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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6 FEATURE

자유와 자립의 존중, 교토 대학교

  • 2015-12-22

반드시 일등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우수한 연구자가 되면 된다. 교토 대학교는 그렇게 성장해왔다.

교토 대학교를 상징하는 초록빛 녹나무와 그 뒤로 보이는 개교 100주년 시계탑 기념관




대학의 명물 중 하나인 각종 화석과 광물, 암석 등을 연구·보존하고 있는 자연사 박물관

교토 대학교는 도쿄 대학교와 자웅을 겨루는 일본 최고 명문이다. 도쿄 대학교가 국가 엘리트 양성 기관 같은 도련님 이미지라면, 교토 대학교는 공부밖에 모르는 범생이 이미지로 ‘학문의 전당’ 역할을 해내고 있다. 1897년 ‘교토제국대학’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교토 대학교의 건학 이념은 ‘학문의 자유’. 이공계 대학이 먼저 생겼고, 이후 법대와 의대 등을 차례로 개설했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문과보다는 이과가 우세하다. 그리고 예부터 학생들에게 물 쓰듯이 연구비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연구 성과를 빨리 내라고 닦달하진 않는다.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해 해결책을 찾아내도록 느긋하게 기다려준다. 뛰어난 정치인을 수없이 배출해온 도쿄 대학교가 아무리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도, 이들은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쥐 죽은 듯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
지금은 누구나 아는 얘기겠지만, 교토 대학교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 과학자를 키워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자국에서도 ‘일본 과학계의 수도’로 통한다. 일본에서 이제껏 가장 많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이곳에서 나왔다. 물질의 핵이 강하게 결합하는 원인인 파이온(중간자)을 찾은 공로로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가와 히데키를 시작으로 도모나가 신이치로(1965년 물리학상), 후쿠이 겐이치(1981년 화학상), 도네가와 스스무(1987년 생리의학상), 노요리 료지(2001년 화학상), 마스카와 도시히데(2008년 물리학상), 야마나카 신야(2012년 생리의학상)까지 일본이 이제껏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 20명 중 7명이 이곳 출신 또는 이곳에 적을 두고 연구했다. 이외에 수학 분야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과 ‘가우스상’, 의학 분야의 ‘래스커상’ 수상자도 여럿 배출했다. 그러니까 수학과 우주과학, 물리학이 포함된 이들의 이학부 명성은 지구방위대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 학교가 얼마나 기초과학과 그것을 향한 집념으로 똘똘 뭉친 학교인지 알아보자. 먼저, 현재 이 학교 총장으로 있는 야마기와 주이치부터 세계적 영장류 학자다. 그는 ‘고릴라 교수’라는 별명으로 지난 40년간 우간다와 르완다, 케냐 등의 아프리카 열대 숲을 뛰어다니며 고릴라의 행동과 인간 사회를 비교 분석했다. 근데 사실 알고 보면 그는 지난 총장 투표 당시 학교를 떠들썩하게 한 학생들의 ‘총장 투표 거부 시위’로도 유명하다. 그즈음의 사건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고릴라 교수는 영장류 연구의 보물인데, 그가 총장이 되어 연구직에서 물러나면 세계의 영장류학, 나아가 교토 대학교에 큰 손실”이라는 것. 대체 이런 훈훈함은 어디서 기인한 걸까?(하지만 그는 결국 총장으로 선출돼 학생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줬다)
한편 이들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기관을 모자람 없이 세우는 것으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중 ‘수리해석연구소’와 ‘유도만능줄기세포연구응용센터(CiRA)’가 대표적. 1963년 설립한 일본 유일의 순수 수학 연구기관인 수리해석연구소는 지금도 매년 70회 이상의 세미나가 열릴 정도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고,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교수와 깊은 관련이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연구응용센터는 현재 줄기세포 연구기관으로선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장비와 기능을 갖추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들은 수년 전 일본 정부와 합심해 야마나카 신야 교수 한 명에게만 50억 엔(약 480억 원)이란 천문학적 연구비를 지원하기도 했다(이게 얼마나 큰 액수인지 쉽게 가늠이 안 된다면, 같은 돈을 한국에서 한 교수, 한 학교에 지원한다고 할 때 벌어질 일을 상상해보자). 이처럼 교토 대학교는 당장 그 효과를 알 수 없는 기초과학 연구가 중심이지만, 꾸준한 지원으로 학생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게 하고, 그 결과 최고의 성과를 끌어낸다.




