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이 포착한 순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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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4

박찬욱이 포착한 순간

영화감독 박찬욱이 아닌, 사진가 박찬욱을 만났다. 조심조심 균형을 잡아 프레임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그의 사진을 보았다.

박찬욱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앞으로 끊임없이 새롭고 대담한 영화를 만들겠다. 혹시 투자 유치가 안 되면 저예산 영화를 찍고, 그것도 안 되면 전업 사진작가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넷 기사에서 그런 답변을 볼 때마다 ‘박찬욱 영화’의 수줍은 추종자로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박찬욱식 농담일까, 아니면 가진 자의 엄살일까? 화려한 필모그래피와 국제영화제 수상 경력, 심사위원 경력까지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한국 영화 = 박찬욱’이 성립되는 그에게 과연 ‘투자가 안 될’ 그날이 올까 싶었다. 그날이 오지 않으면 저예산 영화를 찍을 일도 없을 테고, 그렇다면 전업 사진작가로 활동할 일도 없을 테니.
그런 그가 사진작가로 첫 개인전을 치른다. 10월 1일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너의 표정(Your Faces)>이란 제목으로. 박해일과 탕웨이가 출연하는 차기작 <헤어질 결심> 후반 작업이 한창인 데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에피소드당 200만 달러 이상 출연료를 받는다’는 뉴스로 화제가 된 미국 드라마 <동조자> 연출로 여전히 바쁜 박찬욱 감독이 사진작가 박찬욱으로 본격적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앞서 자신이 내뱉은 ‘그날’이 먼 훗날이라 생각했겠지만, 그의 남다른 사진 세계를 알아본 미술계는 먼 ‘그날’을 기다리지 못한 듯싶다.
건축가 조병수의 손끝으로 재탄생한 복합 예술 공간 F1963에 2018년 오픈한 국제갤러리 부산에서는 그간 구본창, 하종현, 수퍼플렉스, 대니얼보이드, 김홍석, 칸디다 회퍼, 안규철 작가의 전시가 이어졌다. 매회 작가의 이름에 걸맞게 좋은 내용의 전시를 선보이며 전국의 많은 미술 애호가를 불러 모은 국제갤러리 부산이 선택한 작가 박찬욱. 영화 팬들을 열광하게 했던 박찬욱의 미장센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엇보다 박찬욱이 포착한 찬란한 순간을 우리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즐겁고 기쁘다.





Face 127, Archival Pigment Print, 80 X 80cm(여백 포함), 2020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차기작 <헤어질 결심> 후반 작업과 새로 시작하는 미국 드라마 <동조자> 연출로 분주하신 와중에 국제갤러리에서 사진작가로서 정식 데뷔전을 치르는 배경이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진을 찍어왔는데, 사진작가라고 내세울 만한 활동을 시작한 건 얼마 안 됐어요. 그룹전, 자선전 그리고 CGV 용산아이파크몰에 제 이름으로 마련한 헌정관에 제 사진 작품을 넉 달에 한 번 교체하며 전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도 제가 진지하게 작업한 작품을 포스팅하며 웹 갤러리처럼 운영해왔죠. 그런 작품을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물론 동생(박찬경 작가)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대규모 전시를 치르기도 했지만, 이번엔 좀 더 집중되고 한 곳에 초점을 맞춘 전시라 정식으로 데뷔하는 기분이 드네요.

‘투자자와 제작자가 열광하는 감독’이라는 수식을 잠시 내려놓고, 사진작가 박찬욱으로 대면하니 좀 더 친근한 기분이 듭니다. 영화감독 박찬욱이 ‘사단’에 가깝다면, 사진작가 박찬욱은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무장해제된 개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제가 어마어마한 대작을 찍진 않지만, 그렇다고 저예산 영화는 아니죠. 큰돈이 들어간 작품,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모여 협업하는 작업이 대부분이다 보니 책임감이 크고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항상 미리 계획하고, 많은 사람의 의견을 구하고 고치고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진 작업은 오롯이 혼자 하는 일이죠. 홀가분하면서 자유롭고 좀 더 창조적입니다. 사진이야말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예술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이 인생의 해방구인 셈인가요. 그렇죠. 사진은 무엇보다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어요. 영화는 500만, 1000만 명을 목표로 하기도 하고 TV와 DVD 그리고 외국 상영관 관객까지 생각하면 몇억 명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관객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제게 힘을 주고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부담이 있죠. 그 와중에 지속적으로 사진 작업을 병행한 건 제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투자자나 제작자에게 은행 이자보다는 높은 이익을 돌려줘야 하는 것’이 상업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직업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상업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시작하는데, 혹시 사진작가의 직업윤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셨나요? 사진에서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막상 해보니 큰 규모가 아닌데도 전시 하나 올리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았어요. 부담은 되지만 한자리에서 모든 작품을 판매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요. 꾸준히 사진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입지를 굳혀나가다 보면 긴 안목으로 볼 때 갤러리에 피해를 주진 않겠다는 생각을 합니다.(웃음)





