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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5 LIFESTYLE

밀라노에서 디자인을 묻다

  • 2015-05-20

유럽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했지만, 현대에는 세계의 모든 디자인이 밀라노로 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매년 4월이 되면 한 주간 도시 전체가 디자인의 물결로 들썩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가구 박람회를 비롯해 시내 구석구석에서 크고 작은 이벤트가 펼쳐진다. 올해도 여전히 수많은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각자의 사유와 감성을 담은 신작을 쏟아냈다. 미처 완벽하게 눈에 담지 못해 아쉬운, 활기찬 축제 현장을 직접 보고 돌아왔다. 그 속에서 찾은 올해의 주요 디자인 트렌드, 그리고 인상 깊은 장면.

 




조명 브랜드 포스카리니(Foscarini) 부스




모로소 부스에서는 레드부터 퍼플까지 그러데이션된 색감의 글라이더(Glider) 소파가 주목 받았다. 론 아라드가 디자인한 것.

국제 가구 박람회에서 트렌드 찾기
실로 오랜만에 해외 디자인 페어를 찾았다. 심지어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는 처음이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역사가 깊고 규모가 큰, 올해로 벌써 54회째를 맞이한 이 디자인 행사장에 도착해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밀라노 북부 외곽에 위치한 로피에라(Rho Fiera)에 매년 세우는 메인 스타디움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전시장 면적이 20만1700㎡라는데, 수치에 약한 탓에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다만 코엑스의 5~6배 정도는 족히 되지 않을까 어림짐작했을 뿐이다. 20개의 대형 파빌리온을 세우고, 그 안에 가구를 중심으로 2000개가 넘는 주방 가구와 조명 등 디자인 관련 업체가 둥지를 튼다. 그 업체들과 협업한 수많은 유명 디자이너가 전시장 부스 곳곳에 앉아 전 세계 프레스는 물론 관람객과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대체 어디서 다 쏟아져 나왔을까 싶을 만큼 많은 인구가 그 넓은 전시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올해도 전 세계 160개국에서 30만 명 이상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박람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역의 장일 뿐 아니라 그해의 가장 진보적 디자인 트렌드를 가늠하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하는 자리다. 하지만 그 안에서 트렌드를 짚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느 박람회와 달리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몇 해에 걸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찾지 않으면 파악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확실히 감지할 수 있었던 건 이탈리아 디자인의 힘이다. 참가 업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이탤리언 브랜드는 최근 몇 년간 대세였던 미니멀한 노르딕 디자인이 잊힐 만큼 특유의 다채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각 브랜드의 전통적 기술력에 더한 다양한 외부 디자이너나 건축가의 현대적 감성과 창의력은 이탈리아 디자인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올해 박람회에서 가장 눈에 띈 메이저 트렌드는 다음의 3가지다.




안락한 하이백 미팅 체어를 선보인 우픽스(Uffix)




아르페르(Arper)에서 선보인 사무 가구




Office Revolution
가장 주목받은 파빌리온은 과거 존재감 없이 조연으로 오래 머물러온 사무 가구 전시관 워크플레이스 3.0(Workplace 3.0)이다. 사무 가구 전시가 열린 2년 전부터 조금씩 일반 주거 공간 디자인 가구의 성향을 닮아가는 경향을 보였는데, 올해는 주거 공간과 상이하게 편안함을 주는 컬러와 소재를 강조한 디자인이 쏟아져 나왔다.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가 이 전시관에서 선보인 특별 전시 는 변화하는 오피스 환경에 대한 관념을 명확하게 시사한다. 또 카르텔, 마지스, 비트라 등 유명 가구 브랜드도 과거 등한시하던 사무 가구를 각자의 부스에서 다양하게 선보이며 관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라이프가 대두된 현대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택 근무자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로운 업무와 삶을 영위하는 노매드족이 점차 많아지고 있고, 유형의 제조 및 생산 시설보다는 무형의 창의적 콘텐츠가 우위를 점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의 디자인 산책
국제 가구 박람회 기간 중 한 주간은 ‘디자인 위크’로 불리며 밀라노 전체가 디자인 도시로 탈바꿈한다. 로피에라를 벗어나 시내로 들어서면 수많은 가구와 디자인 숍이 이 축제에 동참해 쇼룸을 컨셉추얼하게 꾸미거나 신제품을 선보이고 저녁 늦게까지 칵테일파티를 열기도 한다. 디자인 전시를 선보이는 매장이 몰려 있는 주요 구역은 시내 중심가를 비롯해 10 꼬르소 꼬모가 자리한 코르소가리발디 길, 브레라 미술 아카데미 주변 그리고 밀라노 남쪽에 위치한 토르토나 지역 등이다. 특히 디자인 위크 기간에 크고 작은 전시 공간이 생겨나는 토르토나 지역은 꼭 한번 둘러볼 만하다. 입장권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 내용과 형식 면에서 박람회장보다 훨씬 젊고 활기찬 분위기가 넘친다.