일본인 과학자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유가와 히데키 전 교토 대학교 교수




늦은 밤까지 늘 불을 밝히는 도서관

그런가 하면 지금의 교토 대학교가 이렇게 아시아 이공계의 최고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자유로운 학풍’ 덕이란 의견도 많다. 한 예로 이들은 결코 전공 과목에서 출석을 점수로 매기지 않는다. 국내 한 교토 대학교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 학교 신입생은 종종 수업 시작 전 교수가 “수업에 안 와도 되니 시험 잘 보세요”라고 하는 말에 당황한다. 실제로 전공 수업 시간에도 출석을 부르는 교수가 없다. 수업에 오지 않고 당당히 A학점을 받는 학생도 많다. 수업을 듣는 것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도네가와 스스무 교수의 경우 재학 시절 화학 전공자임에도 엉뚱하게 바이러스 공부에 매달리느라 전공 공부를 거의 못하기도 했다. 또 이들은 예부터 학생들이 애당초 과학을 전공한다 해도 여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문학과 철학, 예술을 공부하는 걸 장려해왔다. 그런 이유로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유가와 히데키 교수는 그림에도 능통했다. 노벨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도 그림과 음악에 모두 조예가 깊었다. 과학 전공자도 문학을 읽고 예술을 알아야 창조적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을 이 학교에선 예부터 실현해온 거다. 반면, 이러한 자유로운 학풍에 취해 유급률 또한 높은 것이 함정. 오죽하면 노벨상 수상자를 수두룩하게 배출한 이 학교를 가리켜 “100명의 우수한 학생을 입학시켜 1명의 천재와 99명의 폐인을 양성한다”고 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이 대학 철학과 출신으로 최근 국내에서 <미움 받을 용기>와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시미 이치로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자유’와 ‘철저함’이란 단어로 기억한다. “고전 연구를 중요히 여기는 까닭에 원문 한 자, 한 구 소홀히 하지 않고 정석으로 읽고 해석하는 트레이닝을 받았죠. 또 그런 공부를 할 때도 학교는 늘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했고요. 근데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요? 제가 훗날 심리학과 철학에 관한 창조적 연구를 진행할 때 지대한 도움을 줬습니다.” 교토 대학교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학문의 자유’라는 학풍을 고수해왔다. 이는 모든 학문의 권한을 학생의 자율성에 맡기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이 학풍은 이들의 중추로 작용하며 ‘세계 제일’이 아닌, ‘세계 유일’을 추구하는 ‘교토 대학교 정신’을 만들었다. 그간의 괴물 같은 연구 성과가 결코 오랜 역사에만 기인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 현재 교토 대학교엔 10개의 학부와 18개의 대학원, 30개 이상의 연구소와 연구센터가 있다. 교수진은 약 3000명, 교원은 2500명, 학생은 약 2만5000명이다. 지난해 기준 유학생은 1700여 명으로 전교생의 약 8%. 한데 지금 이들은 교토 대학교에 더 많은 해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교토 프로파일(www.opir.kyoto-u.ac.jp/kuprofile)’이란 유학 유치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점점 ‘정답 없는’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해야 하는 사회로 접어드는 지금, 교토 대학교 특유의 학문적 자율성과 그 결과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INTERVIEW
아시아 최고의 연구 중심 명문인 교토 대학교를 직접 경험해본 두 교수와 건축가. 이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전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로버트 파우저(Robert Fouser)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교토 대학교에서 영어 및 외국어 교육 교수로 활동했다. 정확히 어떤 수업을 했나? 학부에선 교양 중심의 ‘공통 교육’을 했고, 대학원에선 ‘외국어교육론’이라는 석·박사 과정 수업을 담당했다.

교토 대학교는 노벨상 외에 수학 분야의 필즈상, 가우스상, 의학 분야의 래스커상을 받은 이도 많이 배출했다. 교토 대학교의 경쟁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일본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 영향도 무시 못할 거다. 또 그렇게 모인 이들을 학교가 ‘관리’하는 게 아니라 학생 개개인, 교수 개개인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해온 것이 남다른 성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런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교토 대학교의 뿌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교토 대학교는 ‘교토제국대학’이 그 시작이다. 그 당시 제국대학은 규모도 작고, 극소수의 우수한 학생을 키우는 학교였다. 또 당시 교수와 학생들은 연구와 실험에서 스승과 제자가 아닌 ‘동반자’였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교토 대학교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어를 학습할 필요가 있지만, 영어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의 많은 대학생이 학업보다 영어 점수 올리기와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영어 교수로서 개인적 의견을 듣고 싶다. 그 기사를 읽고 박수까지 쳤다. 한국은 현재 대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다. 물론 사회 자체가 애초에 스펙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럴 테지만, 그 스펙이 앞으로 어디에 필요할지, 또 어떻게 개인과 사회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 자체가 없는 것은 문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선 영어 또한 사회적 공론 없이 대학 사회에 깊이 침투해 있다. 한국인끼리 가장 편한 언어가 분명 한국어임에도, 한국인 교수가 한국 학생에게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그 상징이다.

