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따뜻해지는 문화 산책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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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08

겨울이 따뜻해지는 문화 산책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한 명사들의 추천 문화 정보.

Book 혼돈 속 질서를 읽는 감동
메이슨 커리의 <예술하는 습관>은 일상과 창작이라는 좀처럼 들어맞지 않는 세계를 대범하고 재치 있게 거쳐온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메이슨 커리의 <예술하는 습관> 표지.

사둔 책을 무작위로 펼쳐 조금씩 읽는 습관 때문인지, 짧은 꼭지로 이루어진 책을 좋아한다. 잠시만 펼쳐도 완결된 이야기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31명이나 되는 여성 예술가의 삶을 다채롭게 엿보는 즐거움이 있다. 메이슨 커리의 <예술하는 습관>은 다양한 창작자의 작업 습관과 하루 일과를 취재해 에세이 형식으로 모아놓은 책이다. 같은 주제의 전작에 해당하는 <리추얼>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후속작의 출간 소식이 반가웠다.
나는 주로 어딘가로 이동하는 길에 이 책을 읽었다. 작업의 압박 속에서는 책을 잘 못 읽는 반면, 밀린 일을 잠시 덮어놓고 약속 장소로 가는 뒤숭숭한 틈이 내게는 오히려 독서의 계기가 되곤 했다.
그 뒤숭숭함은 보통 일상의 루틴이 흐트러지는 데에서 온다. 과연 창작자에게 안정된 일과라는 게 가능하긴 한 건지 투덜대다 보면 이열치열인지 다시 이런 작업기에 눈길이 간다. 아마 압박감을 잠시 내려놓고 남의 작업실을 구경하러 다니는 기분이라 그런 것 같다. 나보다 더 갈팡질팡하는 작가를 만나면 동료 의식을 갖게 되고, 절묘한 노하우를 지닌 작가를 만나면 의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장소 중 가장 생뚱맞은 곳은 공원의 코로나19 선별검사진료소 앞이었다. 도대체 창작이라는 게 뭐길래 이런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해나가야 하나 의문을 갖기에 그곳은 최적의 장소였다. 마스크를 쓰고 조금씩 줄의 앞쪽으로 나아가며 ‘우리’와 똑같이 마감의 압박에 쫓기며 겨우 글을 쓰기 시작한 수전 손택과 집에서도 종일 메모지를 들고 다닌 도로시 톰슨의 일화를 읽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가 다양한 만큼이나 하나의 정답은 없었다. 숱한 작품을 낸 거장도 완벽한 루틴이란 게 가능한지 의아해했고, 진작에 그런 건 포기했다며 짓궂은 표정을 짓는 느낌의 작가도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여성으로 나보다 훨씬 불리한 환경에 있었다.
저자는 전작 <리추얼>에서 여성 창작자의 비율이 너무 낮았다고 판단해 이 후속작을 엮었다고 한다. 특히 옛 남성 창작자의 경우 아내의 희생과 물려받은 유산, 하인들이 있어 오늘날의 창작자와 다소 괴리가 있었던 것 또한 전작의 아쉬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집안일과 양육, 잡다한 부업의 틈바구니에서 창작 활동을 해온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기게 되었다.
많은 이들은 예술가를 생각할 때 먹고사는 일은 제쳐두고 개인적 꿈을 좇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누구도 예술가이기만 할 수는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들은 창작자지만 동시에 부모였고, 아내이자 교사, 시간제 노동자였다. 이들의 루틴이 복잡한 것은 예술이란 독특한 일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창작자로서 자기 규율과 사회의 규율을 함께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낮에 직장에 다닌 옥타비아 버틀러는 새벽 시간을 쪼개 글을 썼고, 아녜스 바르다는 육아 때문에 집 가까운 곳에서만 촬영해 영화를 만들었다. 클라라 슈만은 로베르트 슈만이 맥주 마시러 간 저녁에만 피아노를 연습할 수 있었고,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쓰는 기간에 출산을 했다. 그렇다고 이런 고생담이 심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재치와 당당함, 대범함도 있기 때문이다. 캐서린 앤 포터는 조용한 방을 빌려 단기간에 단편소설을 완성하기도 했고, 릴리 캐천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당 40시간을 지키며 조각을 완성했다. 모든 이들이 꼼꼼한 작업기를 남긴 건 아닐 텐데, 다양한 자료와 기록에서 이 같은 일과를 추출해낸 메이슨 커리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올겨울에는 일정을 잘 짜 생활과 작업의 균형을 맞춰야지 하는 습관적 기대는 접어야 할 듯싶다. 오히려 이 선배들처럼 솜씨 좋게 혼돈을 요리할 배짱을 기르는 게 현실적 대안일 것 같다.