Face 6, Backlit Film, LED Lightbox, 110 X 75cm(여백 포함), 2016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라이카에서 주최하는 사진전에 참여한 적이 있어 라이카를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작가님이 처음으로 만난 카메라는 무엇이고, 어떤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시나요?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아버지의 아사히 펜탁스 카메라를 사용했고, 대학에서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제 카메라가 생겼습니다. 니콘 FM이었죠. 20년 전 처음 만난 이후로는 라이카도 자주 사용하지만, 다른 브랜드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재학하며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셨는데, 당시 즐겨 찍던 피사체와 지금 관심을 갖는 피사체의 차이점이 있나요? 거의 비슷해요. 놀라우리만큼 발전이 없다고나 할까요?(웃음) 학교에서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할 때는 다큐멘터리적 성격이 강한 거리 위주 사진과 공간 속 인물을 중심으로 촬영했는데 저는 인물보다는 풍경에, 그 안에 놓인 사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 취향은 지금도 같고요. 인물이 가끔 들어가는 사진도 있지만, 어두워서 얼굴이 안 보이거나 인물이 너무 작아 눈에 띄지 않는 식으로 촬영합니다.

관객 입장에선 영화감독 박찬욱이 영화 안에서 인물을 해석하고 담아내는 미학적 방식을 관찰하는 재미가 큽니다. 그런데 사진에서는 인물을 촬영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영화에서 늘 인물을 다루기에 사진에서는 조금 다른 걸 하고 싶은 것 같아요. 물론 영화는 배우와 미리 계획한 뒤 표정을 짓지만 실제로 배우가 아닌 사람들,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라면 다를 수 있겠죠. 그런데 아직까진 큰 흥미가 없어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까지 복수 3부작을 만든 뒤 가벼운 영화가 하고 싶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었고, 그러다 <박쥐> 이후 미국에서 연출을 제안받아 <스토커>를 만들었습니다. 여자 배우와 여성 스태프에 둘러싸여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에 관심이 생겨 <아가씨>를 만들기도 하셨고요. 개인적 관심이 이동하는 곳에서 늘 새로운 영화가 탄생했는데, 사진 작업에서는 관심의 변화가 크지 않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저도 사진과 영화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처음엔 완전히 별개의 활동인 것 같았죠. 그래서 사진작가로 활동할 때는 다른 이름을 쓸까도 고민했어요. 이번 전시를 열면서 사진집도 같이 냈는데, 사진집에 들어가는 바이오그래피에 영화 경력을 모두 뺄까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둘이 별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찬욱이라는 한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추구하는 이미지에 연결점이 있었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초현실주의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는 점이 그래요. 하지만 영화와 사진은 서사 유무에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것 같긴 합니다.

영화 <아가씨>에서 김민희가 연기한 히데코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우연히 촬영한 기다란 흰털 고양이 사진이라는 에피소드는 유명합니다. 평소 촬영한 사진이 영화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이 자주 있나요? <아가씨>에서 조진웅 씨가 책상 앞에서 문소리씨와 어린 히데코를 혼낼 때 장갑 낀 손으로 그 두명의 얼굴을 짓이기는 장면이 있어요. 의상 테스트를 촬영할 때 제가 조진웅 씨를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조진웅 씨의 손 모양과 크기가 눈에 들어와 그런 상황을 연출하게 됐죠. 후반 작업 중인 <헤어질 결심>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어요. 바닷가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나는데, 그 바다를 찾기 위해 국내 해변을 거의 다 돌아다녔지만 결국 못 찾았어요. 그러다 제가 예전에 해변을 찍은 사진을 검토하던 중 스태프에게 “여기 다시 가보자”고 해서 결국 그곳에서 중요한 장면을 찍었죠. 유럽 어느 골목의 지하도에서 찍은 사진에서 발견한 벽 색깔 같은 걸 미술감독에게 보여주고 그걸 바탕으로 세트를 만들기도 합니다.

