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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6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님

풍부한 유적지와 예술자원으로 관광객이 끊기지 않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님의 풍경.

님은 기원전 121년 로마에 종속된 이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특명에 따라 발전했고, 당대에도 손꼽히는 부유한 마을이었다. 원형경기장 아레나를 비롯해 신전 메종 카레(Maison Carré), 수도교 르 퐁 뒤 가르(Le Pont du Gard) 등 로마 시대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유적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프랑스의 로마’로 불릴 정도다. 그렇지만 유서 깊은 유럽의 여느 도시만큼 님도 역사의 부침을 겪었다. 게르만족과 아랍 세력의 지배를 받았고 13세기에 들어서는 프랑스 왕국에 흡수됐다. 만약 지금 당장 구글맵을 열어 도시경관을 둘러본다면 시대에 따른 권력의 변화가 남긴 흔적을 두루 엿볼 수 있다. 그 결과 마치 하나의 스케치 위에 계속 덧그린 그림처럼 시대별 건축양식을 포개고 겹친 도시 풍경이 완성됐다. 이 도시는 로마 문명박물관(Musée de la Romanité), 님 자연사박물관(Muséum d’Histoire Naturelle de Nîmes), 님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Nîmes) 등을 중심으로 지역의 발자취를 꼼꼼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단연 메종 카레다. 기원전 16년, 군인이자 정치가인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Marcus Vipsanius Agrippa)의 의뢰로 건설한 이 건축물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양자와 손자를 기리는 고대 로마의 신전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작품’에 비유했다는 로마의 판테온 역시 아그리파의 의뢰로 지은 것으로, 메종 카레와 판테온은 고대 로마 건축의 엄정한 고전적 비례미를 대표하는 사례로 남아 있다. 4세기에 기독교 교회로 바뀐 이후 영사관, 마구간, 교회 사저, 공공 기록 보관소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 메종 카레는 1823년에 님 최초의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에 올라 있다.





글렌 라이곤의 ‘Debris Field’ 설치 전경. Photo by Cedrick Eymenier





글렌 라이곤의 ‘Stranger(Full Text) #1’(2020~2021). Photo by Cedrick Eymenier © Glenstone Museum

메종 카레의 역사적 의의와 존재감을 한층 부각하는 건물은 광장 맞은편에 자리 잡은 카레 현대미술관(Carré d’Art-Musée d’Art Contemporain de Nîmes)이다. 메종 카레의 이름을 이어받은 이 미술관은 여러모로 고대 로마의 신전과 대비되는 매력을 지녔다. 언뜻 이름 외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전체 구조도 메종 카레와 흡사하다. 카레 현대미술관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도서, CD, DVD 등 각종 시청각물을 포함한 미디어 자료관을 뜻하는 ‘메디아테크(Médiathèque)’의 일부다. 영국 출신 스타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설계로 1993년에 완공했다. 총 9층 건물이지만, 그중 절반은 지하층으로 외부에서 볼 때 주변 건축물의 규모와 부담 없이 어우러진다. 철재와 유리의 단단함과 투명함이 주조를 이룬 이 건축물은 처음부터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을 연결하면서 동시에 현재를 충실히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전면 유리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광 덕분에 철골의 차가움을 누그러뜨리는 아늑함이 깃들었다. 저층에는 아카이브와 영화관이, 그 위로는 도서관과 미술관이 들어섰고 최상층에는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테라스와 연결한 리셉션 공간을 조성했다. 이 건축 프로젝트는 과거의 영광을 가로질러 시민에게 문화적 삶의 활력을 되찾아주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나간 번영의 자취와 함께 현재를 관통하는 예술 또한 껴안은 도시로 거듭난 님에서는 잠시 시계를 멀리해도 좋을 듯하다.





글렌 라이곤의 ‘Warm Broad Glow II’(2011). Photo by Cedrick Eymenier © Zabludowicz Collection





카레 현대미술관 내부. © Serge Gal

동시대 미술 신과 발맞추어 성장 중인 카레 현대미술관은 196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작품 6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해마다 2회 이상 정기 전시를 개최해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레베카 호른(Rebecca Horn),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지그마어 폴케(Sigmar Polke), 왈리드 라드(Walid Raad) 등 굵직한 작가를 지역에 소개했다. 지난 6월 24일 개막해 11월 20일까지 열린 전시는 미국 현대미술가 글렌 라이곤(Glenn Ligon)의 로, 프랑스 예술 기관에서 최초로 열리는 라이곤의 개인전이다. 전시 제목은 글렌 라이곤과 뉴욕 할렘 스튜디오 미술관(Studio Museum in Harlem)의 디렉터 셀마 골든(Thelma Golden)이 2000년대 초반부터 ‘흑인 정체성(blackness)’의 재정의와 관련해 주장한 용어 ‘Post-Black’에 흑백영화를 지칭하는 프랑스어 ‘Film Noir’의 뉘앙스를 더해 지었다. 작가는 역사적 순간, 예술가 그룹, 특정 인종을 정의하는 용어는 언제나 수정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기존 지점과는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제시해야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글렌 라이곤은 추상회화로 작가로서 경력을 시작했으나 ‘텍스트’에 눈을 뜨면서 커리어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게이 매거진, 정치 성명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의 문학 등에서 포착한 단어나 문장으로 작업한 스텐실 작품은 그의 상징과도 같고, 2005년부터는 네온을 활용해 새롭게 주목도를 높였다. 언어를 ‘그리는’ 라이곤은 언어에 투사된 사회적·정치적 가치 체계와 그것이 작품을 통해 변경되거나 강조, 부각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 전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Warm Broad Glow II’(2011)와 ‘Double America’(2012)를 필두로 네온 작품을 모아 한 섹션을 꾸렸다. 그뿐 아니라 1996년에 회화로 처음 선보인 ‘Stranger’ 시리즈를 이번 전시에서 기념비적 신작으로 다시 소개한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 최초로 방문한 흑인의 경험담을 기록한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에세이 <마을의 이방인(Stranger in the Village)>(1953) 전문을 적은 이 신작은 미국과 유럽을 잇는 문화적 연결 고리로, 인종차별과 식민주의의 여파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처럼 고대와 현대의 예술이 맞닿은 도시 님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예술가와 작품은 방문객에게 시대를 넘나드는 담론을 선사할 것이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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