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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11

박물관은 살아 있다

박물관은 역사적 유물뿐 아니라 결혼식, 음식, 음악, 패션 등과 ‘마리아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위쪽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에서 열린 구찌 2020 크루즈 컬렉션 런웨이.
아래쪽 천장에 공룡 뼈대가 걸려있는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선 LED 무선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파티를 즐기는 ‘Silent Disco’가 열린다. ©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올 상반기 문화 예술계의 뜨거운 감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식 만찬 행사일 것이다. 온·오프라인에서 찬반 여론이 팽팽했기 때문이다. 먼저, 반대하는 측에서는 불과 만찬 사흘 전 임시 휴관을 통보함에 따라 사전 예약자들이 불편을 겪은 일을 화두로 내세웠다. 그리고 여기에 “평소 유물 보호를 이유로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는 곳에서 식사를 한다는 건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더해지며 박물관 만찬이 특권 의식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박물관 역할의 확장을 언급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한국 영화와 K-팝이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유물을 통한 문화 외교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사실 국립중앙박물관 만찬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배우자 만찬’과 ‘2010년 G20 정상 만찬’을 개최할 때도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그때 여론이 어땠는지 궁금해 기사를 찾아보니 얼마 전과 다른 내용이 하나도 없어 재방송을 보는 듯했다. 그러니 어찌 됐든 일정 공지를 일찌감치 한다든지, 가능한 한 관람객이 없는 저녁 시간에 만찬을 기획한다든지 같은 박물관·미술관 활용 지침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적의 대상이 된 ‘박물관·미술관에서의 만찬 행사’는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은 각각 이집트 신전과 우주왕복선을 배경으로 하는 식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 영국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선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를 벗 삼아 와인을 즐길 수 있으며,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선 금방이라도 공룡에게 잡아먹힐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다과회를 열 수 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 베르사유궁이 삼성전자 글로벌 로드 쇼에 대관을 허락한 적도 있다. 사례에서 보듯, 대부분의 박물관·미술관 행사는 국가원수 예우, 기업 홍보, 기부금 마련 파티 등이 주를 이룬다. 반대로 개인에게 공간을 내어줄 때도 있다. 비용만 감당할 수 있다면 결혼과 기념일, 생일을 예술 작품 품에 안긴 잊지 못할 시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립자연사박물관 홍보팀은 “자금 고민이 커요. 베뉴(venue) 대여는 수익 사업과 홍보를 목적으로 합니다. 동시에 미래를 내다본 투자 개념이기도 하죠. 간혹 전시장에 와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다 작품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혹시 누가 아나요? 이들이 추후 구매자가 될지, 후원자가 될지”라고 말한다.





왼쪽 다니엘 리히터의 개인전 <나의 미치광이웃>(스페이스K)에 맞춰 진행 중인 요가 클래스.
오른쪽 2018년 제이지와 비욘세로 구성된 팀 ‘카터스’는 루브르박물관에서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박물관·미술관을 색다르게 활용한 예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2019년의 서울시립미술관을 꼽을 수 있다. 에르메스가 미술관 안에서 F/W 남성복 패션쇼를 진행했기 때문. 오렌지색 LED와 계단 위를 활보하는 모델 덕분에 정동의 밤이 화려하게 빛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다 건너로 시선을 돌리면, 매번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크루즈 쇼를 선보이는 구찌가 있다. 2019년 구찌는 이탈리아 카피톨리니 박물관(Musei Capitolini)에서 크루즈 컬렉션을 공개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피톨리니 박물관은 고대 로마시대 조각과 회화 작품으로 유명한데 런웨이에 올리기 위해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제작한, 영광스러웠던 로마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드레스와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1970년대 여성의 활동을 모티브로 한 의상은 꽤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힙합 뮤직비디오 촬영을 허가하기도 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루브르박물관에서 2018년 제이지와 비욘세로 구성된 팀 ‘카터스(The Carters)’는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불렀다. 이를 두고 유럽 언론은 ‘기념비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나폴레옹 대관식’, ‘모나리자’, ‘피에타’ 앞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가 랜선을 탄 이후 박물관 관람객 수와 온라인 노출 빈도가 늘었다는 것. 이러한 결과는 10여 년 전부터 루브르가 시작한 공격적 마케팅의 성과라는 분석이 있다.
이와 함께 최근 추세는 생활 밀착형 이벤트다. 대표적으로 미술관 요가가 있다. 2010년 무렵 미국 몇몇 미술관에서 펼쳐진 소소한 풍경이 지금은 세계 유수 미술관의 필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림에 둘러싸여 명상과 사색을 하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비록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주춤했지만, 엔데믹에 들어선 요즘 미술관 요가의 빗장이 하나둘 풀리는 모양새다. 스페이스K 역시 그중 하나다. 이근민 작가 개인전에 맞춰 주최한 요가 클래스가 단발성이었음에도 반응이 뜨거워 이번 다니엘 리히터 개인전 <나의 미치광이웃>(~9월 28일) 때는 정규 편성했다고 한다. 앞서 말한, 음식물이라는 미세한 돌발 변수와 높은 문턱이 존재하는 만찬 행사나 파티와 달리, 미술관 요가는 마음 편하게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매트 위에서만 움직이는지라 몸이 작품에 닿을 확률이 낮을뿐더러 생경한 분위기만 극복한다면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는 대중과의 스킨십을 늘리기 위한 미술관의 복합 문화 공간 성격을 덧입히는 추세와 궤를 같이한다. 이에 관해 신사임 스페이스K 큐레이터는 말한다. “주민들이 클래스를 기다렸나 봐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워요. 요가와 미술 사이에는 ‘안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심신을 이완하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요가를 마친 후 자연스레 전시까지 감상할 수 있도록 해보려 해요. 미술관을 친숙하게 만들려고요. 예전처럼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요.”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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