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음악제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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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08

자연을 닮은 음악제

평창대관령음악제 제4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첼리스트 양성원. 올여름 그가 펼쳐낼 페스티벌에는 ‘자연’이 담겼다.

설 연휴에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직을 제안받고 많은 고민 끝에 수락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점이 고민되셨나요? 연주자이자 교육자로, 본 베토벤 페스티벌과 페스티벌 오원의 예술감독으로도 활약하고 계시니 스케줄 조율이 가장 문제였을 것 같긴 합니다. 바쁜 건 괜찮습니다.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해요. 그보다는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지난 20년간 훌륭한 감독과 연주자들이 멋진 무대를 만들어왔으니, 예술감독을 맡았을 때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머릿속에 명료하게 그려내야 했죠. 평창대관령음악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부터 이것을 국내외로 어떻게 포지셔닝할지, 멀리서 오는 분들과 도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이미 좋은 페스티벌이기에 뭔가를 혁신하기보다는, 조금씩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는 방향을 설정했어요. 예컨대 ‘라이브 프롬 평창’이라는 이름으로 훌륭한 연주를 음원에 담아 CD로 만들고, 스마트폰에서도 들을 수 있게 하는 등. 관객과 연주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아티스트와의 커피’, ‘수학자 김민형 교수의 렉처’, ‘와인 아카데미’ 등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 이상의 다채로운 부대 행사도 준비 중입니다.
평창대관령음악제가 감독님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는지 궁금합니다. 감독님은 해외를 오가며 세계 유수 음악제를 경험하기도 했고요. 통영국제음악제와 함께 국내 최고 클래식 페스티벌이죠. 둘 다 자연과 함께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통영이 바다라면 평창은 산맥입니다. 해외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평창 같은 환경을 갖춘 음악제는 잘 없어요. 어디서 음식을 먹는지에 따라 풍미가 다르게 느껴지듯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녹음이 우거진 풍경 아래 클래식 음악을 듣는 건 또 다른 경험입니다.
평창의 장소성을 고려해 이번 음악제 주제를 ‘자연(nature)’으로 정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맞아요. 평창과 가장 어울리면서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잡았습니다. 슈만의 ‘숲의 정경’, 슈베르트의 ‘송어’ 등 모든 공연에 자연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은 곡이 있습니다. 개막 공연에서는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이 울려 퍼질 예정이에요. 산맥과 잘 어울리는 악기인 호른이 여러 대 나오니 기대해도 좋습니다. 덧붙이면, 이런 페스티벌은 작은 사회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사회란 다른 이와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고, 그 개념을 페스티벌에 다시 대입하면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메시지를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번 음악제에 우크라이나의 키이우 비르투오시를 초청하고, 일본 연주자와 한국 연주자가 화합하는 무대를 구성한 건 그런 이유이기도 하죠. 이러한 조화 역시 큰 개념의 자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네마 콘서트 형식으로 올해 처음 선보이는 ‘찾아가는 가족음악회’도 보탬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퍼커셔니스트 브뤼노 데무이에르, 아코디어니스트 파스칼 팔리스코가 프랑스 무성영화를 배경으로 재미있고 예술적인 감각으로 구성한 음악을 선보입니다. 사실,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약간의 공부가 필요해요. 음악제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곡을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을 위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을 위한 음악제로 남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런 프로그램으로 음악과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되면, 클래식 음악을 향한 첫걸음을 평창대관령음악제와 함께한다면 더없이 만족합니다.
오랜 기간 연세대학교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계신 만큼 교육 프로그램 역시 기대됩니다. 올해 ‘대관령 아카데미’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편한 것으로 아는데,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실내악팀을 대상으로 새로 선보이는 ‘멘토십 프로그램’이 있어요. 악기 다루는 스킬을 배우기보다는 어떻게 음악을 바라보고 표현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단기적 관점에서 콩쿠르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알면 알수록 넓고 깊기에 이런 접근이 필요해요. 50년째 첼로를 만지는 저도 명곡에서 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배우니까요. 그래서 클래식이기도 하고요.(웃음) 또 작년 여름부터 지휘자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음악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음악에 관한 제 생각을 연주자들과 나누는 일이 즐겁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죠. 같은 레퍼토리로 처음 앨범을 선보인 지 15년 만에요. 기자간담회 당시 “젊을 때 음악은 연습의 결과물이지만, 40대부터는 매일 살아온 삶의 결과물이 음악이 된다”는 말씀이 유독 기억에 남았습니다. 젊을 때는 빵빵하게 소리를 내는 데 신경을 많이 썼죠. 그래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당시 연주를 들어보면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제 나름대로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소리라는 색채 속 무수히 많은 빛깔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곡이라도 지금 연주한 것이 한층 깊고, 삶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영역을 확장하는 건, 음악에서 여전히 새로운 뭔가를 발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대 때와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음악이 흥미롭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시도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어요. 필연적으로 이상을 좇는 직업이다 보니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과거와 달리 이제는 금세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죠. 그 용기는 다름 아닌 인생이 담긴 불멸의 명곡에서 얻고요. 그런 음악의 깊이와 평화를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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