템 Coin은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된다. 카드가 스마트폰과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경보를 울리기도 한다. 굳이 스마트폰과 연동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카드 자체가 핵심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최대 8개의 카드 정보를 기록할 수 있고 전면의 버튼을 누르면 기록된 카드 정보를 순서대로 활성화한다. 가격은 100달러. 다만 현재 이 제품은 판매되지 않는다. 이미 카드 회사에서 출시한 통합 카드 시스템이 많기 때문인 듯하다. Plastc도 Coin과 비슷한 시스템인데, 분실 시 원거리에서 기록된 정보를 모두 삭제해버릴 수 있는 기능을 넣었다. 2년이 지나면 디바이스 자체를 교체해야 하는 Coin과 달리 내장 배터리를 충전(한 번 충전하면 한 달을 쓸 수 있다)해 사용할 수 있다. 이 제품은 현재 155달러의 가격에 판매 중이다. 반지와 통합형 카드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VISA가 반지에 천착하고 있다면 마스터카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이미 작년에 전자열쇠(key fob)나 의류에 결제 기능을 부여하는 업체와의 제휴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전자 결제 시스템의 특징은 현금처럼 내 손에서 타인의 손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없다는 것. 그렇기에 돈을 쓴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이런 부분은 금융회사에는 호재다. 물리적 과정이 없기에 돈을 절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더 사용자의 입장을 고려한 미래 결제 수단도 있다. New Deal Design의 Scrip은 구리 재질로 만든 납작한 형태의 캡슐이다. 상단에 디스플레이가 있고 그 아래쪽에는 다이아몬드 패턴의 작은 조각들이 있다. 이 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작은 조각들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결제 정보를 표시한다. 결제는 이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주는 것처럼 손으로 밀어주면 된다. 금액이 오고 갈 때의 촉감을 통해 지출을 실제 현상으로 확인시키기 위한 디자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결제 시스템의 공통점은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가 본인이라는 것을 상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용 장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PC에서 결제하는 경우라면 공인 인증서나 휴대폰 인증 등 다양한 본인 인증 수단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사용의 편의성보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금융이란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산업이니까. 앞서 소개한 Plastc은 특정 카드 정보를 활성화하기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나머지 제품은 이런 부분이 다소 부족하다. 아마 조금 더 먼 미래에는 결제 수단은 몸속에 들어 있고, 결제는 그냥 생각만 하면 이루어지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 분명 결제는 점점 고민을 하지 않는(정확히는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디터 이기원(lkw@noblesse.com)
글 고진우(IT 칼럼니스트) 사진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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