글. 김목인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영미 문학 번역가이기도 하다.






Movie 우리가 잘 모르는 ‘싱크홀’에 대하여
우리가 매일 다니는 발밑 세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영화 <싱크홀>을 통해 깊은 땅속 신비에 대해 생각해보자.



도심 재해를 다룬 영화 <싱크홀>의 한 장면.

도시의 땅속은 상하수도, 전기, 통신, 가스관을 매설해 촘촘한 거미줄처럼 연결되고 지하도, 지하철, 대형 건물의 깊고 넓은 지하 공간 등 다양한 인프라 시설이 얽혀 있다. 그 사이사이는 당연히 흙과 돌이 메우고 있다. 흔히 땅속을 설명해보라 하면 흙이 꽉 들어차서 공극 하나 없는 단단한 상태를 상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단단하지 않으며 흙이나 돌이 아닌 인공 시설물이 들어차 있다. 자연 상태의 땅은 층위가 있는데 가장 얕은 흙부터 점토, 자갈, 풍화토, 풍화암, 연암, 경암 순이다. 깊어질수록 단단해진다. 건물의 기초는 통상 풍화토 이하에서 지지해야 안전하다. 대부분 건물은 돌처럼 단단한 흙으로 지지해 안정적인 상태다. 하지만 간혹 땅속 상황이 변해 건물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건물에 영향을 주는 땅속 변수 중 가장 큰 요인은 ‘물’이다. 날씨 따라 유입되는 빗물과 오랜 세월 땅속을 흐르는 지하수, 그리고 낡은 상하수도 배관에서 새어 나오는 유출수가 있다. 이런저런 물이 섞인 땅이라 해도 통제 가능한 범위라면 별문제가 안 생긴다. 그런데 종종 물이 갑자기 늘거나 줄면 땅속에 빈틈이 생기거나 땅 일부가 유실되거나, 누르고 있던 압력 한쪽이 풀리면서 팽팽하던 땅속 힘의 균형이 깨진다. 이것을 바로 싱크홀이라 한다. 지반이 내려앉아 지표면에 큰 웅덩이 또는 구멍이 생기는 현상이다.
영화 <싱크홀(Sinkhole)>에서 하루아침에 500m 땅속으로 사라져버린 청운빌라는 10여 세대가 모여 사는 작은 공동주택이었다. 영화 속 싱크홀의 원인도 여러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시공 당시 지반 조사를 건너뛰고 풍화토가 없는 연질 토양에 그냥 집을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설령 그랬다 해도 영화 속 이웃 건물들은 멀쩡한데 청운빌라 하나만 싱크홀에 빠지는 경우는 토목·건축공학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오래전 모 지자체 세미나에서 건축공학 전문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작은 땅 하나의 범위에만 특징적 싱크홀이 아주 좁고 깊게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드문 경우긴 하지만 지하수위(地下水位)가 유독 혹처럼 높이 올라와 지표에 가까운 땅이 우리 주변에도 존재한다. 가령 조선시대 한 마을의 작은 연못이나 큰 우물이 있던 땅이 세월이 지나면서 가뭄과 홍수를 겪고, 혹처럼 높이 올라온 지하수위가 변해 물이 메말라 땅이 되고 그 위를 자갈과 흙으로 다지고 메워서 도로나 집 지을 땅이 되기도 한다.
마포구에 있는 영화 속 청운빌라를 지은 곳이 바로 그런 땅이었을 것이다. 도시화로 크고 작은 건물이 수십 년간 들어서고 각종 상하수도, 설비 배관이 매설되고 도로, 지하철 공사로 동네의 땅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그 와중에 지하수 경로는 조금씩 바뀌었고, 다시 예전처럼 물이 조금씩 흘러들어 주변의 흙을 쓸어갔다. 그 사실을 모른 채 하필이면 그 위에 청운빌라를 지은 것이다.
부동산으로 점철된 집단히스테리의 시대, 어느 동네에 사는지, 아파트에 사는지, 빌라에 사는지, 사는 아파트는 어떤 브랜드인지, 그 가족의 계급을 집의 유형과 가격으로 판단하는 시대에 벽에 실금이 가고, 창틀이 틀어져 유리가 깨지고, 방바닥에서 구슬이 저절로 굴러가는데 “우리 집이 엉터리네” 하며 소문 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문나면 집값이 떨어지고 하자 많은 빌런 하우스 취급을 받게 될 테니 청운빌라 주민은 안전 점검부터 당연히 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암묵적으로 쉬쉬하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빌라는 지하 500m 깊이의 싱크홀에 빠져버린다. 영화 속 싱크홀을 보며 내 집 밑 땅도 갑자기 구멍이 생겨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반도 이남 땅은 단단한 화강암, 풍화토 일색이라 그런 걱정은 내려놔도 된다. 지하수위란 원래 쉽게 변하지 않는다. 땅속에서 수만 년에 걸쳐 안정화되었으니 대지진 같은 큰 사건이 없는 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현재 도시에 생기는 싱크홀의 원인은 대부분 지하수의 변화와 과도한 물의 유입 혹은 배출로 분석된다. 연이은 공사로 누적된 도시 땅속의 피로도가 대지진에 근접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너나없이 내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인생 목표인 세상이다. 청년세대나 기성세대나 폭탄 같은 대출을 껴안고 집을 사서 평생 그 빚을 갚으며 허덕이는 삶을 살아간다. 집을 향한 욕망의 끝이 재난임을 영화 <싱크홀>은 말한다. “영끌해서라도 아파트를 사셔야지. 왜 빌라를….” 집들이에 온 원룸 세입자 김 대리가 동원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집이 아파트였더라도 싱크홀은 피하지 못했고, 재난의 규모는 더 컸을 것이다. 땅속 500m 빌라 옥상에서 까마득한 위를 올려다보는 배우들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치솟은 집값을 허망하게 쳐다보는 무주택자들의 표정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현실의 집값이 재난 수준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나름의 싱크홀에 갇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 최준석
건축사사무소 나우랩(NAAU LAB)을 운영한다. 얼마 전 에세이 <집의 귓속말>을 발간했다.






