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의 역사를 품은 브로치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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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19

왕실의 역사를 품은 브로치

2024 S/S 시즌 패션 디자이너들이 브로치를 주목했다. 언어의 역할을 대신하는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장신구에 대하여.

@ britishroyaljew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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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여왕이 브로치로 변형한 컬리넌 III·IV 다이아몬드. 훗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물려주었다.
윈저 공이 부인을 위해 스페셜 오더한 까르띠에 팬더 브로치. Archives cartier © cartier


브로치의 전성기는 1920년대 금주법 시대다. 대개 혁명이 일어날 즈음 시대적 배경이 그렇듯, 여성 패션의 역사도 억압된 사회 분위기에서 탈피하고자 한 시기에 큰 발전을 이뤘다. 여성들이 자유와 독립 의지를 피력하기 위한 도구로 패션을 이용하면서 칵테일 링이나 브로치 같은 장신구의 역할이 도드라졌다. 역사상 브로치가 가장 처음 등장한 것은 청동기시대다. 재봉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브로치는 단추 구멍이나 지퍼를 대신할 안전핀 역할로 제작됐다. 봉제하지 않은 천이나 모피를 몸에 걸칠 때 이를 고정하기 위해 일종의 대형 안전핀을 사용한 것이다. 디자인 또한 원형에 고정 고리를 장식한 형태였다. 그 후 철이 보편화되면서 장신구의 세공 기술도 보다 정교하게 발전해나갔다.
기하학적 형태에서 출발한 브로치는 자본과 기술력을 입고 더욱 다채로운 형상을 갖췄다. 그리고 비잔틴시대에 이르러 정교한 세공이나 보석으로 꾸민 화려한 브로치를 선보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브로치의 원형이다. 모든 아름다운 것이 그렇듯 장신구 또한 부의 상징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브로치는 좀 더 특별했다. 기능보다 장식 역할을 하면서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에메랄드·다이아몬드·루비 등 새롭게 발견한 희귀 원석으로 가치를 더해갔고, 아름답고 대담한 보석은 그 자체로 존재감을 뽐내며 착용자의 지위를 암시했다.







@ britishroyaljew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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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대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 브로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수많은 공식 석상에서 이 브로치를 착용했다.


빅토리아시대에 이르러 브로치는 단순히 패션 장신구의 의미를 넘어 본격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로열패밀리는 브로치를 가운 스트랩, 드레스 네크라인, 칼라 등 다양하게 스타일링했는데, 주얼리에 쓰이는 스톤의 컬러와 디자인을 활용해 대중에게 직간접적 메시지를 전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1861년 앨버트 왕자 사망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왕실에서 애도를 표하기 위해 어두운 색 보석을 착용했고, 이는 애도 브로치의 시초가 됐다. 이 밖에도 국가적 행사 같은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은 물론, 로열패밀리의 가보로 전해지며 가치를 더해갔다.
세공할 때 여느 주얼리보다 원석이 많이 필요한 티아라나 브로치는 왕실의 시그너처 아이템으로 여기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이 보석의 원산지인 남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지배한 역사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다이아몬드 중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다이아몬드도 영국 왕실이 소유한 바 있다. 190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미아 광산에서 절단하지 않은 약 3106캐럿 다이아몬드가 발견됐는데, 2년 후 광산 창립자 토머스 컬리넌이 영국 에드워드 7세의 66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에게 선물한 것이다. 에드워드 7세는 당시 최고 다이아몬드 세공사였던 조지프 아셔에게 세공을 맡겼다. 무려 8개월 동안 컬리넌 다이아몬드를 연구한 아셔는 각종 방법을 동원해 실험을 거친 뒤 해머를 사용해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다이아몬드는 큰 다이아몬드 9개, 작은 다이아몬드 96개로 나뉘었다. 각 다이아몬드는 영국 왕실의 대관식 때 사용하는 왕홀 중심에 장식되거나 왕관, 네크리스, 브로치, 링에 세팅됐다. 그중 브로치로 제작한 피스는 컬리넌 III·IV·V·VIII. 보석 마니아로 알려진 메리 여왕은 1911년 자신의 네크리스 펜던트였던 컬리넌 III·IV 다이아몬드를 왕실 공식 보석 세공 회사 캐링턴앤코(Carrington and Co.)에 의뢰해 브로치 세팅으로 바꿔 착용했다. 이 브로치는 훗날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전해지는데, 이런 브로치를 ‘혈통 있는 주얼리’라 부르기도 한다.







