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두, 한 예술가로부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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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6

정연두, 한 예술가로부터

정연두는 잊힌 사람들과 역사가 간과한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Here and Elsewhere] 작품과 정연두 작가.

정연두
정연두는 1969년 진주 태생 작가로,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영국 골드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상하이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퍼포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등 다양한 국제 행사의 작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DMZ 극장-상승극장]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공연 및 설치 전경, 2021, 팔레트, LED조명, 전기장치, 드라이아이스머신, 곡괭이, 자바라, 60×120×100cm. 사진 제공. 정연두 스튜디오

학창 시절, 에디터에게 정연두 작가는 말 그대로 스타였다. 당시 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가족사진을 찍은 작품 〈상록타워〉(2001)가 어찌나 흥미롭게 다가오던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그는 활동 초기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제2의 백남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2007년에는 30대 작가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뉴욕 현대미술관이 백남준 이후 최초로 소장한 한국 작가의 비디오 작품이 정연두의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Documentary Nostalgia)〉(2007)였다. 요즘이야 자기 홍보에 능해 셀러브리티 못지않은 작가가 많지만 정연두는 오로지 진실되고 흥미로운 작업만으로 그 반열에 오른 작가다. 그는 하고 싶은 작업에 몰두할 뿐 이런 타이틀은 개의치 않는 듯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중진 작가라면 꼭 거쳐 가는 ‘MMCA 현대차 시리즈’의 열 번째 주인공으로서 10주년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초대된 소감이 궁금했다. “그동안 진행한 작업을 관람객에게 정리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제 연구와 관심사가 어디서 왔고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어떤 맥락으로 작업을 진행하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작업을 멈춰본 적이 없거든요.”





[Here and Elsewhere-Catherine], 2016, 멀티 레이어드 포토 콜라주, 사운드, 62×98×13cm, Ed.1/3 ©안지섭





[Here and Elsewhere-Okyung], 2016, 멀티 레이어드 포토 콜라주, 사운드, 62×98×13cm, Ed.1/3 ©안지섭

이번 전시에 앞서 202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원예술 프로젝트 《DMZ 극장》을 선보였다. “2017년부터 햇수로 3년 동안 DMZ에 있는 13개 전망대를 쉰 번 넘게 다녔어요. 전망대에 깃든 DMZ의 서사나 전쟁에 얽힌 옛이야기를 조사했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코로나19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엄격한 자가격리 때문에 극소수의 관람객만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더군요.” 장담컨대 이번 전시에선 그 아쉬움이 풀릴 것이다. 요즘 아트 러버들은 전시와 작품을 보기 위해 기나긴 웨이팅을 감내하고 오픈런까지 할 정도로 열정적이니까. 게다가 그의 작품은 사람을 묘하게 잡아끄는 힘이 있다.
DMZ에서 두문불출하기 전에는 해외 레지던시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2015년에는 관광지와는 떨어진 파리 남서쪽 발드마른의 현대미술관(Musée d’Art Contemporain du Val-de-Marne, MAC VAL)에서 지냈다. “발드마른엔 아프리카나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주민과 관련 커뮤니티가 많아요. 파리 하면 다들 관광지만 떠올리지만, 한쪽에는 제3세계 사람들로 이뤄진 세상이 존재한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또 여기서 배를 타고 탈출하거나 이주하는 난민, 즉 보트피플(boat people)의 이야기도 접했죠. 베트남전쟁 이후 도망쳐 온 난민들이 토르시라는 지역에 정착해 커뮤니티를 형성했대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작가로서 점점 궁금증이 커졌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거나 무작정 말을 걸었다. 이런 경험을 풀어낸 작품이 〈여기와 저기 사이(Here and Elsewhere)〉(2016)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헤맬 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어요. ‘이곳에 오기 전, 당신은 미래의 삶이 어떨 거라고 상상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이 질문의 핵심은 떠나기 전 상황을 기억해보란 거지만, 그 사람들은 지금 이곳에서 자신의 삶이 어떤지 이미 알고 있잖아요. 결국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미래를 묻는 질문이죠. 그들이 답을 알고 있다고 해도요.” 그중 8명의 이야기가 작품 8점으로 탄생했다. “카트린이라는 여성 얘기를 해볼까요. 열다섯 살에 아버지가 나이 든 남자랑 억지로 결혼시키려 해서 도망쳤대요. 50세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죠. 프랑스에선 식모살이를 하며 주말마다 밖에 나왔는데, 난생처음 메트로를 타봐서 너무 행복했대요. 이 경험담을 듣고 메트로 역에서 촬영했습니다. 여성이 억압받는 사회, 아버지와의 갈등, 가족이라는 존재 등을 담았어요.”
옥경이라는 인물과는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에서 촬영했다. 옥경은 파리에 오면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고. “해가 긴 여름의 아름다운 석양을 담고 싶은데 정원은 저녁 6시까지만 개방하거든요. 아쉬운 마음에 작업을 설명한 편지를 보냈는데 입장을 허가해줬죠. 아무도 없는 모네의 정원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경찰을 꿈꾼 아프리카인 이야기도 담았어요. 아침엔 경찰 시험 합격자 명단에 자기 이름이 있었는데 오후에 보니까 없더래요. 부정부패가 너무 심해 결국 꿈을 접고 가드로 일하는 그와는 프랑스 경찰학교에서 촬영했어요. 작품 제목처럼 고향에도 속할 수 없고 현실에선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과 경계선을 다루고 싶었어요.”





