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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7

역사 속 빈칸을 채우는 여정

2세기에 걸쳐 뮌헨 아트 신을 견인한 쿤스트페어아인 뮌헨.

2019년에 열린 ‘아카데미 디너’ 현장. Courtesy of Kunstverein München e.V., Photo by Margarita Platis

올해로 창립 200주년을 맞은 쿤스트페어아인 뮌헨 (Kunstverein München, 뮌헨예술협회)이 그동안 쌓아 올린 아카이브를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하고자 수십 년 동안 지하에 방치한 기록을 들춰냈다. 기록 상자를 연 시발점은 2021년에 열린 전시 [No River to Cross]이다. 특정 장소의 역사를 통해 사회적·정치적 권력구조를 노출하고 질문을 던지는 작가 베아 슐링엘호프 (Bea Schlingelhoff)는 당시 이 전시에서 쿤스트페어아인 뮌헨이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에 동조한 과거를 지적하고, 정관 개정을 제안했다. 이곳의 디렉터 모린 디트리히(Maurin Dietrich)와 큐레이터 팀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해 본격적으로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마련, 숨어 있던 아카이브를 다각도로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월 리처드 프레이터(Richard Frater)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5월부터 8월까지 프로젝트의 중추 역할을 할 아카이브 전시 [The Archive As…]가 열리고, 9월 9일부터 11월 19일까지는 노르 아부아라페(Noor Abuarafeh)의 개인전, 12월에는 ‘올해의 판매작’을 뜻하는 [Jahresgaben 2023]전 등으로 한 해를 알차게 꾸려나갈 예정이다. 전시뿐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와 종합 출판물도 준비한다.





2002년 ‘교환과 변형’ 전시 설치 전경. Courtesy of Kunstverein München e.V., Photo by Philip Metz

이는 쿤스트페어아인 뮌헨의 과거를 짚어보고 새로운 미래를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자리가 될 듯하다. 2020년 예술가 율리안 괴테(Julian Göthe)의 연구를 바탕으로 오픈한 사료의 보존과 검토, 논의가 함께 이루어지는 아카이브 공간에서 올해도 다양한 전시와 공명하는 자료를 제시할 예정이다. 또 아키비스트 직책을 신설하고, 사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에도 착수하는 등 역사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새로운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전에도 아카이브 전시는 있었지만, 묻어두고 싶은 발자취를 조명한다는 점이 이번 프로젝트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회원 1900여 명이 함께하는 쿤스트페어아인 뮌헨은 독일의 300여 개 예술협회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오래된 곳에 속한다. 19세기 초 신흥 부르주아들이 예술을 향유하고자 조직한 예술협회는 대중의 중요한 예술적 창구였다. 그중에서도 뮌헨에서 최초로 동시대 예술을 다룬 쿤스트페어아인 뮌헨은 당시 왕세자 루트비히 I(Ludwig I)가 주요 후원자로 나설 만큼 주목받았고, 19세기 후반 상업 갤러리가 성장할 때까지 뮌헨에서 유일하게 미술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기금 대부분을 회비와 개인 후원으로 충당하며 경제적·정치적 독립을 확보한 기획으로 호평을 얻어 진보적이고 국제적인 예술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2021년 베아 슐링엘호프의 [건널 수 없는 강(No River to Cross)] 전시 일부.
Courtesy of the Aritst and Kunstverein München e.V., Photo by Constanza Meléndez

그러나 200년이 흐르는 동안 기록을 누락하거나 서로 모순된 자료를 발견하는 시기를 거치기도 했다. [The Archive As…]는 이런 기록을 공개하는 전시다. 그 기록의 면면을 살펴보면, 1936년 쿤스트페어아인 뮌헨의 보고서에는 “우리는 독일 예술을 육성하고자 제3제국이 세운 원칙에 대한 충성을 기꺼이 서약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라는 내용이 있다. 같은 해에 아리아인이 아닌 사람을 회원 명단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모린 디트리히는 『The Art Newspaper』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대인 회원 명단을 여전히 찾는 중이다”라며, “누락된 명단을 다른 기관의 기록과 교차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1945년까지 협회를 이끈 에르빈 픽시스(Erwin Pixis)는 1946년 사망 직전에 협회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를 직접 작성해 발표했다. 여기에 그는 협회가 저항적이고 민주적인 단체였다고 묘사했지만, 이는 1936년 기관의 규약 및 기조는 물론 앞서 언급한 사례와도 모순된다. 1846년 롤라 몬테즈(Lola Montez)라는 여성의 사례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몬테즈는 유명 댄서이자 배우였지만 협회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입 신청을 거부했다. 하지만 추후 국왕 루트비히 1세가 몬테즈를 협회 회원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하자 신청서를 수리했다. 몬테즈가 루트비히 1세의 정부였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왕권과 남성에게 친화적이던 기관의 모습이 드러난다. 1829년부터 협회가 여성의 가입을 허용하긴 했지만 1902년까지 여성들은 회원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다. 전운이 걷힌 1970년 이후에는 체제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프로젝트도 선보인다. 뮌헨 예술 아카데미 학생들이 나치 치하에서 전성기를 누린 후 1970년대까지 교수로 재직한 예술가 헤르만 카스파어(Hermann Kaspar)의 행적을 조사했고, 이를 근거로 과거를 단죄하지 못하는 학계의 제도적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자 바이에른 문화부는 학생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한 협회의 지원금을 삭감하겠다고 위협했고, 해당 전시를 강제로 조기에 폐막시켰다.





뮌헨의 예술협회 건물 재건 프로젝트에 사용된 삽화 [Friedrich Thiersch, Skylight-Hall (perspective)](1889–99).
Courtesy of Architecture Museum of the TUM

1980년대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국제적 예술가를 소개하고 예술적 담론을 펼치는 시대가 열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우위 인종격리정책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직접 언급한 1985년 전시 [Nothing Will Separate Us] 처럼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하고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등 유럽 각지의 경향도 소개했다.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줄리언 슈나벨(Julian Schnabel) 같은 작가를 모아 그룹전을 열고 독일과 뮌헨시의 공시성을 주제로 한 전시 [The Local Contemporary], ‘독일의 거실’을 의미하는 [Das Deutsche Wohnzimmer] 등도 선보였다. 회원들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소장할 수 있도록 판매를 촉진하는 전시 [올해의 판매작]은 1979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모린 디트리히 디렉터는 말한다. 역사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그 자체로 쿤스트페어아인 뮌헨에 미래의 방향타로 작용한다. 이 담대한 자아 성찰과 고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예술 기관으로서 과거를 있는 그대로 진솔하고 치열하게 추적하는 것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학문적 자산이자 자존을 획득하는 일이 아닐까? 뮌헨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쿤스트페어아인 뮌헨의 전시장을 꼭 들러보길 권한다.

 

에디터 백아영
이미솔(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쿤스트페어아인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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