한편 교토 대학교 총장은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의 인문계 학부 축소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의 여러 대학과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인류사에서 ‘대학’이라는 학문의 전당 역사는 거의 1000년에 이른다. 그리고 그간 그 내용과 구조도 많이 발달했다. 하지만 이는 인문학이 꾸준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인문학을 버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사실 지금 한국 대학의 가장 큰 문제점도 그거다. 바로 교육 이념의 기둥이 없는 것. 그 때문에 나는 교토 대학교 총장의 주장에 찬성한다.

교토 대학교는 노벨상 수상자를 7명이나 배출해 일본 대학 중 노벨상 최다 배출 학교가 됐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우수한 학생’을 뽑고 ‘자유’를 주면 된다. 관료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모든 학생은 어떤 ‘성취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 때문에 학교에선 ‘업적’이나 ‘스펙’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토 대학교는 반대로 학생들에게 ‘자유’를 줬다. 이 말은 모든 학생에게 자유를 줬으니, 그중 소수는 우수한 연구자로 활동하면 된다는 거다. 다른 길을 선택한 학생들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교토 대학교에서 4년간 교수로 생활하며 배운 건 무엇인가? 학문의 발전과 관료주의는 결코 한 배를 탈 수 없다는 거다. 좋은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선 실패도 있어야 하고, 충분한 시간도 필요하다. 한데 그걸 강압적으로 관리하면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과학 수업을 한 건 아니지만, 몇 년간 그곳에서 생활하며 이를 깊이 있게 느꼈다.

교토 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다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교토 대학교에서 나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가고시마 대학교에서 ‘공통 교육’의 한국어 프로그램을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당시엔 영어보다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 그 학교로 갔는데, 그 와중에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한국어 수업을 맡을 기회가 생겨 2008년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고향인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근황이 궁금하다. 재작년 고향인 미시간 주의 앤아버(ann arbor)로 돌아왔다. 28년 만이다. 지금은 ‘독립 학자(independent scholar)’로서 글을 쓰고, 평생 처음으로 슬로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독립 학자로서의 활동이 현실적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건축가 겸 와이그룹 대표, 양진석

현재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건축사무실 와이그룹 대표 겸 건축가로 활동하며 프로젝트 관리 전문가(PM)로 오너와 사업주를 대신해 의사 결정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아트센터 나비와 콘텐츠 문화 기업 마이크임팩트가 운영하는 건축 프로그램 NA21(Nabi Architecture)의 주임교수로서 오피니언 리더에게 건축 수업을 진행한다.

교토 대학교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적응하기 어렵진 않았나?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24세에 교토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 계신 아버지 친구분의 추천으로 그 지역에서 손꼽힌다는 교토 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에 가게 됐다. 첫 1년은 대학원생이 아닌 연구생으로 지내며 일본어와 전공 공부를 한 뒤 입학 시험을 치렀다. 일본의 다른 지역 사람도 “교토 사람의 마음은 못 읽는다”고 할 정도로 교토는 묘한 곳이다. 젊은 청춘이 머무르기엔 조용하고 외로운 곳이지만 그래서 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교토는 재즈와 록 음악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공부하다 돌파구가 필요할 때면 좋아하는 음악에 의지하면서 석사 2년, 박사 과정 4년을 마쳤다.

그곳에서 1988년부터 7년 동안 공부했다. 비교적 오랜 기간 유학하며 느낀 학풍은 어땠나? 교토 대학교는 기본적 이론과 학문의 근본을 굉장히 존중한다. 무엇 하나 약한 분야가 없을 정도로 공부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연구 지향적 학풍이다. 한번 세미나에 들어가면 8시간 내내 앉아서 끊임없이 토론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전공인 건축학은 어떤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건축학이라는 게 다양한 학문과 밀접하게 연관되다 보니 굉장히 많은 책을 봐야 했다. 그런 훈련이 되지 않은 유학 초기에 철학, 사회과학, 인문학, 현상학, 과학 등 수많은 분야의 서적을 끊임없이 읽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몇 년간 엄청난 책과 논문을 습관처럼 보고 어떤 날엔 18시간씩 연구실에서 지도 교수와 같이 설계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한동안은 ‘이렇게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꼭 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도 심했다. 하지만 심도 있게 공부하다 보니 연구에 대한 쾌감이 느껴졌다. 논문 속 안 보이던 논조가 보이고 전공 외 다른 학문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졌을 때 기뻤다.

