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와 지적 통찰이 담긴 <명랑한 은둔자>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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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5

위트와 지적 통찰이 담긴 <명랑한 은둔자>

위트가 담긴 꼼꼼한 문장과 지적 통찰이 느껴지는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의 에세이 <명랑한 은둔자> 표지.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지 못한 것은 작가의 이력 때문이다. 42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생애와 알코올중독 등을 거쳤다는 점에서 미국의 많은 유명 작가가 떠올랐다. 무절제와 천재성을 오가는 진폭, 사랑스럽지만 비극적이었던 영혼 등을 가진 작가들 말이다. 글이야 좋겠지만 읽는 데 적잖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직접 읽어본 글은 정반대였다. 위트가 담긴 꼼꼼한 문장과 지적 통찰까지, 비극적 느낌이라고는 없었다. 물론 <명랑한 은둔자>를 읽는 데에는 어느 정도 에너지가 필요했지만 그건 오로지 그 섬세한 문장들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어서였다. 밤에 기대앉아 충분히 음미하며 읽고 싶은 글이었다. 저널리스트였던 캐럴라인이 <보스턴 피닉스>, <살롱>에 기고한 글은 대인 관계에서 느끼는 수줍음이나 섭식장애 같은 사적 이야기부터 친구와 반려동물,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솔직한 의견까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글을 읽다 보면 ‘은둔자’는커녕 ‘좋은 상담자’나 ‘소통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저널리스트로서 20년 가까운 사회생활을 하고 ‘인생 상담’ 성격의 고정 칼럼을 맡았다니 다소 놀랍기도 했다. 우스운 점은 이미 책날개에도 그런 저널리스트의 이력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단지 그녀의 짧은 생애와 은둔자적 측면만 기억한 셈이다.

나는 왜 은둔자와 저널리스트의 조합을 의외라고 생각했을까? 나만 해도 일이 만든 이미지와 실제 사이에 간극이 있고, 그 간극을 이해 못하는 타인에게 가끔 투덜대기도 하는데 말이다. 사실 많은 현대인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하나로 잘 모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지만 타인에게는 높은 수준의 일관성을 기대하고, 자신은 비교적 일관된 사람이라 착각하며 사는 것. 캐럴라인의 글이 신선한 이유 중 하나는 그런 모습을 일깨운다는 것이다. 자신의 복잡한 면을 솔직하고 뚜렷하게 고백하는 글을 읽다 보면 나 역시 부드럽게 정곡을 찔린다.

가령 나는 ‘수줍음의 옹호’ 편에 깊이 공감했다. 나 역시 슈퍼 주인이 친한 척하면 일부러 한 번 걸러 갈 정도로 수줍음이 많지만, 그녀만큼 세세히 되짚어본 적은 없다. 홀짝홀짝 술을 즐기고 건강염려증도 있지만 그 사실을 드러내놓고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또 캐럴라인처럼, 연세 드신 부모님이 언젠가 세상을 떠날까 봐 잠이 안 오는 날이 많지만 그런 상상을 글로 옮겨볼 용기조차 내지 않았다. 상상이 더 선명해질까 봐.

유려한 문장으로 기록한 비슷한 경험을 읽다 보니 묘하게 안심하게 되었다. 해결책이나 처방전은 나와 있지 않지만, 비슷한 혼란을 겪어온 사람이 그 마음을 껴안고 살아온 섬세한 풍경이 책 속에 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저자에게 느끼는 감정을 ‘우정’으로 표현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냉정해 보이다가도 가끔 따뜻한 진심을 건네는 모습, 수줍은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당당했을 모습이 이 책을 빛나게 한다. 나는 책을 다 읽고, 프랑스 작곡가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가 요절한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Dinu Lipatti)를 추억하며 한 말을 떠올렸다. “그가 청중과 그 자신에게 얼마나 환한 빛을 주었는지, 그것만 기억하도록 합시다.” 캐럴라인의 짧은 생애는 잊고 그녀가 얼마나 자신과 독자들에게 환한 빛을 주었는지, 그것만 기억하고 싶다.

글. 김목인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영미 문학 번역가이기도 하다.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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