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국악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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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18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국악

인싸'가 아니어도 좋다. '아싸'의 DNA를 제대로 즐기는 신세대 국악.

2018년 영국 ‘멜트다운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잠비나이.

“우린 우리 음악을 할 뿐이야. 국악으로 봐주든 아니든 관심 없어.” 주목받은 ‘핫’한 그룹의 얘기다. 국악을 전공하는 1990년생이 그렇다. “중 . 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국악을 10년간 전공했어요. 아무래도 제 음악 속에 국악적인 게 많겠죠?” 말은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난다. “하지만 전통음악을 계승해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대학교수나 인간문화재가 되려고 국악을 한 건 아니니까요.” 2000년대 초만 해도 ‘전통음악의 계승과 발전’을 시대적 사명으로 생각하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처럼 국악을 전공한 데 의미를 두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국악을 하는 젊은이일수록 ‘국뽕’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은 국악판을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이 결코 국악계의 ‘인싸’가 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니 오히려 ‘아싸’가 되어 뭔가 새로운 것을 즐겁게 개척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의미보다는 재미에 더 초점을 둔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가 대표적 예다. 국악의 선율에 반복적 멜로디와 색다른 댄스를 더했고, 여기에 동시대 대중이 열광했다. 너무도 어려워 중독성이 없던 기존 국악 대신 ‘국악 같지 않은’ 새로운 국악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달리 보면, 국악계는 그간 ‘전통’이라는 중압감에 억눌려 즐기는 그 자체로서 음악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한편, 새로운 국악을 만들어가는 길에 이날치 밴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성 강하고 실력이 출중한 그룹도 많다. 그들이 누구냐고? 내가 뽑은 베스트 7은 이렇다.

1 포스트 록, ‘잠비나이’
잠비나이는 ‘유니크’ 그 자체다. 국악기를 이용해 기존 국악과 영 딴판으로 연주한다. 서구의 록과 헤비메탈이 갈 데까지 가서 헤매는 상황에서, 동양의 듣도 보도 못한 악기를 연주하며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이일우(피리, 태평소, 기타), 김보미(해금), 심은용(거문고)은 힘 약한 국악기로 힘센 ‘포스트 록’을 만들어냈다.

2 포스트 재즈, ‘블랙스트링’
거문고의 허윤정 명인을 중심으로 한 블랙스트링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음악은 ‘포스트 재즈’라고 해도 좋겠다. 전통에 대한 이해가 높은 그룹이다. 전통음악이 점차 고정화되는 현실에서 한국 음악의 자율성과 즉흥성을 부각했다. 음악의 분위기는 재즈적인데, 음악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재즈와 다르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입과손스튜디오는 판소리의 예술적 요소를 선택적으로 확장 또는 변형해 ‘포스트 판소리’를 만든다.





첼로가야금의 가야금 연주자 윤다영과 첼로 연주자 김 솔 다니엘. 사진 나승열

3 포스트 판소리, ‘입과손스튜디오’
판소리를 하는 두 사람, 북을 치는 세 사람, 여기에 프로듀싱을 하는 한 사람이 의기투합했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포스트 판소리’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레미제라블>부터 안데르센의 동화까지 폭넓게 접근한다. 이들이 과거에 활동한 국악 창작 그룹 ‘판소리만들기 자’에서 베이스, 키보드 같은 밴드를 동반했다면, 이젠 베이스 따윈 필요 없이 독자적 판소리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Simple is Strong!

4 체온처럼 전해지는 온기의 앙상블, ‘첼로가야금’
달달한 국악은 없느냐고? 캐러멜 마키아토 같은 국악도 있다. 첼로가야금은 오스트리아 출신 첼로 연주자 김 솔 다니엘과 가야금 연주자 윤다영의 조합. 이들의 음악은 ‘포스트 클래식’ 혹은 ‘포스트 뉴에이지’라고나 할까. 최근 여기에 문새한별의 해금이 가세했다. 편하게 듣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세상의 모든 음악’ 애청자의 취향을 저격한다.

5 거리 두기를 통한 존중, ‘불세출’
여덟 명의 젊은 남성 연주자로 구성된 불세출. 아무리 슬픈 곡도 그들이 연주하면 에너지 넘치는 음악이 된다. 이것이 바로 불세출의 미덕이다. 전통음악을 효과적으로 압축하는 능력도 빼놓을 수 없다. 남도(전라도와 경상도), 서도(황해도와 평안도), 경기(서울과 경기도), 동부(강원도)의 전통음악 자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이들은 활동한 지 11년 된 그룹이다. 각자도생으로 서로 다른 음악적 길을 걷다 불세출이란 이름 아래 최소한 만나는데, 이는 불세출의 장수 비결이다. 또 불나비라는 강력한 팬클럽이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만큼 해체하기도 쉽지 않을 듯.





파격적 음악과 비주얼 퍼포먼스의 이희문은 국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색다른 공연을 펼친다. 사진 제공 이희문 컴퍼니

6 남들이 한 거면 우린 안 할 거야, ‘상자루’
국악이든 양악이든,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음악을 만드는 방식엔 ‘장르적 문법’이 있다. 여기서 가장 벗어난 그룹이 상자루다. ‘상자’ 같은 고정된 음악, 동시에 ‘자루’ 같은 유동적 음악을 하고자 하는 것이 이 그룹의 지향점. 권효창(타악, 연희), 조성윤(기타, 거문고, 작곡), 남성훈(아쟁)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상자루의 음악은 거칠고 서툴다. 그런데 이 점이 큰 무기로 작용할 줄이야! 다른 사람, 다른 팀과 다르게 하려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음악은 충분히 신선하고 흥미롭다.

7 서울에서 환생한 데이비드 보위, ‘이희문’
오방신 이희문은 ‘국악인 듯 국악 아닌’ 국악을 한다. 누구에겐 국악이고, 누구에겐 국악이 아니다. 비주얼적 면에서는 국악과 가장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깊이 파고들면 국악 아닌 것이 없다. 그는 국악을 다르게 활용하는 방법을 안다. 전통적 소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오히려 색다른 공연을 만들어낸다. 한국의 이희문은 영국의 데이비드 보위와 비교된다. 보위에게 베를린 3부작이 있다면, 이희문에겐 서울(깊은사랑) 3부작이 있다. 서울이라는 근대도시에서 생겨난 음악을 그만의 방식으로 잘 파헤쳤다. 데이비드 보위를 글램 록(glam rock)이라 한다면, 이희문 특유의 경기소리는 휘황민요(輝煌民謠)라고 해야 할까. 겉으론 찬란하고, 속으론 옹골차다.

최근 국악에 대한 관심이 고맙다. 그런데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국악과 다른 것의 색다른 만남을 좇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 새로운 국악의 문제는 지나치게 컨셉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개념적(conceptual)이기는 하지만, 문맥적(contextual)이지는 못하다. 모든 분야에서 옥석이 가려지듯, 국악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국악을 단순하게 이용한 것인지,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윤중강(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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