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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8

떠오르는 예술의 성지, 핀란드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헬싱키 비엔날레를 소개한다.

다프나 마이몬의 ‘Indigestibles’(2021). ⓒ Maija Toivanen/HAM/Helsinki Biennial 2021

핀란드에서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는 최초의 비엔날레가 열렸다. 지난 6월 12일 개막, 9월 26일까지 수도 헬싱키와 주변 군도 중 발리사리(Vallisaari)섬에서 열리는 제1회 헬싱키 비엔날레(Helsinki Biennial)가 바로 그것. 헬싱키 비엔날레는 본래 지난해 여름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핀란드, 영국, 미국, 독일, 폴란드, 라트비아, 터키, 캄보디아, 태국, 한국, 일본 등의 작가 41명(팀)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작품의 약 75%가 헬싱키 비엔날레를 위한 커미션 작업인 동시에 장소 특정적 작업으로 오직 이곳에서, 이 시기에만 볼 수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헬싱키 비엔날레가 내세운 주제는 ‘동일한 바다(The Same Sea)’. 상호 연관성에 대한 메타포로 각각의 존재와 행동이 다른 무언가에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곧 전체를 지탱한다는 의미다. 비엔날레 초대 공동 큐레이터인 피르코 시타리(Pirkko Siitari)와 타루 타폴라(Taru Tappola)는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구에서 우리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재고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의 생존이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는데, 오늘날 인류가 기후변화와 코로나19 사태라는 위기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이 주제는 한층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천경우의 ‘Bird Listener’(2021). ⓒ Maija Toivanen/HAM/Helsinki Biennial 2021





제1회 헬싱키 비엔날레 큐레이터 타루 타폴라(왼쪽)와 피르코 시타리(오른쪽). ⓒ Matti Pyykkö/HAM/Helsinki Biennial 2021





사미르 브호브미크의 ‘Lost Islands’(2021). ⓒ Maija Toivanen/HAM/Helsinki Biennial 2021

헬싱키 비엔날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행사 장소다. 헬싱키 항구에서 페리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발리사리섬은 20세기 핀란드의 역사가 응축된 곳이다. 중세부터 약 600년간 스웨덴왕국의 통치하에 있었던 핀란드는 근대기 들어 러시아제국에 약 100년간 자치국 지배를 받았다. 스웨덴과 러시아는 핀란드를 전장 삼아 패권을 다퉜고, 전쟁의 아픔과 슬픔은 핀란드 국민의 몫이었다. 자유와 독립을 꿈꾸던 핀란드는 1917년 러시아에서 독립했다. 러시아의 군사 요새로 사용하던 발리사리섬은 독립 후엔 핀란드 국방부의 군사기지이자 무기고로 쓰였다. 군 관계자가 1996년 섬을 떠난 뒤 2016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불가능했는데, 그 때문에 자연 생태계와 역사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처럼 역사적·지정학적 의미가 남다른 발리사리섬은 헬싱키 비엔날레를 통해 대중과 한층 가까워졌다. 참여 작가들이 섬에 얽힌 이야기를 전시 주제, 자신의 예술 세계와 엮어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 것. 대표적으로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핀란드 작가 다프나 마이몬(Dafna Maimon)은 섬의 한 지하 창고에서 ‘Indigestibles’(2021)를 통해 인간과 몸의 복잡한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작가는 셸리(Shelly)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그녀의 비협조적인 소화 체계를 탐구하고, 박테리아와 음식이 범람하는 몸속 풍경을 퍼포먼스 무대이자 설치 작품으로 제작했다. 이는 관계에 대한 시각과 함께 삶의 의미와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소화불량을 앓는 현대인의 컨디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편, 옛 화약 저장고도 하나의 작품이 되어 관람객을 맞이했다. 핀란드 작가 투오마스 라이티넨(Tuomas A. Laitinen)은 이 공간을 외계 생물체의 거주지인 ‘프사이존’(2021)으로 꾸며 다종의 관계와 공존을 제안한다.





투오마스 라이티넨의 ‘ΨZone’(2021). ⓒ Maija Toivanen/HAM/Helsinki Biennial 2021





알리차 크바데의 ‘Big Be-Hide’(2019). ⓒ Maija Toivanen/HAM/Helsinki Biennial 2021

섬 전체를 무대로 삼은 탐험형 퍼포먼스 작품도 눈길을 끈다. 다학제적 아티스트이자 건축가 사미르 브호브미크(Samir Bhowmik)의 ‘Lost Islands’(2021)는 숲, 수로, 벙커, 폐허 등을 가로지르며 인간이 어떻게 사회 기반 시설과 기술을 통해 자연을 소유하는지 깨닫게 한다. 천경우 작가의 두 작품 ‘Bird Listener’(2021)와 ‘Island of Island’(2021)는 관람객 참여를 수반한다. 그는 각 작품에서 공감에 기반한 여러 상황과 만남을 통해 관람객이 발리사리섬과 비엔날레라는 예술 축제를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유도했다. 독일 작가 카타리나 그로세(Katharina Grosse)는 보다 적극적으로 발리사리섬에 개입했다. 유독성 화학물질에 오염되어 버려진 옛 학교 건물을 캔버스로 활용한 회화 작품 ‘Shutter Splinter’(2021)를 선보인 것. 그녀가 구사하는 시각적 기법은 비엔날레 이후 철거될 건물과 시간의 흐름에 반응하는 주변 초목을 휩쓸었는데, 문화적 기억과 자연의 생장 과정이 교차하며 담론을 생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장소 특정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작품은 섬 동쪽에서도 만날 수 있다. 폴란드 태생의 독일 작가 알리차 크바데(Alicja Kwade)는 ‘Big Be-Hide’(2019)와 ‘Pars pro Toto’(2018)를 설치했다. 특히 섬의 해안가에서 돌을 채집해 완성한 ‘Big Be-Hide’는 자연의 돌과 인공 바위 사이에 양면 반사 거울을 두어 현실과 경계에 대한 의문점을 던진다. 두 작품은 헬싱키 비엔날레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예술 축제를 위해 공공 미술 작품으로 영구 설치될 예정이다.
헬싱키 비엔날레는 단순히 예술 작품만 전시하는 행사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다양한 모습과 가치에 응답한다. 인류가 당면한 현실 문제 앞에서 미래를 위한 대안적 프레임을 제공하는 것이 이 행사의 궁극적 목표다. 북유럽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이니셔티브이자 플랫폼으로 헬싱키 비엔날레가 어떻게 기능할지 궁금해진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헬싱키로 향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생겼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이정훈(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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