CGV 용산아이파크몰에는 박찬욱 헌정관이 있습니다. 헌정관 오픈 당시 몇 가지를 부탁하셨다고요. 무엇보다 헌정관 공간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교체하며 상설 사진전을 열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관 앞쪽 벽에 제가 영화에서 사용한 소품이나 의상 등을 전시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지나간 것을 진열하기보다는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는 창작자로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어요. 매회 여섯 점의 사진을 전시하는데, 액자도 조립 가능한 것으로 제작해 넉 달에 한 번 사진만 교체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아이패드엔 대략 8300장의 사진 작품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중 여섯 점을 고른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일단 여섯 점밖에 되지 않다 보니 오히려 쉬워요. 대단한 리뷰를 바라는 전시라기보다 영화 관객을 위한 것이기에 재미있고 아기자기하며 귀여운 사진을 고르려고 해요. 소재나 컬러, 피사체 등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창작자라면 생산 행위뿐 아니라 선정과 배열, 더하고 빼는 작업까지 모든 창조 과정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영화와 매우 비슷한 작업이죠.





Face 3, Digital C-Print, 111 X 111cm(여백 포함), 2013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Face 16, Backlit film, LED Lightbox, 110 X 75cm(여백 포함), 2013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번 전시 <너의 표정(Your Faces)>에서 선보이는 작품의 제목 대부분이 ‘표정(Face)’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자연 풍경과 건물, 사물에 각자 그 순간의 고유한 생동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읽어내는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생명을 지닌 존재로 느껴질 테고, 심지어 감정을 지닌 존재로 보이겠죠. 저는 제 사진이 관객에게 자신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특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용을 하길 바랍니다. 관념적 해석이 아니라 즉각적 반응 같은 것 말이죠. 제가 작품에 ‘표정’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때 관람객이 ‘이 사진은 과연 무슨 표정일까’ 생각하며 더 유심히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마치 초대의 의미처럼요.

이번 데뷔 무대에 소개하는 사진은 어떤 과정과 기준을 통해 선별하셨나요? 이번 전시는 덜어내는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필름 시절 작품과 절, 나무, 뮤지엄을 촬영한 작품도 뺐습니다. 그렇게 덜어내고 남은 사진 중 비교적 제 세계가 잘 드러나는 30여 점을 골랐어요. 대신 같은 이름으로 발간하는 사진집에는 100점 이상 들어갑니다. 좀 더 폭넓게 감상하고 싶은 분은 사진집을 보면 좋을 것입니다.

시리즈적 작품을 다 제외하면 산발적 이미지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제 눈엔 일관된 하나의 세계로 보이는데 흑백과 컬러, 한국과 외국, 실내와 실내가 섞여 있어 산만하다고 느끼는 관람객도 있겠죠. 풍성하고 다양하게 볼 수도 있고요.

2002년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내놓으며 “내 영화에 일관성이 없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만든 영화 같지 않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전시의 작품 사진에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전하는 메시지가 매우 다양했어요. 통일성보다 자유분방한 전시를 추구하는 듯했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영화도 그래요. 어떤 분은 제 영화가 매번 다르다 하고, 어떤 분은 대충 봐도 누구 영화인지 알겠다고 합니다. 저는 영화를 매번 다르게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감독이 누군지 모르고 보면 눈치채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짐작일 뿐,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산만하지 않은 선에서 각각의 작품에 최적의 종이를 고민해 다르게 사용하기도 했고, 액자 재질도 조금씩 달라요. 하지만 그 안에서 일관성을 추구했죠.





