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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2

요즘 시대, 요즘 농업

도시 농부가 생겨나고, 스마트팜이 늘어난다. 농업이 기술과 만나 '어그테크'를 이루며 발전하는 오늘날의 농업 스케치.

위쪽 다양한 식물을 손쉽게 키울 수 있는 LG 틔운.
아래쪽 나이오 테크놀로지스의 잡초 제거 로봇 테드.

에디터로 일하다 보면 신제품 소식을 끊임없이 접하게 된다. 대부분 금방 잊히는데, 지난 10월 LG전자가 출시한 ‘틔운’이란 제품은 워낙 인상적이라 뇌리에 박혔다. 와인 냉장고 외관을 닮은 이것의 정체는 식물 재배기. 제품 내부 선반에 씨앗 키트를 장착하고 물과 영양제를 넣으면 꽃과 채소 등 다양한 식물을 기를 수 있다. 빛, 온도, 물 등 식물 재배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제품 스스로 조절하기에 특별한 지식 없이도 이용 가능한 것이 장점. 특히 상추, 시금치, 깻잎 등 엽채만 키울 경우 3~4인 가구가 일주일에 2~3번 먹을 양을 재배할 수 있다고 한다. 집에 들이는 식물마다 사망 선고를 내리는 에디터에겐 혁명과도 같은 일. 동시에 식물을 키우는 일, 그러니까 농업이 기술을 만날 때 얼마나 트렌디해질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농업이 기술로 주목받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농업은 어느 때보다 ‘첨단’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이와 관련한 신조어도 있다. 바로 어그테크(agtech).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빅데이터·클라우드·인공지능(AI) 등을 적극 활용해 농업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는 연말연시 서점가 베스트셀러 부문을 차지하는 트렌드 서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위기와 연관이 있기 때문. UN에 따르면 2050년 세계 인구는 90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식량 생산도 증가해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거듭되는 산업화와 극심한 기후변화로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경작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국가 간 식량 안보 문제까지 불거졌다. 결국 외부 요인에 휘둘리지 않고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하는 방법은 어그테크뿐이다. 각국 정부에서 이와 관련한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존 디어(John Deere)와 몬샌토(Monsanto) 등 전통의 농업 대기업부터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대기업까지 어그테크에 투자하는 상황이다. 어그테크 스타트업 투자 정보 제공업체 어그펀드에 따르면, 2010년 4억 달러(약 4700억 원)에 불과하던 어그테크 투자 규모가 2019년 200억 달러(약 23조 5600억 원)를 기록, 10년 사이 50배가량 성장했다.





엔씽의 스마트팜 내부.

어그테크의 사례는 실로 다양하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것은 농업용 로봇의 활약이다. 지난 2011년 프랑스 엔지니어 아이메릭 바테스(Aymeric Barthes)와 개탄 세베락(Gaetan Severac)은 나이오 테크놀로지스(Nao Technologies)를 설립, 농부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잡초 제거 작업을 대신하는 로봇을 만들고 있다. 시그너처 제품은 와인 재배용 포도밭의 잡초를 제거하는 ‘테드(Ted)’. 밭을 돌아다니며 로봇 하단의 칼날 달린 원반으로 포도나무 주변 잡초를 없애고 땅고르기 작업을 진행한다. 시속 4km로 움직이는 이 전기식 로봇의 하루 작업 면적은 최대 5헥타르(약 5만m²)에 이른다. 지난해부터 자 헤네시(Jas Hennessy & Co.), 베르나르 마그레 그랑 비뇨블(Bernard Magrez Grands Vignobles)의 포도밭에서 맹활약 중이다. 미국의 블루 리버 테크놀로지(Blue river Technology)는 제초 로봇 ‘씨 & 스프레이(See & Spray)’를 개발했다. 나이오 테크놀로지스가 농약 없는 친환경 재배를 추구한다면, 이들은 제초제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모토다. 로봇을 부착한 트랙터로 경작지를 운행하면, 카메라가 수천 분의 1초 단위로 잡초를 식별하고 노즐을 통해 그곳에만 제초제를 살포한다. 기존 제초제 사용량의 9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세계적으로 매년 250억 달러(29조 5600억 원)의 비용을 투입해 제초제를 흩뿌리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화가 시급하다. 지난 2017년 세계 최대 농기계 제조사 존 디어가 블루 리버 테크놀로지를 3억500만 달러(약 3400억 원)에 사들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편, 제초 작업 못지않은 노동력이 수반되는 수확 작업에도 특화된 로봇이 있다. 일본의 이나호(Inaho)가 만든 수확 로봇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수확 장소를 기억하고 자율적으로 주행한다. 센서에서 쏜 적외선이 되돌아오는 시간을 토대로 채소를 판별하고 로봇 팔로 수확 작업을 진행한다. 수확이 완료되면 스마트폰을 통해 알려주는 센스까지! 현재는 아스파라거스만 수확할 수 있지만, 곧 토마토나 오이 같은 채소로 범위를 넓혀나갈 예정이다.





