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세상 속 예술가의 역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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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15

혼란한 세상 속 예술가의 역할

테이트 모던에서 열리는 필립 거스턴 회고전.

테이트 모던에서 열리고 있는 [Philip Guston](10.5~2024.2.25) 전시 전경. ©Tate(Larina Fernandes)

예술가를 꿈꾸던 대학생 시절, 끊임없이 되뇐 질문이 있다.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회에서 예술은 무얼 할 수 있을까? 당시에는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한 개인으로서도 여전히 유효한 의문에 대한 답은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열리는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의 대규모 회고전에서 찾았다.
10월 5일에 개막, 내년 2월 25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필립 거스턴의 다양한 접근 방식과 표현 방법뿐 아니라 예술적·철학적·사회적 관심사 등 50년에 걸친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자리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거스턴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함께 1950~1960년대에 활동한 추상화가로, 그중 폴록과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다.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는 전쟁, 인종차별, 폭력, 정치적·사회적 격변을 경험하며 이를 작품으로 승화하고, 불의와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작가다. 그는 격동적인 세상에서 인간의 잔인함을 목도했고, 삶의 복잡함, 부조리, 유머, 고통 등을 회화와 드로잉으로 구현하며 예술가의 책임을 고민했다.
거스턴이 사회적 격변의 시대를 살았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개인사 또한 녹록지 않았다. 그는 1913년에 우크라이나에서 반유대주의 박해를 피해 캐나다로 이주한 유대인 이민자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22년에 그의 가족은 몬트리올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는데, 어린 시절 고물상이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몇 년 후에는 형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등 거스턴은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비극을 직면해야 했다. 성장기에 비극을 겪은 거스턴에게 예술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과 만화를 좋아한 그는 10대에 미국인 예술가 루벤 카디시(Reuben Kadish), 앞서 언급한 폴록을 비롯한 친구들과 유럽 현대미술에 관심을 두었다.
거스턴이 20대였던 1930년대는 미국에서 반이민,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적 신념이 커지며 증오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한 대공황 시기다. 당시 반유대주의가 점차 확산되자 많은 유대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자 이름을 바꿨으며, 거스턴도 본명인 필립 골드스타인(Phillip Goldstein)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필립 거스턴으로 개명하고 활동했다. 당시 거스턴과 친구들은 대규모 벽화를 제작하며 사회적 예술에 적극 참여했고, 멕시코 벽화 예술가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가 결성한 단체 ‘The Bloc of Painters’에 합류하기도 했다. 예술로써 노동자의 권리를 지지하고 미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한 단체로, 반사회적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거스턴의 행보를 여실히 보여준다. 1934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 제작을 의뢰받아 혁명적 성격을 띤 벽화 운동이 활발하던 멕시코 모렐리아로 향했다. 그의 벽화 ‘테러리즘과의 투쟁(The Struggle against Terrorism)’은 고문당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미국의 큐클럭스클랜(Ku Klux Klan, KKK), 유럽의 나치즘 같은 인종적 박해와 폭력에 맞서 저항 정신을 보여주었다.





Couple in Bed, Oil on Canvas, 20.6×24cm, 1977,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Courtesy Hauser & Wirth, ©The Estate of Philip Guston





Female Nude with Easel, Oil on Canvas, 106.1×76.2cm, 1935, Promised gift of Musa Guston Mayer to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ourtesy Hauser & Wirth, ©The Estate of Philip Guston

하지만 1940년대에 들어 거스턴은 공공 미술과 벽화에서 벗어나 이젤 페인팅과 초상화에 집중하며 주로 아이들이 놀거나 싸우는 우화적 장면을 그렸다.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가 남긴 트라우마로 그의 작품은 점점 추상화 성격을 띠었고, 1940년대 후반에는 더욱 극적으로 변화했다. 1948년 로마에 있는 미국 아카데미 펠로십을 통해 처음으로 유럽 여행길에 오르는데, 구상회화에 대한 불만이 쌓여 창작의 위기에 직면한 그는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고, 로마에서 만든 거의 모든 작품을 파괴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이때 살아남은 작은 스케치 몇 점이 이번 전시에 자리한다. 유럽을 여행하며 여러 예술을 경험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거스턴은 더욱 추상화에 몰두하는데, 1950년대에 강렬한 색채와 붓 터치로 명성을 얻으면서 점차 캔버스 전체를 커다란 색면으로 채웠고 로스코, 빌럼 더코닝(Willem de Kooning),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같은 추상 예술가와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후 거스턴은 예술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린다. 1960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고, 2년 후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첫 번째 회고전을 개최하며 당대 최고의 추상화가 대열에 이름을 올리지만, 거스턴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했다. 색채를 대부분 배제하고 흑백 안료만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거친 그는 국가적·세계적 사건의 대격변을 경험하며 다시 한번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때부터 악의 상징으로 후드 쓴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이 인물을 우스꽝스러우면서 평범한 모습으로 표현하며 풍자적으로 힘과 위협에 도전한 것이 특징이다. 더불어 사회가 폭력적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숨기는지,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인종차별적 제도와 기관을 비판하기도 했다.
거스턴은 1970년 뉴욕 말버러 갤러리(Marlborough Gallery)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신작 30여 점을 공개했고, 추상화에서 벗어난 그의 작품은 부정적 평가를 낳았다. 많은 악평에 위축된 그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프레스코화, 로마의 정원과 고대 유적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후드 쓴 인물은 벽돌, 울타리와 어우러져 삼각형의 분홍색 나무 같은 새로운 형태로 변화했다. 이후 10년 동안 뉴욕 우드스톡에서 지내며 작업한 그는 예년만큼 주목받진 못했지만 멈추지 않고 해마다 수백 점의 작품을 제작하며 꾸준히 창작 활동에 매진했다. 이번 회고전에서 시기별 거스턴의 작품 스타일과 변화 과정, 그의 작품이 개인과 정치, 추상과 구상, 유머와 비극 등의 요소를 어떻게 연결했는지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 평생에 걸쳐 사회적 불의, 개인적 고난을 작품에 담아내고 미국과 전 세계의 폭력, 인종차별, 양극화된 정치적 견해에 맞서 예술의 역할을 고민한 진정한 예술가 필립 거스턴의 행보 또한 만날 수 있다.
불의를 목도하고도 개인의 신변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현 사회에 거스턴만큼 자발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예술가가 또 있을까? 그의 전시를 계기로 다시 한번 예술의 존재 의미를 되새긴다.





Bombardment, Oil Paint on Paper, 106.7cm, 1937, Philadelphia Museum of Art Courtesy Hauser & Wirth, ©The Estate of Philip Guston

 

에디터 백아영(프리랜서)
사진 테이트 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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