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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6

김아영의 타임라인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작가가 직접 말하는 수상작과 최근 행보.

믿을 수 없겠지만 지금부터 밝힐 이야기는 단 한 명의 예술가에 관한 것이다. 게다가 모두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먼저, 작품 ‘딜리버리 댄서의 구’로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 아트 어워드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2023’에서 최고상인 골든 니카상을 받았다. 1987년 첫 개최 이후 최초로 골든 니카상을 거머쥔 한국인이다. 그리고 같은 작품이 10월 일본에서 열린 실험 영화제 ‘이미지 포럼 페스티벌’에서 테라야마 슈지상을 수상, 11월 일본 전역에서 순회 상영했다. 이어 ‘프리즈 런던 2023’ 기간에는 영국 테이트에서 작품 2점을 소장하며 관심을 모았다. 지금까지 나열한 이야기 모두 작가 김아영의 성과다. 정작 그 자신은 작품을 구상, 제작하는 과정에서 “참여자들과의 소통, 신뢰가 충분한지 늘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하는, 전 세계의 부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작가가 직접 말하는 수상작과 최근 행보.





최근 저명한 예술상을 연달아 수상한 김아영 작가.

김아영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아영 작가는 한국에서 시각디자인을, 영국에서 사진과 순수 미술을 전공했다. 영상, VR, 텍스트, 퍼포먼스, 게임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아시안 아트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등에 참여했으며 팔레 드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갤러리현대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다시 돌아온 저녁 피크 타임(Evening Peak Time is Back)’(2022) 갤러리현대 〈문법과 마법〉전 설치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딜리버리 댄서의 구(Delivery Dancer’s Sphere)’ (2022) 갤러리현대 〈문법과 마법〉전 설치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축하할 일이 많아요.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 뉴 애니메이션 아트(New Animation Art) 부문 최고상인 골든 니카상과 이미지 포럼 페스티벌(Image Forum Festival) 테라야마 슈지상 수상에, ‘한국인 최초 골든 니카상 수상자’라는 타이틀도 얻었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많이 놀라긴 했지만 제 작업에 참여하고 지지해준 분들이 바로 떠올랐어요. 이렇게나마 보답할 수 있어서 기뻤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하고요. 이런 큰 상을 받은 건 결국 지난한 작업 과정이 꽤 괜찮은 시도였다고 공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고, 공동의 노력에 대한 헌사이기도 해서 옆에서 같이 힘써준 분들에게 고맙다는 소회를 밝힐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기나긴 고군분투 끝에 잠시 숨 고를 상황을 맞이했다고 할까요? 다시 힘내서 또 전진하려 합니다.
수상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는 최근 테이트에 소장되기도 했죠. 작품의 주축인 인물 에른스트 모(Ernst Mo)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약 25분 길이 영상으로, 가상의 테크노-미래적 서울을 배경으로 한 픽션이에요. 작품 속 세계의 지배적 배달 플랫폼이 ‘딜리버리 댄서’사인데, 이곳 소속으로 쏜살같이 질주하는 최고 레벨 여성 배달 라이더 에른스트 모가 주인공이에요. 이름은 ‘monster’의 철자를 바꿔서 만들었고요. 에른스트 모는 애플리케이션의 지령에 따라 의뭉스러운 아이템을 운반해요.
그 작품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언젠가부터 에른스트 모의 눈앞에 때때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엔 스톰(En Storm, 역시 monster의 철자를 바꾼 이름)이 나타나요. 그럴 때마다 시간이 자꾸만 지연되고 배달이 늦어져 페널티가 쌓여요. 하지만 라이더 업무가 외로운 일이니만큼 에른스트 모는 알 수 없는 상대인 엔 스톰에게 호기심, 친밀감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느껴요. 애정, 반감, 거부, 분노, 살의 같은 것이죠. 짙은 욕망을 밑바탕에 두고도, 만나기만 하면 배달이 지연되니 속도가 곧 전부인 이 업계(게다가 서울!)에서 에른스트 모의 완벽한 세계는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왜 배달이에요? 팬데믹 시기에 거의 매일 배달 음식을 주문했거든요. 그런 제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이에요. 우리는 음식 봉투를 문 앞에 두고 쏜살같이 사라지는 수많은 배달 라이더를 거의 볼 수 없잖아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 문득 기이했어요. 보이지 않는 노동이라고 할까요. (실제로 이렇게 보이지 않는 플랫폼 노동 종사자들을 고스트 워커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들의 삶에 궁금증을 느끼고 베테랑 여성 배달 라이더를 만나 심층 인터뷰를 했어요. 바이크 뒷좌석에 앉아 배달 체험도 했죠. 배달 라이더야말로 한동안 텅 빈 서울 거리를 누빈 가장 기민한 주체잖아요. 바람을 가르며 서울 곳곳을 바이크로 종횡무진 누빈 경험은 팬데믹 시기에 큰 해방감을 줬어요.