Culture 한류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K-컬처, 한국의 놀이 문화를 수출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지난 9월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열풍이 거세다. 전 세계 OTT 콘텐츠의 경쟁력을 평가하고 매달 순위를 발표하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80여 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의 자체 실적 발표에서도 공개 후 28일간 1억4200만 가구가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의 오래된 놀이를 데스 게임과 결합해 자본주의사회의 경쟁과 모순을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에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오징어 게임> 열풍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날 변화는 무엇일까?
문화의 영향력이란 끓는 가마솥과 같다. 가마솥은 금방 달아오르진 않아도 한번 뜨거워지면 결코 쉽게 식지 않는다. 오늘날 한류 콘텐츠의 전 지구적 인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영화 한 편 혹은 음악 한 곡이 아니라, 한류로 대변되는 문화를 소비하고 즐기는 단계로 발전한 것. 음악, 영화,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은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 나아가 그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을 이식한다. 오래전 서구의 팝 음악이나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에 그들의 문화를 전파한 것처럼 말이다.
<오징어 게임>은 우리의 놀이 문화를 잘 녹여냈다는 점에서 한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달고나 뽑기’처럼 그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전통 놀이와 맛이 세계 각지로 수출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 오징어 게임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우리 아이들이 즐겨 하던 놀이다. 명칭도 다양해서 서울의 경우 한강 남쪽, 지금의 영등포나 노량진에서는 ‘오징어 가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부산은 ‘오징어 달구지’, 대구는 ‘오징어 땅콩’, 충청도는 ‘오징어 이상’ 등 지역별로 이름이 다양하고 놀이 방식에도 차이가 있는 오징어 게임은 그 출처를 명확히 따지기 어렵다. 특히 서울 일부 지역에서 불린 오징어 가이상의 ‘가이상’은 일본어 가이센(會戰, かいせん)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대규모 병력이 격돌한다는 뜻인데, 오징어 게임에서 수비와 공격 모두 총력전을 펼쳐야 승리할 수 있다는 데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놀이 문화의 확산은 그 여파가 일상으로 스며든다는 점에서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식 음주 문화, 식사 예절 등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쿨’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전통 놀이가 더해지며 한국식 생활문화,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풍까지 불고 있다. 더욱 기대되는 사실은 이런 변화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일본풍 문화의 영향이 유럽을 강타한 19세기, 우키요에 같은 화풍이 유럽 미술계에 유행했고, 그것은 파리와 네덜란드 등지에서 ‘자포니즘’이라는 독특한 문화적 풍경과 지도를 그려냈다. 그 영향력은 한 세기 넘게 지속됐다. 일본 기업이 만들어내는 고퀄리티 제품이 호평을 받으며 문화 이식 흐름을 더욱 단단하게 굳혔다. 이런 자포니즘을 대신해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게 한류 콘텐츠다. 한류의 확산에 일본이 가장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특히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그들이 그저 그런 수준으로 소비하던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를 보란 듯이 세계적 흥행물로 등극시킨 것이기도 하다. 당연히 자신이 하지 못한 것,
그 한계를 지적하며 오늘날 한류 콘텐츠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예술과 문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것이 문화일 수밖에 없다. 일찍이 피카소는 “위대한 예술가는 남의 것을 훔친다”라고 말했다. 이는 모방에 머물지 않고 자기만의 새로운 색채와 감각을 입혀 재창조하는 예술의 특성을 의미한다. 지금 전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한류 콘텐츠의 인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놀이 문화의 확산은 생활과 가치관의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고, 동시에 우리가 그간 잊고 있던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로 이어질 것이다. 다양한 문화의 발전과 확산, 그걸 가능케 하는 창작자들의 도전을 지켜보는 일이 즐겁고 행복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작가. 최근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선보였다.






