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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9

새로운 키워드, 크로스 드레싱

남성과 여성을 나누지 않는 지금. 성의 경계 없이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크로스 드레싱'이 떠오른다.

위쪽 충무아트센터에서 10월 31일까지 열리는 뮤지컬 <헤드윅>의 한 장면. 배우 이규형이 열연하고 있다. 사진 제공 쇼노트
아래 왼쪽 마르셀 뒤샹은 가상의 인물 로즈 셀라비를 만들어 또 하나의 페르소나로 상정했다.
아래 오른쪽 1981년 크리스토퍼 마코스가 촬영한 앤디 워홀의 ‘레이디 워홀’. 마르셀 뒤샹의 ‘로즈 셀라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최근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나뉜 남성과 여성이 아닌 자신이 어떤 성에 속할지 선택할 수 있고(트랜스젠더), 또 성이 없음(젠더리스)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나 젠더퀴어(Genderqueer), 젠더리스(Genderless) 같은 용어와 개념이 익숙해진 만큼 속속 들려오는 용어가 또 하나 있다. 바로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 이는 주로 남성이 여성 복장을 하거나 여성이 남성 복장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기에 취향과 기호로 복장을 선택하는 것, 축제나 행사에서 유희 목적으로 변신하는 드래그 등이 대체로 이에 속한다. 여성과 남성 상관없다지만, 아무래도 남성이 여성 복장을 하는 경우를 말할 수밖에 없다. 젠더와 관련한 이슈가 쏟아져 나오는 만큼 크로스드레싱 역시 최근에 생긴 개념일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리스 . 로마 신화만 놓고 봐도 여성 복장을 한 헤라클레스 이야기가 나온다. 17세기 프랑스 외교관이자 간첩이던 슈발리에 데옹처럼 장년까지는 남자로, 말년에는 여자로 산 역사적 인물도 찾아볼 수 있다.
대체로 많은 사람이 이러한 크로스드레싱을 트랜스젠더와 연결 짓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여성에게는 여성성을, 남성에게는 남성성을 강조해왔다. 단적으로 여전히 여자아이에게는 분홍색 옷을, 남자아이에게는 파란색 옷을 입힌다. 또 여자아이에게는 인형을 쥐여주는 반면, 남자아이에게는 각종 장난감 총이나 로봇을 선물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크로스드레싱의 대명사 격인 영국 현대미술 작가 그레이슨 페리는 저서 <남자는 불편해>에서 사회적으로 남녀의 감성적 . 정서적 고정관념이 얼마나 지독한지 드러낸다. ‘남성’으로 한정 지어 이야기하지만 그는 현대 남성과 여성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 모두를 위해 각 성의 의미는 어떻게 업그레이드되어야 할지 질문을 내놓으며 이것이 사회문제임을 강조했다.
물론 크로스드레싱과 트랜스젠더가 아예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크로스드레싱, 드래그퀸 같은 키워드에서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릴 법한 영화이자 뮤지컬 작품 <헤드윅>.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배우들의 화려한 분장과 의상만큼 내용 역시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볼 만하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던 해 태어난 주인공 헤드윅의 원래 이름은 한센으로, 동독에서 자랐다. 어릴 때 아버지와 어른들에게 성적 학대를 받으며 불우한 시절을 보내던 중, 미국에서 온 군인 루터 로빈슨을 만나 미국 이민을 위해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수술에 실패해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는 결코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이자 ‘반쪽’을 찾는 처절한 여정과 다름없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헤드윅을 트랜스젠더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젠더가 없는 보통 인류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결국은 이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닌 누군가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과 긴밀히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2012년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린 <마스커레이드 >전에 소개된 찰스 아틀라스의 1998년 작 ‘Teach’.
오른쪽 미국 역사상 최고의 작곡가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어빙 벌린이 만든 ‘This is the Army, Mr. Jones’를 공연하는 크로스드레싱 댄서.

크로스드레싱을 통해 정체성을 논할 때 예술가를 빼놓을 수 없다. 첫 번째는 마르셀 뒤샹. 그는 로즈 셀라비(에로즈 셀라비)라는 유대인 여성을 만들어내고, 이를 자신의 또 다른 페르소나로 상정했다. 만 레이가 촬영한 로즈 셀라비를 시작으로 나중에 작품의 주인공이 되기도, 작가가 되기도 하는 등 완전한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 활동하게 된다. 뒤샹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생물학적 정체성인 ‘남성’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대신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나를 옭아매는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앤디 워홀 역시 여성으로 분장해 크리스토퍼 마코스와 함께 ‘레이디 워홀’ 시리즈를 남겼다. 이 작품은 2012년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자기 변형과 변장 등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가를 소개한 기획 전시 <마스커레이드>에 소개되었다. 워홀은 가발과 짙은 메이크업, 여성적 포즈를 취함으로써 이중적 성 정체성을 드러내고, 젠더의 경계를 흐리며 고정된 성 관념에 대한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사회적으로 크로스드레싱, 젠더리스, 젠더플루이드에 대한 이야기가 심화된 만큼 패션계도 이를 적극 반영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그중 구찌가 대표적인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영화감독 구스 반 샌트가 디렉팅한 일곱 편의 미니 시리즈 형태로 공개한 ‘끝나지 않는 무언가의 서막’이 그것. 로마를 배경으로 배우이자 행위예술가 실비아 칼데로니가 참여했는데, 여성인지 남성인지 드러나지 않는 얼굴과 신체를 지닌 그녀는 젠더리스와 크로스드레싱을 추구하는 인물. 양성성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프로젝트는 다른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앞으로 우리 사회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에 대해 우아하게 짚어낸다.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어디에도 얽매일 필요 없다는 것이 크로스드레싱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이에게 공통으로 드러나는 태도다. 우리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갖는 고정관념이 있다. 이를 깨부수기 위해서는 처음 거부감과 이질감을 이겨내야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사고를 자유롭게 확장한 이들의 용기를 생각하며, ‘나는 과연 누구인지’ 스스로 질문해보자.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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