‘딜리버리 댄서의 구’ 영상 스틸(2022). Courtesy of the Artist

작품에서 ‘배달’과 ‘댄스’를 연결 지은 점도 재미있어요. 인터뷰한 배달 라이더가 누빈 서울 시내 누적 경로 기록과 딜리버리 앱 화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어요. 거미줄보다 복잡한, 수많은 선과 꼭짓점으로 엉킨 끝없는 미로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시공간의 미로에 갇혀 탈출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떠올렸죠. 돌파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빛의 속도로 질주하지만 도착지에는 영원히 다다를 수 없어요. 이쪽저쪽으로 쉴 새 없이 질주하는 모습이 마치 위태롭고 부조리한 댄스 같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빠른 속도로 달리기를 종용하는 세상에 서 있기 위한 춤이랄까요. 엘레아의 제논(Zeno of Elea)의 역설적 개념을 응용했어요. 그는 조금 일찍 출발한 거북이와 뒤따르는 아킬레우스가 달리기 경주를 할 때, 거북이와 아킬레우스 사이 거리는 조금씩 좁혀지면서도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영원히 추월할 수 없다는 역설을 말했죠. 또 이 이야기는 시공간과 관계있는 다양한 물리학 법칙과 위상수학적 사례, 시간과 미로에 대한 탐구 과정을 거쳐 만들었어요. 속도와 생산물에 관해서는 최적화를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면모를 관찰한 결과이기도 하고요.
테이트에서 여성 퀴어와 GL(Girls’ Love) 서브컬처에 관한 작품 ‘다시 돌아온 저녁 피크 타임’(2022)도 함께 소장했죠. 그 작품은 ‘지독하게 얽힌’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의 세 가지 존재 방식을 보여주는 월페이퍼예요. 전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다양한 여성 바이커를 인터뷰하던 중 1172라는 웹툰 작가를 우연히 만났는데, 마침 전에 그 작가의 GL 작품을 본 적이 있거든요. 자연스레 협업으로 이어졌죠.
GL을 소재로, 라이더인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한 점도 그렇고, 작품에서 여성 서사가 눈에 띄어요. 저는 GL의 오랜 팬인데, 웹소설과 웹툰 등 가리지 않고 섭렵하는 편입니다.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시작하면서 반드시 GL 코드를 작업의 기초로 삼거나 가능하다면 GL 창작자들과 협업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제 작업은 플랫폼 노동,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 테크노 불안정성(테크노 스트레스) 같은 데서 출발했지만, GL 코드 역시 제 작업의 출발점인 셈이죠. 예술계에서 퀴어성이 가시화돼도 여전히 GL은 서브컬처 중에서도 마이너한 영역에 속해요. 특히 현대미술계에서 여성 퀴어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이하리만치 잘 들리지 않는 편이죠. 전 여기에 큰 불만과 함께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고, GL의 목소리를 주류 미술계에 더해야 한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어요. 여러 상을 받은 것으로 이를 가시화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올해 제 작품을 소장하겠다고 발표한 테이트 측이 작품에 “GL이라 불리는 여성 퀴어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는데, 그 순간 정말 기뻤어요.