Fashion ‘중동 힐러리’의 히잡 터번 패션
카타르의 전 왕비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나드는 무슬림 여성의 히잡을 패션 아이템으로 연출하는 스타일 아이콘이다.



카타르 재단 이사장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나드의 우아한 모습. ⓒ Tim Rooke/Shutterstock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이름,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나드 (Sheikha Moza bint Nasser Al-Misnad)는 중동 국가 카타르의 전 왕비로 수백억 달러의 자산을 지닌 슈퍼리치이자 카타르 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열혈 슈퍼우먼이다. 중동 국가에서는 드물게 여성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 ‘중동의 힐러리’라 불리기도 한다. 경제·사회개발 프로젝트뿐 아니라 교육개혁을 직접 이끌고 있으며, 특히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돕는 일에 적극적이다. 카타르에 여성 담당 부처를 신설해 여성의 운전 허용 같은 여권 신장 정책을 관철하기도 했다. 1959년생인 그녀는 우아한 60대의 로열 패션을 대표하는 개성 만점 스타일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다. 경제 매거진 <포브스>에서 선정하는 ‘세계의 파워 있는 여성 100명’ 리스트에도 매년 이름을 올린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여러 명품 브랜드에 투자하기도 하는데, 오트 쿠튀르 하우스 켈라(Qela)를 직접 런칭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인 최초의 디올 오트 쿠튀르 패턴 디자이너 임세아가 런칭 준비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목구비가 시원한 서구적 외모는 1940년대 할리우드 여배우를 연상케 하는데, 그에 맞게 언제나 엘리강스하고 럭셔리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이런 그녀의 룩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바로 무슬림 여성이 쓰는 히잡 터번이다. ‘가린다’는 의미의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히잡이라는 아이템을 옷차림과 조화를 이루는 스타일리시한 패션 아이템으로 둔갑시킨 것. 180cm라는 큰 키에 어울리는 롱 드레스에 히잡 터번, 그리고 볼드한 주얼리는 그녀의 시그너처 룩이다. 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연출한 세련된 터번 스타일이 연상된다. 여기에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애티튜드까지 겸하니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일로 등극할 수밖에 없다.
와다 알 하즈리(Wadha Al Hajri) 같은 카타르 로컬 디자이너부터 샤넬, 에르메스, 디올, 지암바티스타 발리, 발렌티노 등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가 선보이는 오트 쿠튀르 라인을 즐겨 입는다. 공식 석상에서는 아르마니 프리베의 파워 슈트를 즐겨 입기도 하는데, 어떤 옷을 입든 같은 컬러의 히잡 터번을 쓰는 것이 특별하다. 그리고 볼드한 주얼리로 마무리하는데, 해리 윈스턴과 데이비드 웹을 애용한다. 히잡 터번은 이마를 드러내고 귀를 살짝 가리는 스타일로 연출하는데, 늘어뜨린 귀고리나 날렵한 선글라스를 함께 매치해 패션 매거진 화보 모델로도 손색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여유로운 여행지에선 히잡 대신 챙 넓은 라피아 해트로 페미닌한 리조트 룩을 연출하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네덜란드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취임식에서 선보인 그녀의 히잡 패션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은은한 블루빛이 매력적인 발렌티노 롱 드레스에 케이프를 걸치고, 같은 컬러의 히잡에 데이비드 웹의 귀고리와 오버사이즈 골드 목걸이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의 존재감이 확실히 부각되는 스타일이었다.
히잡은 언제나 그녀와 한 몸처럼 보이는데, 사실 스타일링 포인트는 히잡이 아니라 이처럼 볼드한 주얼리나 의상의 디테일, 그리고 가끔 애용하는 굵은 벨트다. 만약 그녀가 히잡 터번이 아닌, 흔히 보는 로열패밀리가 즐겨 입는 럭셔리 드레스로 옷차림을 연출했다면 이처럼 개성적인 스타일 아이콘으로 등극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스타일뿐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명사로도 유명하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글. 장은정
플랜제이(Plan J)를 운영하는 스타일 컨설턴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이소영(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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