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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4

내 작품만을 위한 집, 프라이빗 수장고

아트 컬렉터들의 워너비 모델인 노재명·박소현 부부가 신촌에 그들의 컬렉션 수장고를 열었다

David Altmejd, The Portal Architect, Mixed Media, 117×43x49cm, 2020
Pam Evelyn, Break Water, Oil on linen, 250×200cm, 2021 작품 보관용 랙을 설치한 수장고 1층 전경.





작품 보관용 랙을 설치한 수장고 1층 전경.

처음 소장품을 구경하러 갔을 때 방문 기념으로 미니어처 베어브릭을 하나 뽑아보라고 하셨잖아요. 기성세대와는 달리 자신의 컬렉션을 브랜드화하고 이를 통한 교류를 즐기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노재명·박소현 부부가 생각하는 아트 컬렉팅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아트 토이와 프린트, 아트 에디션을 수집하며 컬렉팅을 시작했어요. 제가 아내를 만날 때 매일 아트 토이를 선물한 사연은 알 만한 분은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언젠가부터 아트는 저희 부부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 되었어요. 이제 갓 돌이 지난 저희 아이도 눈뜨면 작품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거든요. 저는 하루에도 수백 번 새로운 작품을 찾아보거나 아트와 관련한 기사와 이미지를 접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아트 컬렉팅은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인터넷과 SNS의 영향으로 미술계의 지형이 변하고, 컬렉터의 연령대가 어려지고, 컬렉팅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어요. 예전에 컬렉팅을 특별한 이들의 리그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대중도 작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컬렉팅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끝이 없는 재미’입니다. 작품을 소유하는 것 이상으로 작품을 통한 교류 또한 저희에게는 재미의 연속입니다.

두 분의 컬렉션을 보면 다양한 스타일과 여러 국가의 작품임에도 통일된 결을 이루고 있어요. 작품을 컬렉팅할 때 자신만의 기준점은 무엇입니까? ‘재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뻐서, 못나서, 무서워서, 특이해서, 징그러워서, 불쾌해서 재미있죠. 저는 뇌리에 남은 느낌이 강렬하고 오래 머무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물론 결정에 앞서 작가에 대한 리서치는 기본입니다. 그 작가의 시기별, 시리즈별 작품을 비교해보고 성장성과 확장성이 있는 작가인지 연구합니다. 저희는 현재보다 미래에 더 좋은 작업과 전시를 할 수 있는 작가를 찾고 있기 때문에 그 작가가 어떤 작품과 전시를 선보였는지 보는 것은 상당히 중요해요. 또한 많은 경우 작가는 검증된 기관의 전시를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하기에 큰 스케일의 전시를 할 수 있는 작가인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간혹 젊은 작가의 경우 리서치를 해봐도 기존의 활동 이력이 많지 않아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그때는 작가가 신뢰할 수 있는 갤러리와 함께 일한다면 용기를 내어 과감한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컬렉터들은 애써도 살 수 없는 작품도 많이 소장하고 계시잖아요. 두 분만의 비결이 있을까요? 작품 컬렉팅 팁을 조금만 나눠주세요. 지금도 여전히 많은 갤러리에서 “Not Available”이라는 회신을 받으며 컬렉팅하고 있어요. 아마도 모든 컬렉터가 비슷할 겁니다. 언제나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더 여유 있고, 더 방대한 지식을 가진, 더 좋은 컬렉션을 소장한,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컬렉터가 존재하거든요. 거절을 견디며 장기적 관점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구축해가야 컬렉팅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팁이라고 할 것까진 없는데, 저는 원하는 작품을 컬렉팅하기 위해 갤러리들과 오랜 기간에 걸쳐 교류합니다. 갤러리 전시와 아트 페어를 찾아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물론 친구라고 해서 작품을 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는 작품의 컬렉팅 가능 여부를 물으면 “미안하지만 이 작품은 미술관에 소장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완곡한 거절이 돌아오기도 하죠. 이 또한 컬렉팅의 한 과정입니다. 좋은 컬렉터가 되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수십 번의 거절 끝에 한 번의 기회가 저에게 찾아옵니다.

올해로 컬렉팅 15년 차죠? 장기적 관점으로 컬렉팅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이제 막 컬렉터의 길에 입문한 이들을 위해 따뜻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컬렉터들은 다양한 이유로 컬렉팅을 시작합니다. 미술이 좋아서, 집을 꾸미기 위해서, 남보다 특별해 보이고 싶어서, 투자의 목적으로 등등. 어떤 목적이든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컬렉션을 구성하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지쳐서 언젠가 수집 행위를 포기하게 됩니다. 작가, 작품, 미술사, 갤러리 등 탐구해야 할 부분이 끝도 없이 많은데 만약 좋아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든요. 간혹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단기간에 훌륭한 컬렉션을 소장하는 분도 있겠지만, 과연 지구상에 그런 컬렉터가 몇 명이나 될까요? 일단 저희는 스스로 운과 촉을 타고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좋은 작가와 작품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관심 있는 작가의 전시 소식과 평론 기사를 찾아보다 밤을 새우는 날이 제법 많습니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초창기에 알아보고 컬렉팅하셨어요. 그 작가들이 성장할 거라는 확신이 드셨나요? 사실 처음엔 제가 보는 이 작가가 좋은 작가가 맞는지 불안하고 불확실했어요. 저는 2010년경에 어번 아트를 중점적으로 컬렉팅했습니다. 지금이야 글로벌 미술계에서 어번 아트 작가가 인정받고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추세지만, 당시엔 일반적 미술 시장과 동떨어진 영역이었거든요. 그래서 저희에게 ‘왜 A작가를 컬렉팅해? 그보다는 B작가가 낫지 않아?’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분들이 저희에게 다시 A작가에 대해 물으시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되었지요. ‘아, 내가 이상한 작품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각이 다른 거였구나’ 라고요. 저희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가 불확실한 작가의 작품을 컬렉팅합니다. 시대의 취향이라는 것은 변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실은 본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소장해야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Rebecca Ackroyd, Direct Lines, Mixed Media, 73×113×60cm, 2019 Nicholas Grafia, The Trial Lounge, Acrylic and graphite on canvas, 125×193cm, 2020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있는 보관용 랙.