Face 45, Archival Pigment Print, 111 X 111cm(여백 포함), 2015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Face 107, Digital C-Print, 80 X 80cm(여백 포함), 2013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작품을 보니 그간 봐온 ‘박찬욱의 영화’와 동생 박찬경 작가와 협업한 ‘파킹찬스의 영상 작업’ 등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관람객에게 시각적 자극과 함께 후각과 청각, 촉각까지 자극하는 어떤 지점을 발견했죠. 예를 들어 소파 작품 ‘Washington D.C.’(2013)를 보면 이 공간의 공기가 느껴지는 듯해요. 벨벳 소파에 제 다리가 닿을 때의 촉감도 상상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빨간 자동차와 푸른 관엽식물이 한 앵글에 들어 있는 ‘Face 3’(2013)도 차에 시동이 걸린 것 같은 상상을 했어요. 화면 밖 덜덜거리는 배기통으로 매연이 뿜어 나오고 있을 것 같은 율동감이 느껴지죠. 제 사진에서 매우 중요한 목표입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영화는 우리가 겨우 보고 들을 수 있을 뿐이지만, 배경이나 소품의 텍스처가 손가락에 느껴질 것 같은 화면이라거나 어떤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일으키는 거죠. 제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시하는 목표 중 하나입니다. 사진도 똑같아요. 제 사진에서 그런 부분을 관람객이 느끼길 바라죠.

“내 영화는 모든 걸 인공적으로 꾸민 결과물이지만, 내 사진은 의도적으로 미장센을 만든 듯해도 실은 우연히 그대로를 마주친 것뿐입니다.” 이처럼 작가님의 사진은 모두 우연한 순간과 찰나를 촬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이 사진들이 오랜 시간 공들인 초상화나 정물화 또는 설치미술처럼 보입니다. 왜 이런 착각이 드는 걸까요? 그것도 중요한 포인트예요. 저는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물건이나 절경이 아닌 것을 사진으로 영원히 기록하고, 관람객은 제 사진을 보며 그 피사체가 절대 하찮지 않은 뭔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영화 속 주인공이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을 하고 잘 꾸민 것처럼 제 피사체도 그렇게 보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인화도 너무 작지 않은 사이즈로 했고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많은 사진작가가 오랜 기다림도 불사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작가님도 한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는 편인가요? 기다릴 때도 있지만, 가급적 다른 곳을 돌아보다 다시 그 장소에 가보는 편이에요. 기다리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걸으면서 다른 놀랄 만한 것을 찾는 타입이죠.





10월 1일, 드디어 전시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 시사회와 전시 오프닝 중 어떤 것이 더 긴장되시는지? 데뷔 무대라고 생각하니 전시가 더 긴장됩니다. 어디에 어떤 크기의 작품을 걸어야 할지 생각하느라 전시장에 가봤는데, 국제갤러리 부산이 위치한 F1963이란 장소가 참 좋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정원이 매우 아름다웠어요. 그런 곳에서 전시를 할 수 있어 기쁩니다. 그리고 영화는 일단 오픈하면 도시마다 무대 인사를 다녀야 해서 몹시 지치는데, 전시 오프닝은 한 번에 끝나서 더 좋아요.(웃음)

작가님은 단조로움을 못 견디는 성향이죠. 영화에서도 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더 가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사진 작업이 있나요? 제가 꾸준히 촬영하고 있는 절, 나무, 뮤지엄 등의 시리즈 작품이라든지 영화 현장에서 촬영하는 배우의 사진을 선보일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좀 더 나아가 거리에서 만난 사람, 평범한 주변 사람의 포트레이트를 촬영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아직 구체적이진 않습니다.

지금까지 하신 말씀처럼 작가님에겐 영화 촬영장, 미술관, 거리, 골목, 숲 등 발 닿는 모든 장소와 그곳에 놓인 사물이 모두 피사체입니다. 그중에서도 ‘박찬욱의 렌즈’를 들게 하는 특별한 순간을 마지막으로 고백하신다면요.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늘 빛나는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좋은 평가만 받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 자기만의 아름다움과 매력, 미덕을 갖췄죠. 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아주 우연한 순간, 어떤 이유에서든 남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되는 그런 놀라운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카메라를 들고 그런 걸 찾아다니고요. 딱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어요. 그날의 날씨와 태양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런 의미에서 사진이란 ‘내가 그 순간 거기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영원히 볼 수 없는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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