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피아노 연주를 위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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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8

완벽한 피아노 연주를 위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완벽한 연주를 위해서 잘 세팅된 피아노가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이세호 마이스터를 찾는 이유다.

우리나라 문화 예술의 중심지 예술의전당 맞은편에는 클래식 감성이 가득한 골목이 있다. 바로 서초동 악기 거리. 1988년 우면산 일대에 예술의전당이 자리 잡은 뒤 악기 상점과 연습실, 공연장이 하나둘 들어서며 현재 모습을 갖췄다. 언제 어디서나 악기 가방을 멘 사람을 마주칠 수 있고, 부드러운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오는 이곳엔 이세호 마이스터의 피아노 공방, 마이스터 클랑(Meister Klang)이 있다.
“2018년 여름 악기 거리를 지나다 지금 공방 자리가 비어 있는 걸 봤어요. 계획에 없었지만 알 수 없는 끌림에 덜컥 계약했죠. 참고로 공방 이름인 클랑(Klang)은 독일어로 ‘울림’이라는 뜻으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입니다. 이후 독일과 한국을 오가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귀국했습니다.” 독일에서 주로 활동하던 이세호 마이스터의 귀국은 국내 클래식 관계자에겐 희소식이었다. 그는 독일 정부에서 피아노 조율·제작 전문 마이스터로 정식 인정을 받은 몇 안 되는 한국인이자, 1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피아노 제조사 스타인웨이앤드선스(Steinway & Sons, 이하 스타인웨이) 정직원으로서 연주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유일한 비유럽계 현장 요원이다. “한국은 높은 클래식 수준에 비해 피아노 공방이 적은 편이에요. 과거 학습 도구로서 보급형 피아노가 많이 들어오다 보니 망가지면 교체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 같기도 하고요. 조율이나 수리를 주로 하는 컨셉의 공방은 한국에서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업계 전체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만큼 공방을 운영하는 그에게 지금 이 시점이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을 터. 하지만 이세호 마이스터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한다. “온라인 콘서트나 앨범 작업이 늘어나면서 연주자들이 음향 문제에 좀 더 신경 쓰고 있어요. 라이브 공연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던, 연주 테크닉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녹음한 것으로는 들리니까요.” 매뉴얼에 따라 피아노를 안정화하는 것을 넘어, 연주자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피아노 세팅은 종합적 ‘음향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이세호 마이스터는 대학에서 클래식 음악이 아닌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음향 공학을 공부하던 중 피아노 제작에 관심을 가졌고, 독일이 악기의 천국이자 마이스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독일에서 피아노 제작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여러 곳으로 편지를 보냈죠. 그중 딱 한 사람, 스타인웨이 에이전트이기도 한 피아노 마이스터 니콜라우스 메츠가 2005년 저를 받아줬습니다. 어학 비자가 만료될 때도 고민 끝에 저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준 은인입니다. 2007년에는 피아노 제작 학교인 오스카 발커 슐레(Oscar Walcker Schule)에 입학했습니다. 이곳에서 3년 6개월 과정을 마치면 게젤레(geselle, 숙련공)가 되고, 추가로 2년의 마이스터 과정을 밟아 독일 정부가 주관하는 시험까지 통과해야 비로소 마이스터(meister, 장인)라는 칭호를 얻습니다.”
이쯤에서 간과하면 안 될 사실 하나. 이세호 마이스터는 스타인웨이에서도 정예로 손꼽히는 현장 요원이라는 점이다. 스타인웨이가 어떤 회사인가. 이견이 없는 최고 피아노 브랜드로 세계 주요 공연장엔 빠짐없이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놓여 있다. 아르헨티나의 피아노 거장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스타인웨이는 이따금 피아니스트보다 더 잘 연주하는 신기하고 놀라운 마법을 부린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는 스타인웨이의 특별함은 평범함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스타인웨이에선 ’Steinway kocht auch Wasser(스타인웨이도 물을 끓인다)’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어떤 마법을 부리는 게 아니라 오랜 노하우를 기반으로 완성도를 높인다는 말이에요. 물론 스타인웨이는 상상 이상의 큰 비용을 연구 개발에 투자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은 부분까지 개선하려 하고, 클래식 트렌드나 연주자 피드백을 반영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죠.” 과거 영광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려는 자세가 현재의 스타인웨이를 만들었다는 말씀!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조율하는 이세호 마이스터.

스타인웨이 소속으로 이세호 마이스터는 프랑크푸르트 음악 대학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하우스, 도이치뱅크 본사 VIP 살롱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전속 조율했고, 리스트 국제 콩쿠르에서도 스타인웨이 테크니션으로 활약했다. 랑랑, 알리스 사라 오트 등 유명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피아노가 그의 손을 거쳤다. “헬무트 도이치와 있었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습니다.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그는 피아노 해머를 깎아 직접적 소리 변화를 주길 바랐는데, 곧 있을 다른 연주자의 스케줄을 고려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안 된다고, 대신 다른 기계적 조정으로 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죠. 결국 그의 요구대로 소리를 만들긴 했어요. 제가 제안한 방법이었지만. 헬무트 도이치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을 거예요.(웃음)”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이세호 마이스터는 인터뷰 내내 겸손함을 보였다. 특히 자신이 ‘아티스트’라는 생각을 경계한다고. “연주자 의견이 가장 중요해요. 제 눈에 개선할 부분이 보여도 함부로 손을 대진 않습니다. 피아노엔 연주자의 취향과 감성, 추억이 담겨 있으니까요.” 주어진 시간 내 현실적으로 조율 가능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독일에서 피아노는 정밀 기계로 분류합니다. 그만큼 섬세한 악기예요. 급하게 한 부분을 수정하면 다른 곳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죠. 특히 한국은 연주회 당일 조율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연주자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면 그들이 원하는 소리를 충분히 만들 수 있어요. 예컨대 함께 자주 일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나 이진상 씨는 제게 미리 연주 프로그램과 함께 중요 포인트를 말해줍니다.” 그는 연주자와 마이스터의 관계에 대한 의견도 덧붙였다. “의상을 맞출 때 전체적 실루엣부터 어깨선 같은 디테일까지 디자이너와 세세하게 상의하잖아요. 피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피아노라도 원하는 느낌을 내려면 연주자 본인의 고민이 필요해요. 저는 그 노력을 거드는 역할을 하고요.”
연주자와 소통을 중시하는 이세호 마이스터의 철학은 공방 운영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독일에서 경험한 하우스 콘서트 문화를 가져와 공방 콘서트와 크나이페(Kneipe)를 열고 있습니다. 독일어로 선술집을 뜻하는 크나이페에서는 연주자의 라이브 공연을 배경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연주자에게 음악적 고민을 듣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기도 하고요.” 피아노를 만지는 일이 곧 취미라는 그는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한 마이스터 클랑에서 새로운 실험에 몰두한다. “연주자들이 말하는 1%의 아쉬움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간혹 마이스터라는 수식어가 무겁게 느껴지지만, 저는 이것이 단순히 기술적으로 완성된 사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수를 발전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자격으로 여기고 매일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태도가 스타인웨이 피아노 그 자체로 느껴지는 건 에디터뿐일까? 장인정신이 하루하루 깊어지는 마이스터 클랑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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