현대카드 전시장




LG 하우시스 전시장




Korean Power at Super Studio Piu
디자인 위크를 맞아 토르토나에 문을 연 다양한 전시 공간 중 하이라이트는 슈퍼 스튜디오 피우다. 대기업과 스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철학을 담은 제품과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카드, LG하우시스 등 국내 기업도 그들만의 색다른 디자인 세계를 펼쳐 주목받았다. 2013년에 이어 참가한 현대자동차는 ‘헬리오 커브(Helio Curve)’라는 테마로 세계적 아티스트 루빈 마골린과 협업해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400여 개의 나무 블록을 선으로 연결, 양쪽 구동축의 움직임을 통해 3m 높이의 파도가 치는 듯한 모습으로 거대한 자연의 움직임을 연출했다. 자연의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조형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자사의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를 형상화 한 것. 올해 처음 참가한 현대카드의 전시 프로젝트는 ‘Money’를 주제로 삼아 신선한 감각을 선보였다. 지난 10년간의 카드 디자인 역사와 혁신 과정을 풀어내 현대 카드 디자인 역사가 한눈에 펼쳐졌다. 특히 전시장 벽면 곳곳에 설치한 카드 단말기는 끊임없는 호기심과 흥미로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단말기에서 각자의 카드를 선택해 찍으면 지지직 소리를 내며 영수증 설명서가 나오도록 설계,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카드를 통해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 그런가 하면 5년 연속 참가한 LG하우시스는 네덜란드의 유명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와 함께 인테리어 자재 디자인을 독특한 방식으로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음매 없는 시공이 가능하고 가공성이 뛰어난 인조 대리석 ‘하이막스’의 특성을 살린 이국적이고 독특한 문양의 대형 오브제를 설치했다.




넨도 웍스 전시장




Nendo Works
시내 중심가 투라티(Turati) 거리의 한 건물에서 펼친 넨도의 전시는 가뭄 속 단비 같았다. 하루 종일 밀라노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닌 덕에 극도의 피로감에 휩싸인 심신의 감각을 깨워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넨도는 가구와 오브제, 전시회, 패션 등 전방위에서 한계를 알 수 없는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일본 디자인 그룹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기능과 형태보다는 제품이 전하는 이야기를 중시하는 그들의 간결하면서 시적인 디자인을 대거 선보였다. 유리 소재로 만든 캐비닛과 체어, 테이블 등은 중첩되거나 흩어지고, 분리되거나 합해지며 의외의 조형미를 드러낸다.




모오이 전시장




모오이 전시장 입구

Moooi
토르토나에 위치한 모오이 쇼룸은 지난해 디자인 위크에 이어 특유의 유머러스한 감각을 담은 마법의 공간으로 또 한 번 변신했다. 모오이의 아트 디렉터 마르셀 반더스와 사진작가 라히 레즈바니(Rahi Rezvani)의 협업, 그리고 신비롭고 현란한 패턴의 모오이 카펫까지 가세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최고의 전시를 선보였다. 미스테리하고 아티스틱한 분위기의 대형 사진 이미지와 9개의 주거 공간을 매치했다. 이를테면 쓸쓸하면서 고혹적인 눈빛의 여인을 담은 흑백사진을 배경으로 연출한 리빙룸의 낮은 테이블 위에 와인 한 잔이 놓여 있다던가, 긴 곱슬머리의 내추럴한 여인 사진 앞에는 넝쿨식물이 떨어져내릴 듯한 자전거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과도하게 붉은 입술의 여인 사진과 매치한 빨간 체어와 조명, 여인이 서 있는 어둡고 고즈넉한 숲 속 사진을 배경으로 연출한 동물 형상의 바비큐 그릴과 블랙 체어, 아시아 여인의 치마를 형상화한 듯한 와이어 조명… 전시장 내부에 연출해놓은 공간마다 감각이 넘쳐흐른다.




아르마니 테아트로에 전시한 아르마니 까사의 뉴 컬렉션과 조르지오 아르마니

Armani Teatro
토르토나 지역 인근에 위치한 아르마니 테아트로는 간혹 패션쇼나 특별 전시, 이벤트를 펼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공간이다.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고, 이런 스페셜 이벤트도 초청을 받아야 관람할 수 있다. 특별히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는 아르마니 까사 디자인 스튜디오가 신작 가구, 소품과 함께 아르마니의 인테리어 감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호텔 및 주거 공간의 스케치와 렌더링, 사진 등을 전시하는 자리를 마련해 그의 여전한 디자인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탄생 40주년을 맞아 선보인 새로운 가구 컬렉션은 소재와 컬러를 다루는 그의 능수능란한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레이와 아쿠아 컬러 가죽이 조화를 이룬 데스크, 생 로랑의 블랙 마블 상판과 브라운으로 염색한 느릅나무 소재 다리를 적용한 오벌형 다이닝 테이블, 레드 래커로 마감한 바 캐비닛 등 동양에서 영감을 받은 소재와 색감을 특유의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세련되게 표현했다.




펜디 쇼룸에 전시한 캄파냐 형제의 안락의자




토리 버치의 커피잔

Fashion Brand’s New Design Collection
이번 디자인 위크 기간에 홈 컬렉션의 유럽 데뷔식을 치른 토리 버치. 미국 유명 도자기 디자이너 도디 세이어(Dodie Thayer)와 컬래버레이션한 테이블웨어를 밀라노에 새로 오픈한 쇼룸에 전시하며 <월페이퍼> 매거진과 함께 칵테일파티를 열었다. 양상추 모양의 세라믹 플레이트와 볼, 다양한 사이즈의 컵으로 구성했다. 펜디는 캄파냐 형제와 협업한 독특한 작품을 선보였다. ‘수천 개의 눈으로 이루어진 안락의자’를 탄생시킨 것. 펜디 장인들이 각기 다른 크기와 컬러로 만든 몬스터 참, ‘백 벅’을 독창적으로 조립한 것으로, 캄파냐 형제가 스테인리스스틸 구조에 캔버스를 덮고 그 위에 동물 인형을 쌓은 후 손으로 바느질해 장난스럽게 조합한 ‘뱅 크위트’를 연상시킨다. 넨도의 전시장에서도 볼 수 있었던 아키텍트 백은 토즈를 위해 디자인한 것이다. A3 용지가 온전히 들어가는 긴 직사각 형태지만, 반으로 폴딩하면 미니 백이나 클러치처럼 쓸 수 있는 구조적 기능미를 갖춘 백이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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