[높은 굽을 신은 소녀]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18, 2채널 비디오, Full HD, 컬러, 사운드, 50분 46초. 사진 제공. 정연두 스튜디오





[높은 굽을 신은 소녀]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2018, 2채널 비디오, Full HD, 컬러, 사운드, 50분 46초. 사진 제공. 정연두 스튜디오

작품에선 이들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흘러나온다. 이민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다. 그는 이를 몸소 실천하듯 작품 속 인물과 나눈 대화를 세세하게 기억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현장을 함께 찾아 이를 예술로 승화하는 것. 작가가 평범한 사람들의 현재 모습과 그들이 꿈을 실현한 이후의 모습을 촬영해 보여준 작품 〈내 사랑 지니〉(2001–2005)가 떠올랐다.
이번엔 그 작품처럼 꿈을 이뤄주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모든 과정에서 어쩌면 그들은 큰 위로를 받았을지 모른다. 그의 작업에선 이런 소통과 공감의 과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내 사랑 지니〉도 마찬가지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면서 시작하잖아요. 예술에 빗대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거예요. 예술은 굉장히 좋은 도구예요. 한국 밖에선 소통하기 어려울 때도 많지만 방법을 같이 찾아나가는 과정도 중요하니까요.”
정연두의 작품을 보다 보면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사람들이 난생처음 보는 타인에게 선뜻 자신의 과거를 공유하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사적 공간을 열어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지만 의외로 예술이라는 이름을 달면 이해해주곤 해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호의적이고 호기심이 많거든요. 제 작품은 주변이나 기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해낼 수 있었죠. 작가만 있다고 작품이 되지는 않아요. 제 작품은 결국 사람들과 관람객이 모여 완성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의 구심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한편 프랑스에 다녀온 후 그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동양인 작가가 파리 외곽의 이주민에게 공감을 말하는 것이 이질적으로 다가오더군요. 가까운 곳을 살폈죠. 한국에 살면서 왜 탈북민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바로 탈북민 조기축구회를 찾아갔어요. 그들의 삶과 경험에서 문화적 차이를 느꼈고, 그 경계선에 대한 궁금증이 저를 DMZ로 이끌었죠.”
앞서 언급한 《DMZ 극장》 얘기다. “처음엔 제약 사항이 너무 많았어요. 국방부에 직접 편지를 써서 전망대 열세 곳에 다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죠. 강화도에 있는 평화전망대부터 승리, 도라, 상승, 통일 같은 이데올로기적 이름이 붙은 전망대를 계절마다 방문해 사진을 찍었어요.” 이 사진을 바탕으로 군인 인터뷰, 전망대 주변에 얽힌 설화, 전쟁과 분단에 관한 일화 등을 수집해 전시와 퍼포먼스로 재구성, 각 작품마다 전망대의 이름을 따서 평화극장, 통일극장 등으로 제목을 붙였다. 전망대의 안보 교육용 객석이 극장처럼 보였기 때문. 그 뒤에도 작가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이야기를 작품에 담았다. 2017년 홍콩의 Mill6 CHAT 레지던시에서 마주한 경험은 〈높은 굽을 신은 소녀〉(2018)라는 영상 작품으로 탄생했다. “1948년에 중국에서 홍콩으로 밀입국한 할머니들 이야기예요. 방직공장이 있던 지역인데, 커다란 천에 ‘한국 예술가가 방직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모읍니다’라는 문구를 한자로 직접 수를 놓으니 노인들이 다가와 도와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더군요. 그중 키가 작은 한 할머니의 사례를 영상으로 만들었어요.”