연구 지향적 학풍 덕에 연구 지원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을 것 같다. 학생과 교수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은 학교에서 그만큼 지원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민간에서 운영하는 장학 제도도 상당히 잘돼 있었다. 물론 성적이 좋아야 하지만 유학생인 나도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지원받으며 학교에 다닐 수 있었을 정도다. 일본인 학생은 1년씩 외국 유학을 보내주는 시스템이 있어서 3년은 교토 대학교 대학원에서, 나머지 1년은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 지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때 배운 학문이 현재 강의를 하거나 건축가로 일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수업을 듣는 명사 중에 건축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직종에 몸담은 이가 많다. 유학 시절 배운 바에 따르면, 건축은 모든 기술과 예술의 기본이다. 건축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만난 것이기에 이를 이해하면 비즈니스와 여러 가지 사회현상에도 능통할 수 있다. 단지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사업을 위한 영감을 얻으며 재미를 느끼기 위해 수업을 듣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건축은 디자인이나 골조를 이야기하기 전, 공간에 대한 철학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인간이 공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교토 대학교에서 공부한 시간에서 비롯됐다.

최근 완성한 설계 작업이 궁금하다. 제주 애월에 25채의 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설계할 때 더하기보다 빼기에 중심을 두는 편인데, 제주의 분위기와 건축 목적에 충실한 근사한 건축물이 탄생할 것 같다. 그 외에 논현동에 가구 수입 회사 디사모빌리 본사 사옥과 고덕동 래미안힐스테이트의 설계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내장산 근처에 들어설 호텔을 설계 중이다. 또 최근 프로젝트 관리 전문가로서 종로 그랑서울의 오픈 프로젝트를 기획해 런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성균관대학교 공과대학 고분자공학부 교수, 정동준

서울대학교에서 공업화학을 전공하고 교토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 졸업 후삼성종합기술원 기능성고분자재료 파트에서 근무하던 1980년대 당시 반도체 메모리칩을 어떻게 하면 더 크게 만들 수 있을지가 업계의 화두 중 하나였다. 앞으로 분명 한계가 올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바이오 일렉트로닉 연구를 깊이 있게 하고 싶어 유학을 결심했고 1987년부터 6년 넘게 머물며 박사 과정과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마쳤다.

한국의 대학 생활과 비교할 때 교토 대학교만의 특별한 커리큘럼이 있다면? 성적 증명서가 없고, 졸업 증명서만으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학위를 따기가 매우 까다롭다.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선 세계적 학회지에 적어도 1년에 2편의 논문을 실어야 했다. 그런 과정은 학생들 사이의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고 한 분야의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했다.

교토 대학교 출신은 자부심이 큰 것으로 안다. 교수의 90% 이상이 교토 대학교와 동 대학원 출신이다. 대학원생도 대부분 교토 대학교를 졸업했다. 학문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만큼 실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애써 유학 가지 않고 교토 대학교에서 수학하는 분위기다.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니 그 프라이드가 오죽할까.

교토 대학교가 유독 연구 지향적 학풍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녁에 퇴근했다가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연스럽게 다시 학교로 돌아와 늦은 밤까지 연구하는 교수를 종종 봤다. 예전부터 조성된 이런 분위기는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원동력과 자극이 된다. 교토 대학교 교수들은 평생 한 분야만 연구한 사람이다. 만약 ‘개미’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평생 그것만 생각한다.

그곳에서 공부한 생체 재료는 지금 하는 연구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몸속에 안전하게 집어넣어 여러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디바이스와 재료를 연구했다. 그때의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 효율적인 신체기관 이식이 가능하도록 기여했다고 본다. 고분자는 쉽게 말해 세라믹이나 금속처럼 하나의 물질이다. 간이나 신장 등 장기의 일부를 이식하거나 재생이 필요할 때, 떼어낸 조직에 고분자를 활용한 생체 재료를 섞어 크기를 키우고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임해경 (hklim@noblesse.com)
사진 보라(양진석, 정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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