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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5 FEATURE

채상으로 엮은 전통의 아름다움

  • 2015-06-19

여름이 성큼 다가온 어느 날, 담양의 죽녹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40년 넘게 대나무로 채상을 만들어온 서신정 장인을 만났다. 가업을 이어 채상장의 길을 걷는 그녀의 손놀림은 오늘도 바쁘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대숲을 배경으로 촬영해 화제를 모은 한 통신사 광고의 오래된 카피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바람이 불자 댓잎이 부딪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대와 대가 탁탁 맞닿는 소리는 절간의 목탁 소리처럼 청명했다. 대숲을 거니는 것 못지않게 대나무로 만든 각종 죽세공품을 만나는 일도 담양의 죽녹원(竹綠苑)을 찾는 큰 기쁨이다. 후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천천히 걷다 보면, 채상을 40년 넘게 만들어온 서신정 장인과 누구나 쉽게 인사를 나눌 수 있다. 그녀가 운영하는 채상장전수교육관은 평일에도 수백 명이 찾는 관광 명소다. 그날도 그녀는 교육관 한쪽에서 대오리(대나무를 종이처럼 얇고 가늘게 쪼개 부드럽게 만든 것)를 엮어 채상을 짜고 있었다.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에 만(卍)자 연속 문양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채상과 함께 각종 죽세공품을 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 제작 과정이나 완성품을 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여느 전수교육관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채상장’이라는 운명
문화재청의 설명에 따르면 채상(彩箱)은 채죽상자(彩竹箱子)의 준말로, 대오리를 여러 색으로 물들여 갖가지 무늬가 나오도록 짠 상자를 말한다. 옷가지나 귀중품, 침선구 등을 담는 안방 가구나 혼수품으로 예부터 궁중과 귀족 계층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색색의 문양에 깃든 아름다움도 이유겠지만, 통풍이 잘되고 변질하지 않는 대나무 특유의 성질 덕분에 귀중한 물건을 오래 담아두기에 안성맞춤이다. 채상은 정교한 세공이 필요하다. 거칠고 딱딱한 대나무의 속껍질을 입으로 떼어 물에 불린 후 종잇장처럼 얇게 훑어 대오리를 만드는 일부터 소목(붉은색), 치자(노란색), 쪽물(파란색) 등 천연 재료를 넣고 삶아 염색한 후, 이것을 말리고 손으로 하나하나 촘촘히 엮어 기하학적 문양을 넣는 고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무리 장인이라도 꼬박 보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채상의 매끄러운 결과 고운 빛깔을 상찬하며 무늬 채(彩) 자 대신 비단 채(綵) 자를 붙여 ‘비단 같은 상자’라 불렀다. 이런 채상을 만드는 장인을 채상장이라 한다. 1975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됐다.
서신정 장인이 채상을 처음 시작한 때는 1979년 가을, 열아홉 살의 꽃다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곱 자매 중 둘째인 그녀는 2대 채상장인 아버지 서한규 씨가 하는 일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아니, 일부러 눈길도 주지 않았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가타부타 가업을 이으라는 말도 없이 당신 할 일만 할 뿐이었다. “장인이라지만 너무 가난하고 힘들었어요. 또 꿈 많은 학창 시절엔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나요. 피아노도 치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취직했는데 3개월 만에 귀향했어요. 몸이 아파서. 그해 가을 툇마루에 앉아 햇볕을 쬐는데, 채상을 짜고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전라도 말로 ‘짠하다’고 하죠. 그날부터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어요. 기본적인 것을 하나둘 배워갔죠. 근데 이게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적성에 딱 맞는다고 하죠?(웃음)” 그 재미에 빠져 채상과 평생을 함께하고 있다.
입문 초기 비교적 제작이 수월한 부채부터 만들던 그녀는 채상의 ‘참맛’을 점차 알아가자 욕심이 발동했다. 먼저 문양을 다양하게 만들고 싶었다. 1대 채상장 김동연 옹에 이어 아버지까지 남자 채상장의 손끝으로 이어져온 채상은 보통 10가지 내외의 문양으로만 제작하고 있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그녀는 만자나 태극, 격자 문양 등의 기초 문양을 토대로 새로 도안을 그려 요즘 감각에 맞는 문양 개발에 매진했다. 담양의 젊은 아가씨가 채상을 만든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기저기서 관심을 보였다. 한 전문 위원은 전통 문양에 관한 귀한 자료를 그녀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만자 연속 문양으로 짠 채상이 집에 있었는데, 아버지의 외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것이었어요. 주로 죽부인을 만들던 아버지도 100년이 넘은 이 채상을 연구하면서 채상장의 세계로 들어오셨죠. 저도 그 채상을 놓고 3일 밤낮을 도안을 그리며 연구하니, 전에 없던 무언가가 나오더라고요.” 현재 그녀만의 문양은 50여 가지나 된다.
각종 공예 대전에서 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은 그녀가 1995년 아버지의 전수교육조교로 인정받으면서 채상 제작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2000년부터는 채상의 현대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기본적 상자 형태 외에 가방, 방석요, 도시락, 접시, 쟁반, 부채, 액자, 브로치, 핀, 머리띠, 지갑 등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십수 가지 물품에 채상 작업 방식을 도입했다. 또한 채상을 99% 천연 염색으로 제작하는 방법도 연구했다. 이전만 해도 화학 염색이 주를 이뤄 채상 특유의 오묘한 색감을 내지 못했다고. 그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옻칠한 채상도 개발했다. 옻칠 채상의 반짝이는 갈색 빛깔과 단단한 외형은 특히 외국 손님에게 인기가 높다. 물론 옻칠은 또 다른 전통 공예가에게 맡긴다. 문화재인 채상을 어느 한 과정도 설렁설렁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만드는 과정은 힘들지만, 완성품이 나왔을 때 정말 기뻐요. 그런 작품을 보면 안 팔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도 있어요. 손님 중에는 그런 저를 보면서 꼭 딸 시집보내기 싫은 눈빛이라고 얘기하기도해요.(웃음)”




서신정 채상장이 제작한 다양한 죽세공품

전통을 알아야 내일이 보인다
2012년 마침내 그녀가 채상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현재 그녀의 가족은 모두 채상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아버지는 물론 그녀의 조교이기도 한 남편은 채상 작업의 출발점인 대오리를 만드는 일에 주력한다.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아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는 의지가 넘친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몇 날 며칠을 공들여 완성한 채상 가격을 듣고는 많은 사람이 무척 놀라요. 너무 비싸다면서요. 전통 공예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전히 가난합니다. 제가 하지 않았다면 채상도 그 맥이 끊겼을 거예요. 전수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우리 전통을 너무 몰라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특히 젊은 친구들이요. 국가적으로 전통에 관해 홍보를 더 많이 해야 해요. 외국 것은 무조건 좋다고 받아들이면서 전통은 고리타분하고 잘 모르는 것으로 치부하잖아요. 전수관 운영도 빠듯하지만 채상 연구를 게을리할 수는 없죠.” 300쪽의 대오리를 엮는 그녀의 능숙한 손놀림은 오늘도 내일을 향한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권현정(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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