〈고전과 신작〉 도쿄도 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18, 3채널 비디오, Full HD, 컬러, 사운드, 43분 43초. 사진 제공. 정연두 스튜디오





〈소음 사중주〉 대만현대문화실험장(C-Lab) 전시 전경, 2019, 4채널 비디오, Full HD, 컬러, 4채널 사운드, 29분 12초. 사진 제공. 정연두 스튜디오

3채널 영상 〈고전과 신작(Classic and New)〉(2018)에는 1945년 패망 전 도쿄 대공습으로 폐허가 된 시라카와 지역에 사는 노인,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어린이, 전쟁 이야기를 하는 전통 라쿠고(일본 전통 만담) 장인을 각각 담았다. 장면이 교차하며 만들어나가는 관계성도 작품의 주된 요소다.
다음 해에 제작한 〈소음 사중주(Noise Quartet)〉(2019)도 빼놓을 수 없다. 광주민주화운동과 비슷한 대만의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에 연루돼 감옥에 간 노인,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한 한국인, 홍콩 시위에 참여한 학생, 오키나와에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주목하는 사키마 미술관 관장을 인터뷰해 4개의 영상에 담았다. 그리고 장영규 음악감독과 함께 네 지역에서 잡음과 소음을 수집해 음악을 만들었고, 영상 안에서 각각의 스토리텔링을 진행하다 보면 소리가 모여 합주가 된다. 앞서 언급한 모든 작품은 비슷한 맥락으로 연결된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 관한 관심이죠. 저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제 방식으로 이해한 다음 공감할 수 있는 면모를 찾아 작품화해요.” 이번 MMCA 현대차 시리즈에서 선보일 신작 〈백 년 여행기〉도 마찬가지다. “1905년에 일포드호라는 배를 타고 멕시코로 이주한 1003명의 대한제국인 이야기예요. 당시 희망을 갖고 타지로 향했다가 에네켄 밭에 끌려가 노예 계약을 한 사람들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대한제국 여권은 쓸모없어졌고 결국 돌아갈 곳도 사라졌죠. 이제는 외모도 한국인과 많이 달라졌고요. 우리는 100년 전에 멕시코라는 먼 나라에 정착한 외국인 모습을 한 한국인에게는 관심이 없죠. 1988년에 처음 이 사건을 파고든 이자경이라는 역사가이자 극작가의 책을 접하면서 적극적으로 작업을 발전시켰어요.”
물론 사상의 한계는 있겠지만 그는 자신과 무관한 사람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 수 있을지, 예술이 어떤 상상력을 자극하고 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번 전시를 보면 이국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매력적일 수도 있지만 익숙하지 않겠죠. 그 낯섦에 질문을 던져서 ‘공감’을 통해 상상력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작품 러닝타임도 길고 생소한 주제를 파고드는 게 저에게는 챌린지나 다름없지만, 단 한 명이라도 작품을 관심 있게 보고 공감한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정연두는 앞으로도 이 모든 주제를 계속 탐구하고 이어갈 생각이다. 궁극적으로 그는 단순히 ‘이민자’를 주목하는 것 이상으로 상상력과 공감, 타인과의 관계 등을 파고드는 작가다.
스스로 “어떻게 상상력을 확장할지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밝힌 그는 올 하반기에 열릴 필라델피아 미술관 전시와 향후 오픈할 국제갤러리 개인전도 준비 중이다. 이번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 그의 작업 전반에 걸쳐 흩어져 있는 지점에서 맥락을 발견하기를, 상상력을 확장해 작품 속 개인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를, 그래서 그의 작품이 소통과 교감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위쪽 〈고전과 신작〉 도쿄도 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18, 3채널 비디오, Full HD, 컬러, 사운드, 43분 43초. 사진 제공. 정연두 스튜디오
아래쪽 〈소음 사중주〉 대만현대문화실험장 (C-Lab) 전시 전경, 2019, 4채널 비디오, Full HD, 컬러, 4채널 사운드, 29분 12초. 사진 제공. 정연두 스튜디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사진 제공 작가,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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