지난여름에 수장고로 사용할 건물을 계약하셨어요.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나요? 저희가 수장고를 찾아 헤맨 지 3년이 다 되어가요.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까다로운 제 성향 탓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거주할 공간이 아니라 저희 작품의 집이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기준으로 공간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소장한 작품의 사이즈에 맞는 층고와 벽 길이가 나오는지 그리고 작품의 출입 동선이 편한지가 우선순위였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자주 들러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집과 거리가 가까워야 했습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가장 중점을 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작품을 위한 집이라 온도, 습도, 빛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저는 모든 작품을 포장하지 않은 채 랙에 걸어 보관하기 때문에 공간 자체의 환경이 완벽해야 합니다. 작품의 컨디션을 위해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해요. 건물의 기본인 단열을 이중으로 꼼꼼하게 챙기고 가습기, 제습기와 냉난방기를 각각 따로 설치했어요. 처음엔 항온항습기 설치도 고려했지만, 기기를 개별로 설치하는 것이 소음도 적고 공간도 적게 차지하면서 전기료도 절약된다는 것을 리서치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설치할 벽체의 합판 보강도 무거운 작품을 걸 때를 대비해 모두 30T 이상으로 두껍게 했어요.

건물을 계약하고 공사까지 200일 이상 걸렸어요. 어려웠던 점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마음 같아선 모든 걸 최고로 하고 싶었지만, 그러다 보면 컬렉팅할 예산도 안 남겠더라고요. 그래도 끝까지 조명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조명이 작품을 감상할 때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잘 알거든요. 때마침 공사 기간에 도쿄 아트 페어를 다녀와서 현지 갤러리의 조명 방식을 벤치마킹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촬영한 조명 사진만 핸드폰에 수백 장 넘게 저장되어 있어요. 예산 때문에 일부 조명 사양은 현실과 타협해야 했지만, 작품 감상을 위한 제 나름의 기준은 충족되어 만족합니다. 물론 공사 중 아찔한 순간도 있었어요. 저희가 대형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서 일반 수장고보다 훨씬 큰 공간이 필요했지요. 건물을 찾을 때도 작품 보관용 랙을 설치할 높이가 나오는지를 제일 먼저 고려했습니다. 작품 보관용 랙의 높이가 230cm인데, 이곳의 층고는 충분히 높았어요. 그런데 막상 공사할 때 보니 천장 보의 두께도 있고 일부 바닥이 높은 곳이 있어서 랙이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지경이더라고요. 며칠에 걸쳐 콘크리트 바닥을 그라인더로 갈아서 높이를 맞췄습니다. 공사하는 분들이 고생 많이 하셨어요.

새로운 수장고는 스토리지의 개념을 넘어 두 분의 컬렉션을 프레젠테이션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수장고에서는 어떤 네트워킹이 이뤄지나요? 작품은 작가가 창작하지만 컬렉션의 창작자는 컬렉터입니다. 누군가 저희와 같은 작가의 작품을 소장했다고 해서 같은 컬렉션은 아니지요. 모든 컬렉션이 제각각 독특하고 다르기에 타인의 컬렉션을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저희 수장고에는 작가, 컬렉터, 국내외 미술관 디렉터도 들르곤 합니다. 특히 작년 프리즈 서울 기간에는 평소보다 많은 미술계 인사를 수장고에서 만난 것 같아요. 저희 컬렉션을 감상하는, 다양하고 생생한 의견을 나누는 그 모든 과정이 저는 즐겁습니다. 아트 러버들이 모이면 아트 수다로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저희는 컬렉팅이 단순히 돈을 지불하고 미술품을 사는 행위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컬렉터가 되는 것은 작가, 갤러리와 운명 공동체가 되는 겁니다. 특히 저희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주로 컬렉팅하기 때문에 작가와 갤러리가 함께 성장해야 저희 컬렉션도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항상 20년 후를 생각하며 컬렉팅합니다. 미래에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는 작가, 그런 작가를 발굴하고 서포트할 수 있는 갤러리와 친밀하게 교류하려 노력하다 보니 그들을 수장고로 초대하고 컬렉션을 오픈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갓 돌이 지난 딸에게 미술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선배 컬렉터로서 그리고 아빠로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아트 컬렉팅은 제 삶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노재명은 정해진 틀 안에서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인데 컬렉팅을 통해 많이 유연해졌어요. 저희에게 컬렉팅은 일상이자 취미, 그리고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타인의 삶과 가치관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는 걸 어려워하죠. 저는 다양성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에서 대부분의 교육과정을 거쳤음에도 타인의 삶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런 제가 아트 컬렉팅을 시작하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며 저와 다른 삶을 사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비로소 시작된 거죠. 그런 의미에서 딸에게도 이 소중한 경험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딸이 자라 저희와 함께 컬렉팅을 하고, 그렇게 본인의 컬렉션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물론 저희의 피, 땀, 눈물이 깃든 컬렉션을 사랑으로 이어받아 오랫동안 간직해주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습니다.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한 수장고 2층 전경.





노재명, 박소현 컬렉터 가족.

 

에디터 박수전(노블레스 컬렉션)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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