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를 만든 작가가 남긴 마지막 사랑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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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8

'LOVE'를 만든 작가가 남긴 마지막 사랑

통통 튀는 ‘LOVE’ 조각상 시리즈로 유명한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 2018년 타계한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Photo: Courtesy of Dennis and Diana Griggs, Maine Robert Indiana in His Studio, Vinalhaven, Maine, 1998

로버트 인디애나
1928년 미국 인디애나주 뉴캐슬에서 태어나 2018년 바이널헤이븐에서 세상을 떠난 팝아티스트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스코히건 회화 조각 스쿨, 에든버러 칼리지 오브 아트 등에서 수학하고,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휘트니 미술관 회고전을 비롯해 굵직한 전시에 참여했고 뉴욕 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쾰른 루트비히 뮤지엄, 예루살렘 이스라엘 뮤지엄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The Electric EAT, Polychrome Aluminum, Stainless Steel, and Light Bulbs, 78×78×7in. (198.1×198.1×17.8cm), 1964~2007, Edition of Five Plus Two Artist Proofs.
Photo: Courtesy of Tom Powel Imaging/RI Catalogue Raisonné LLC; Artwork: ⓒ Morgan Art Foundation Ltd./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로버트 인디애나의 조각 ‘LOVE’만큼 대중적으로 유명한 팝아트 작품이 또 있을까? ‘LOVE’를 탄생시킨 주인공인 로버트 인디애나는 화가, 조각가, 판화가이자 디자이너다. 특히 의상, 우표, 보석, 무대, 그래픽 등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탁월한 기량을 뽐냈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미국 인디애나주 뉴캐슬에서 태어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The Art Institute of Chicago)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칼리지 오브 아트(Edinburgh College of Art) 등에서 공부하고 1950년대 초에 뉴욕으로 이주했다. 본명은 로버트 클라크지만 이미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는 인물이 있었고, 그래서 그의 정체성이기도 한 고향의 지명을 따와 로버트 인디애나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그는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예술가와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품 세계를 넓혀갔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동기인 클라스 올든버그(Claes Oldenburg)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을 소개해주었다. 두 아티스트는 동성애자를 기피하는 시대에 동성애자로 살면서 겪은 극심한 결핍과 가난한 유년 시절의 경험 등 여러 공통점을 공유하고 예술적 영감을 나누며 가깝게 지냈다. 1964년에는 앤디 워홀이 만든 단편영화 [eat]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고, 그의 유명한 네온사인 작품 ‘EAT’도 영화에 함께 등장시켰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바로 동료 아티스트이자 연인인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다. 원래 로버트 인디애나는 비유적 구상화에 관심을 두고 스스로 ‘반추상화주의자’로 여겼지만, 엘스워스 켈리의 조언으로 추상화에 발을 들였다. “엘스워스 켈리는 내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그를 따라 스튜디오를 옮기기도 했고, 당시 새 스튜디오에서 애그니스 마틴(Agnes Martin)과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 등과도 영향을 주고받았다.

정치 참여적 성향을 보인 그는 팝아트 운동의 소비주의적 성격에 반대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나갔다. 그의 디자인은 이상주의적이고 자유로운 1960년대를 상징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감각이 돋보였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배운 다양한 판화 기법을 활용했으며, 단순한 형태와 선명한 색상을 표현하는 데 걸맞은 매체인 스크린 프린트에 정착해 여러 작품을 남겼다.

주로 교통표지판이나 간판, 광고판, 상업적 로고 같은 간결하고 명료한 기하학적 추상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은 엘스워스 켈리가 선보인 하드에지 기법, 즉 195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 성행한 기하학 형태의 선명한 색면으로 나누어 그리는 추상화 계열에 속하며, 부드럽고 화려한 구상형의 뉴욕 팝아트와는 결을 달리했다.





AMOR, (Red Yellow), Polychrome Aluminum, 96×96×48in. (243.8×243.8×121.9cm), 1998~2006, 1998~2006, Edition of five plus two artist proofs
Photo: Courtesy of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RI Catalogue Raisonné LLC; Artwork: ⓒ Morgan Art Foundation Ltd./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The Electric LOVE, Polychrome Aluminum with Light Bulbs, 72×72×36in. (182.9×182.9×91.4cm), 1966~2000, Private collection.
Photo: Courtesy of Tom Powel Imaging/RI Catalogue Raisonné LLC; Artwork: ⓒ Morgan Art Foundation Ltd./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대표작 ‘LOVE’는 로버트 인디애나가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의뢰로 크리스마스 카드에 인쇄할 그림을 디자인하면서 시작했다. 알파벳 LO를 윗줄, VE를 아랫줄에 두 줄로 배열하고 O를 옆으로 45도 비스듬히 기울였으며, LVE는 셰리프(serif) 스타일로 완성했다. 원본 이미지는 선명한 녹색과 파란색이 번갈아 나타나는 공간에 굵은 빨간색 글씨가 눈에 띄게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이후 ‘LOVE’는 판화, 회화, 조각, 현수막, 반지, 태피스트리, 정부 발행 우표 등으로 재탄생하며 대중의 시야에 빠르게 각인됐다. 특히 1970년에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Indianapolis Museum of Art)에서 대형 강철 조각으로 선보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 조형물 중 하나가 됐다. ‘러브 공원(Love Park)’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플라자 앞을 비롯해 뉴욕, 싱가포르, 타이베이 등 세계 주요 도시와 건축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고, 주변 환경에 팝아트의 재치 있는 감성을 더하며 분주한 도시를 밝은 컬러로 물들였다. 워낙 인기가 높아 히브리어와 스페인어 등 다른 국가의 언어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서울 명동 대신파이낸스센터 앞에서도 ‘LOVE(Blue Faces Red Sides)’를 볼 수 있다.

저명한 미술사가 주디스 헤클러(Judith Heckler)는 ‘LOVE’에 대해 “접근하기 쉽지만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다. 에로틱하면서 종교적이고 자전적이며 다양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HOPE’, ‘ART’ 등 다양한 알파벳과 숫자 조각을 스케일과 색상은 각각 다르지만 항상 기울어진 문자를 포함한 셰리프 스타일로 제작해 세상에 선보였다.

1970년대 후반 로버트 인디애나는 뉴욕을 떠나 메인주 바이널헤이븐의 외딴섬으로 이주해 작업에 몰두하며 여생을 보냈다.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고 예술계와도 점점 교류하지 않은 채 지냈지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 공식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등 정치적 대의에 동조했고, 많은 대규모 전시에 참여하며 그의 명성을 입증했다. 특히 2013년 9월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그의 대규모 회고전 [Robert Indiana: Beyond LOVE]가 열릴 때,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에 담긴 여러 기호와 상징성을 재평가하면서 팝아티스트로서 후대에 끼친 로버트 인디애나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세상에 각인했다. 그뿐 아니라 매일같이 세계 곳곳에 자리한 그의 감각적인 작품을 마주하는 대중의 삶 속에서 로버트 인디애나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백아영(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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