위쪽 UAE에 진출한 엔씽의 스마트팜.
아래쪽 세레스 이미징이 제공하는 농작 현황 확인 시스템.

어그테크로 기존 방식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농작 현황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땅에서 농작물을 하나씩 살피는 것이 아닌, 하늘에서 통째로 내려다보기 때문. 미국의 세레스 이미징(Ceres Imaging)은 복숭아·아몬드·감자 등 각종 경작지 위로 비행기를 날려 고해상 이미지를 찍고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석 결과를 제공한다. 토양 온도를 파악해 경작지에 물이 고르게 뿌려졌는지부터 가시광선·근적외선 대역에서 식물의 빛반사율을 측정해 얻은 엽록소 지수로 수목과 작물의 활력도를 측정하는 것까지, 개별 식물에서 시각적으로 문제가 드러나기 2~3주 전 문제를 진단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타라니스(Taranis)도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이파리까지 클로즈업해 곤충 피해나 영양 결핍 등을 파악할 만큼 정밀도가 높은데, 대단한 점은 5년 넘게 모은 수백만 개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가르쳐 날이 갈수록 정확한 솔루션을 제시한다는 것. 타나리스 공동 창립자 오피르 살람(Ofir Schalm)은 “지난 한 세기 농업 분야에서 대단한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농작물에 닥친 위협을 관리하는 측면에선 느리고 부정확한 19세기 방식을 고수해왔다”며 “타나리스는 농부들에게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보통 농사를 짓기 위해선 비옥한 땅과 알맞은 기후, 숙련된 농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그테크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조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중 실내 농장으로 일컫는 수직형 스마트팜은 의문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농부의 도움 없이도 식물이 밤낮없이 쑥쑥 자라는 것. 멕시코의 베르데콤팍토(Verde Compacto)는 ‘녹색 공장’이라는 회사명에 걸맞게 스마트팜 시스템 ‘스터(Huvster)’를 개발했다. 해상용 컨테이너를 재활용한 이 스마트팜은 NASA가 우주정거장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개발한 흙이나 담수 등이 필요하지 않은 재배법 ‘에어로포닉스(aeroponics)’를 적용, 같은 면적의 땅에서 키우는 것보다 200배 많은 양의 채소를 생산할 수 있다. 100% 자동화에 살충제도 필요 없고, 물도 기존 방식보다 90% 절약할 수 있는 등 장점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에도 이러한 스마트팜을 운용하는 회사가 꽤 있다. 엔씽(n.thing)은 사물인터넷 기반 자동화 운영 시스템, 식물 생장 LED, 순환식 수경 재배 등 자체 기술로 운영하는 모듈형 컨테이너 수직 농장을 개발했다. 컨테이너를 위로 쌓거나 옆으로 붙이는 등 변형이 가능한데, 분리하면 컨테이너 하나가 혹시 모를 병충해를 입어도 다른 컨테이너로 전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 2020’에서 스마트 시티 부문 최고 혁신상을 받은 엔씽은 이미 열악한 기후 환경으로 식량 자급률이 10%가 안 되는 아랍에미리트(UAE) 사막에 스마트팜을 수출하고 있다.
어그테크는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 우수 농업 인력 부족, 경지 면적 감소 등 한국 농업에 닥친 총체적 위기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단, 국내는 영세한 농민이 많은 데다 시장 자체가 크지 않아 어그테크가 확산하는 데 정부와 대기업의 적극적 지원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미국, 네덜란드, 일본 등 어그테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나라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적절한 조치만 이루어지면 훌륭한 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어그테크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변화를 맞이한 농업의 미래에 주목할 때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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