컬리넌 V 다이아몬드 브로치. @ britishroyaljewels

엘리자베스 2세는 주얼리를 시의적절하게 활용한 군주로 꼽힌다. 왕실 관습에 따라 공개 석상에서 사견을 드러낼 수 없는 군주들은 브로치를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 여왕은 공무마다 상황에 맞는 의미를 전달하는 브로치를 착용해 지위의 위엄을 지키는 동시에 속마음을 넌지시 드러내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은 엘리자베스를 ‘브로치의 여왕’이라 칭하기도 했다. 여왕이 소유한 브로치는 공식적으로 98개로 알려졌지만, 왕가의 모든 소장품을 공개하지 않는 만큼 더 많은 브로치를 소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브로치는 디자인이 더욱 다채로워졌다. 반클리프 아펠과 데이비드 웹 그리고 베르두라 같은 유명 보석상이 주얼리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모티브를 창조한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반클리프 아펠의 발레리나 클립이다. 1941년 뉴욕에서 첫선을 보인 이 브로치는 발레리나 얼굴에 로즈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하고, 발레복과 토슈즈에 다이아몬드와 컬러 스톤을 장식해 우아함을 드러냈다. 훗날 클로드 아펠이 뉴욕 발레단 공동 창립자인 안무가 조지 발란신과 인연을 맺으면서 발레 주얼리는 지금도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윈저 공작부인이 소장한 까르띠에의 팬더 브로치도 유명하다. 1948년 하이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쟌느 투상이 선보인 팬더 컬렉션이 크게 유행하자 윈저 공이 특별하게 제작을 의뢰한 작품으로, 116캐럿이 넘는 에메랄드 카보숑 위 오닉스 팬더가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다음 해, 공작부인은 152.35캐럿 카보숑 컷 카슈미르 사파이어 위에 앉은 팬더 브로치를 추가 주문하며 컬렉션을 확장했다. 또 1953년 까르띠에가 디자인한 윌리엄슨 다이아몬드 브로치도 유명하다. 이 브로치는 1947년 탄자니아 광산에서 발견된 23.6캐럿의 무결점 핑크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꽃 중앙에 세팅해 제작했다. 광산 소유주였던 캐나다 지질학자 존 토번 윌리엄슨 박사가 본인 소유의 핑크 다이아몬드를 까르띠에에 제작 의뢰하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결혼 축하 선물로 전달한 마스터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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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결혼 축하 선물로 받은 23.6캐럿 무결점 핑크 다이아몬드 세팅 브로치.


1960년대 기성복이 일상화되면서 왼쪽 옷깃에 브로치를 착용하는 관례가 생겼다. 오른손으로 악수를 청하고, 왼쪽에 주얼리를 착용하는 것이 일종의 예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더불어, 브로치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에 흥미를 느낀 패션 디자이너들이 보다 미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브로치는 더욱 보편화됐다. 오스카 드 라 렌타, 크리스챤 디올, 미우치아 프라다 등 유수의 디자이너들은 브로치를 모자나 망토, 스카프 등에 스타일링하며 개성을 드러냈다. 2023년 f/W 시즌 구찌와 생 로랑, 시몬 로샤, 코페르니에 이어 2024년 s/s 시즌 샤넬과 스키아파렐리, 스텔라 매카트니는 쇼에 드라마를 더하는 핵심 요소로 브로치를 활용해 클래식 액세서리의 부활을 알렸다. 우아하면서도 각 디자이너 특유의 예술적 터치를 가미한 패션 하우스의 브로치가 신선하다. 디자이너들의 고민을 통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은 뉴 시즌의 브로치는 지금,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트렌드 중심으로 파고들고 있다. 인간이 발명한 최초의 액세서리이자 왕실 언어, 스파이의 하위 텍스트로 사용된 다채로운 역사는 그만의 신비하면서 은밀한 매력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발레리나를 모티브로 제작한 반클리프 아펠의 발레 플레시유 컬렉션 댄서 클립. ©van cleef & arpels
2024년 S/S 스텔라 매카트니 컬렉션. ©Launchmetrics/spotlight
2024년 S/S 샤넬 컬렉션. ©Launchmetrics/spotlight

 

에디터 최원희(wh@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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