‘약정(Stipulation)’(2022) 갤러리현대 〈문법과 마법〉전 설치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장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 익숙하면서도 미래적인 서울을 보여준 것처럼, 특정 도시나 장소에서 영감을 얻나요? 작품에서 공간과 장소는 어떤 역할을 해요? 작업 중 거주하는 장소와 도시는 제 작품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특히 서울에 대한 제 감정이 강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에요. 팬데믹 시기에 약 3년간 한국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처음으로 이 도시를 현미경으로 보듯 미시적으로 들여다봤어요. 속도에 대한 끝없는 종용 속 숨 막힐 듯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제가 속한 도시를 향한 애정이 자라났는데, 이런 걸 뒤범벅해서 작품에 다양한 지명으로 등장시켰어요. 동십자각, 사직터널, 남산2호터널, 가디단, 도림천, 두무개길, 용비교 등. 일부러 그 지명을 대사에 넣고 싶었어요.
아이디어와 내러티브가 항상 흥미로워요. 그동안 참 다양한 주제를 파고들었죠.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서 불현듯 작업의 실마리가 떠오르기 때문에 항상 메모를 해요. 미래 작업을 위한 씨앗이랄까요. 관심사도 다양해서 두서없이 두루두루 적어둡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체화하면 더 깊이 조사하고, 인터뷰하고, 전시를 상상하고, 이야기로 풀어낼 장면을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하고, 숙성하고, 글과 스크립트를 써요. 그런 다음 프로덕션 단계로 들어가죠. 사실 이러한 과정의 가장 사치스러운 점은 궁금한 것, 알고 싶은 것을 거의 무한히 파고들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시각예술 영역에서 픽션을 만드는 작가다 보니 글을 많이 읽고, 실제로 소설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역시 차곡차곡 쌓은 인풋이 흥미로운 결과물로 탄생했네요. 그럼 기술 발전은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영상, VR, 텍스트, 퍼포먼스, 게임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데, 어떻게 신기술을 받아들이고 작품에 적용하는지 궁금해요. 기술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때로는 경도되기도 하지만, 기술의 보이지 않는 함의에 궁금증을 느끼곤 해요. 기술 발전에 따라 늘 배제되는 존재가 있어요. 복잡한 기술의 복합체인 플랫폼과 그 세계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이런 기술은 너무 복잡하고 거대한 나머지 개별자들이 실체나 작동 방식을 헤아릴 수 없죠. 그렇게 대부분이 테크노 프리케리아트(precariat), 즉 기술에 대해 불안정한 계급이 됩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기술의 타자가 된다는 말인데, 이런 데 관심이 있어요. 물론 다른 데도 관심이 많고요. 하지만 제가 작업에 활용하는 기술은 훨씬 단편적이에요. 거대 자본이 개입하는 것도 아니고, 널리 상용화된 기술 중 일부에 호기심을 갖고 조금씩 작업에 접목하는 정도예요.
지금은 ‘딜리버리 댄서의 구’ 속편을 제작 중이라고요. 많은 전시도 앞두고 있을 텐데, 그동안 눈에 띄는 행보를 보여준 만큼 앞으로 나아갈 길도 중요한 것 같아요. 2024년 1월 홍콩 M+ 뮤지엄에서 제 여러 작품을 모은 솔로 상영이 있고, 5월쯤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도 솔로 상영이 있어요. 속편은 8월에 멜버른의 호주영상센터(Australian Centre for the Moving Image, ACMI)에서 선보일 새 프로젝트로 준비 중인데, 1편에서 서울을 배경으로 내비게이션의 미로에 갇혔던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의 세계를 확장해 더 많은 가능 세계의 우주를 펼쳐낼 예정입니다. 주인공이 각성해 더욱 큰 우주를 만난다고 할까요. 각기 다른 시간 체계와 우주론이 공존하는 세계를 오가며 서로를 갈망하고, 반목하고, 스쳐 지나가는 두 존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세요.





‘고스트 댄서 A(Ghost Dancers A)’(2022) 갤러리현대 〈문법과 마법〉전 설치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에디터 백아영(프리랜서)
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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